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독일같은 나라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해서 물류가 활성화 되었다 라는 이야기는 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톤킬로 베이스로 30% 가까이 떨어냈다고 말은 하지만, 실체를 까 보면 결국 지선 수송이나 공장 내의 단거리 운반 부문을 민간회사나 시설물의 운영관리를 담당하는 지방법인 등에 떠넘기고, 대부분을 장거리 거점간 수송위주 그리고 해외 철도화물법인 인수를 통해 국외 수송에 힘을 기울인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추정이 듭니다. 당연히 지선이나 인입선, 구내운반 물량은 수익성이 나쁜 그런 사업이지만, 실체적으로 본다면 톤수는 그만큼 많고 톤킬로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구조가 될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기대하는 장거리 간선 수송의 자유화는 쉽게 되기가 지극히 어려운데, 기관차와 기관사를 여러 거점에 배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기재 숫자를 늘리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즉, 막대한 투자가 소요된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하루 4회의 화물열차를 서울과 부산간에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백량의 화차, 십여대의 기관차, 그리고 서너시간 거리마다 배치되는 수십명의 기관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서비스는 전국구 사업자 정도의 덩치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그에 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민간사업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이야기가 됩니다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대한 투자를 하려고 해도 화물수송 사업 자체의 리스크는 여객 이상으로 큽니다. 여객의 이탈은 비교적 완만하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유입 또한 그러하지만, 철도화물은 대량장거리 수송이라는 특성상 특정기업과의 거래계약에 의해서 발생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현재 트럭 수송은 기업과 다수의 운송알선업자나 운송사업자, 그리고 1개 차량으로 영업하는 개인사업자들이 계약하는 구조기 때문에 물량의 유동이 용이하지만, 철도수송은 그렇게 진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시피 합니다. 우선 차량 자체가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가 어려운데다, 한번 제작하면 20년 이상을 쓰기 때문에 노후화에 따른 증감차를 할 수 있지 않고, 게다가 이게 인입선이나 차고 등의 50년 이상 가는 인프라에 수송루트가 종속적이어서 다른 물량, 지역으로의 이전이 용이하게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즉, 철도화물은 이런 이유로 계약이 한번 틀어지면 모든 리스크를 운송사업자가 가져가는 빌어먹을 구조가 되기 좋고, 한국처럼 내수시장이 좁고 가공형 산업인 나라에서는 철도수송을 이용하는 기업 자체가 독과점 사업자인 경우가 많아 철도운송사업자가 어떤 다른 리스크 셰어링을 받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쯤 되면 기업체가 그만큼 다변화 되어 있고 지정학적 다양성이 있으니, 하드웨어의 호환성만 받쳐준다면(뭐 정 안되면 소폭 개조를 하더라도) 어느정도 융통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될리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뭐, 유럽은 이런걸로도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하니 좀 비싸게 치일 값이라도 금융으로 그 틈새를 메꾸려고 리스 제도가 어느정도 활성화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은행차입의 변형에 불과할 수 밖에 없을겝니다. 차를 사고 팔거나, 돌려쓸 여지 자체가 없으니.
현재 철도화물의 연간 적자액은 수천억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결국 이게 바로 그 리스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량이나 화차 조달량의 포어캐스팅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니 철도공사가 자기 계정으로 모든 수요 리스크를 부담하여 왔고, 운임 변동에 따라 계약 해지 내지 축소의 리스크가 있으니 자기 비용을 전가하지 못하고 그냥 적자로 쌓아버렸으며, 화물 물동량을 위해 차고나 인입선 접속점 등 거점 운영 또한 민간의 사정을 봐주면서 해 와서 저모양이 된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그렇다고 이걸 철도공사가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부담할 생각을 하기 힘든 리스크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철도화물을 전폐 내지는 크게 축소하는 것도 위험한게, 현재 도로의 안전이나, 도로운송비용의 억제는 철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여전히 고속도로에 대형 트레일러가 제법 다니기는 하지만, 여기에 더 엎어서 철도물량이 도로로 뛰어들게 된다면 그야말로 도로 상황은 재미있어 질겁니다. 대형차로 인한 사고율이 치솟고, 도로 파손이 급증하며, 저번 황산유출 사고처럼 위험물 사고도 종종 벌어지게 될겁니다. 또한, 트럭이 지배적 수송수단이 됨에 따라 우리나라 대개의 산업이 그렇듯 신디케이트화 되어 자기의 이권을 철저하게 보호하려고 별별 일을 다 벌릴겁니다. 철도노조를 때려잡겠다고 설친 결과 트럭조합 같은게 그 빈자리를 채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안되는 이야기를 이데올로기에 홀려서 떠벌린 통이랄까 그렇습니다. 좀 할 수 있다면 말단수송부문을 수직계열화된 민간회사에 떠넘기는 정도는 가능은 할겁니다만, 그게 경제적 효율을 얻기 보다는 그냥 인건비 털어먹는 3류회사만 늘리는, 유럽에서 부작용으로 지적된 현상이 그대로 일어나는 정도로 끝이 나게 될겁니다.
P.S.:
사업부제 운운하면서 물류직렬을 따로 두고 고용구조를 따로 가져가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는 근래 떠드는 중규직을 대대적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이야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고위층은 외부인원을 수혈해서 어쩌고 하지만 낙하산들 내려와 꿀빠는 자리 만들기 밖에 안될거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그냥 노비로 만들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직렬을 따로 자르니 다른데를 가려고 해도 추노당해서 가지도 못하는 모양새가 되어 그야말로 일하는 사람 병신만드는 정책이 될 뿐이고.
이번 정부의 경제기조가 창조경제가 아니라 남을 삥뜯어먹는 창렬경제라고 비아냥을 사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