뭐, 사고 자체는 여객운송 사업자의 책임일 수 밖에 없고 사람이 다치기 까지 했으니 더 할말이 있을 수가 없겠지만, 이게 단순히 안전불감증이니 기관사의 실력부족이니 하는 이야기는 좀 많이 과도한 비난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영상에서 보이다시피 정선선은 개통 이래 대대적인 개량이 단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그야말로 1960년대 개통당시의 원풍경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노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동전철기와 신호기를 사람이 돌리던 도중역들은 아예 폐지되어 전철기를 죄다 들어내 두었고, 선로 곳곳에 흙이 무너진 부분이 보이고 침목도 가지런한 PC침목보다 나무침목이 더 많이 보이며, 레일 이음매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리는 등, 옛날 그 자체의 선로입니다. 열차가 많이 다니는 곳에서는 자갈과 땅이 다져져서 보기 힘든, 궤도 곳곳에 피어오른 잡초는 여름날의 풍경시 그 자체일겁니다.
다만, 이런 풍경 자체보다 정선선 최장의 쇄재터널과 통과 직후의 이른바 쇄재 자갈선, 그리고 거기서 계속 이어서 정선역까지의 광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선역에서 쇄재 자갈선 분기점까지는 도중 선로옆에 구배표가 눈에 띕니다. 이른바 수평을 뜻하는 L이나 내리막 없이 거의 6~7분 가까이 영상에서 11, 25, 28 등의 상구배 표지가 스쳐지나갑니다. 즉, 정선역에서 쇄재 정상까지 계속 오르막 구배가 이어지는 노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보도에 나온 사고지점 까지의 거리는 약 5km 정도로, 5~6km에 달하는 거리를 그야말로 장대구배를 계속 치고 올라가는, 흔히 비유적으로 말하는 "심장을 부수는 언덕(Heartbreak Hill)"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태백선 본선의 예미~조동간이나, 문곡에서 민둥산까지 30퍼밀이 줄줄히 이어지는 구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비전화 구간의 재래선에 저런 장대구배는 그야말로 기관차의 엔진출력을 끝까지 당겨써야 하는, 아마 증기시절에는 보일러 폭발 직전까지 밀어붙여 올라가던 그런 구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다, 정선역은 필정차역이니, 달리던 도중에 탄력을 받아 치고 올라가는 그런 구배가 아닌, 출발과 동시에 그야말로 밀어붙여 올라가는 그런 구간입니다. 늦가을 강원 내륙 특유의 진눈깨비 같은 악천후로 선로가 슬러쉬 얼음 투성이가 된 상황에서 승객을 왠만큼 태운 7량 편성의 열차라면 기관사가 30년 경력의 역전의 노장이라도 주저할만한 그런 구간이라고 봐도 될겁니다.
특히나, 들리는 말로 근래 디젤기관차 연료탱크를 어느정도 비워 중량을 경감, 연비를 개선하는 노력까지 하고 있다고 하고, 아마도 청량리에서 아우라지까지 갔다오면서 연료를 상당히 소비한 상황이었을겁니다. 특대형 기관차의 연료탱크 용량은 약 1만리터 정도로, 경유를 만땅 채우면 약 8톤 정도의 중량이 나옵니다. 즉, 기관차 정비중량 130톤에서 유류 중량차이만으로 5톤 정도까지는 오락가락하고, 이 정도는 아주 미묘하나마 축중변화를 일으켜 점착력의 변화를 초래할 정도까지 됩니다. 일반적인 구간에서라면 화물견인에서나 어쩌다 한번 문제가 될법한 일이, 악천후와 급구배가 교차하는 정선선 여객열차에서 결정적인 트러블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추정도 듭니다.
여기에 구원을 나간 기관차가 충돌한 것은 기관사의 운전실력 문제가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을건데, 위의 영상을 보면 알지만 쇄재터널 구간이 사실상 산의 정점을 뚫고 가는 선로고 정선쪽 보다 민둥산쪽(선평쪽)이 한번에 치고올라가는 험한 구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터널이 거의 직선으로 쭉 나가는데, 구배 변화도 거의 없이(마지막에 터널 입구쪽 빛이 살짝 아래로 처지면서 사라지니 그 쯤 구배변화가 생김) 오르막을 올라가는 구간이란 이야기입니다. 듣기로는 여기가 30퍼밀짜리로 정선선 최급구배란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즉, 급구배를 올라가야 하는데다 구원작업을 위해, 최대한 서둘러 기관차 단독으로 제한속도를 꽉 채워 올라갔을 겁니다.
그리고 터널 종점은 골짜기에 커브가 있고, 자갈선이 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이고, 이 커브를 돌자마자 다시 그대로 내리막이 이어집니다. 터널정점 코앞에 오르막 3퍼밀 정도 표시가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휙 지나가는 상황 될수밖에 없고. 그리고 커브를 돌아 내리막에 들어서자마자 사고차량이 있었을테니 아마 제동이 미묘하게 늦었을 가능성이 있고, 마침 악천후로 선로 상태가 최악이었으니 여지없이 미끌어져 내려가기 시작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특대화물이 다닐때 중량화물 외에 추가적으로 화차를 붙이는 이유가 교량 구조물에 하중이 집중되는 걸 막는 한편으로, 제동축 숫자를 늘려 제동성능을 보강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하는데, 마침 특대형 디젤 단독으로 가다 제동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어지간한 숙련으로도 피하기가 힘든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하필 사고열차의 기관차가 멈춘 위치가 터널 안쪽으로 사고조치에는 최악의 위치였기까지 하니 이런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일이 커진 결과가 이번 사고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사고지만, 그렇다고 쉽게 풀 수 있는 건도 아니었던게 아닌가 추정된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