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만고속철도 주식회사 자체는 통상적인 영리법인을 기준했을때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는 법인입니다. 물론, 초기부채가 과다하고 차입금 이자가 좀 세다 보니 초장에 엄청난 누적적자를 먹었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작년부터는 당기순이익 전환이 이루어졌고, 부채도 컨트롤이 되고 있는 상황에 있긴 합니다. 자본잠식 상태긴 하지만 잠식률은 50% 정도로, 부채가 늘지 않고 순이익이 나고 있는 만큼 일단은 자본잠식은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용객은 2013년 기준 하루 13만명이며,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찍고 있기는 합니다. 영업개황이나 재무제표만 대충 훑어 봐서는 이게 왜 파산 카운트 다운인지 알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랄까 그렇습니다.
실은 이 대만고속철도가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주주를 설득하든, 아니면 새로 차입을 내서 이를 갚아내는(물론 호된 이자부담이 생기겠지만) 방식으로 어떻게든 갈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게 사상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민간투자사업, 그것도 BOT사업이라는 점입니다. 즉, 대만고속철도는 총 사업비가 18조원 상당이 깨진 대형 민자사업으로, 그 투자액을 35년간의 운영을 통해 회수하는 구조로 추진된 사업입니다. 문제는, 2007년 개통 후 8년차, 즉 수익회수기간의 1/4가까이가 경과한 상황인데도 배당조차 지급못하는 한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판이라는 점입니다. 민자사업은 사업기간이 끝나면 사실상 그 수익권을 정부가 가져가기 때문에 35년차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수익사업이 중단되는 구조가 됩니다. 즉, 35년 안에 목표한 돈을 못벌면 그 모자란 부분만큼 투자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단 이야기입니다.
즉, 일반적인 상업회사라면 그 사업의 영위에 기한의 종료가 없이, 즉 영구적인 것을 가정하기 때문에 단년도의 사업실적이 매우 안좋더라도 어찌되었든 운영을 계속해서 사업을 정상화하든 투자회수를 하든 할 여지가 있지만, 이 BOT사업의 경우는 정해진 사업기간이 있기 때문에 사업의 계획수지를 맞추지 못한다면 그건 곳 투자손실이 되는 것이고, 사실상 정상적인 투자회수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BOT사업은 수익보전이 없는 한에는 매우 위험성이 큰 사업으로 보는게 보통입니다.
한국의 민자사업은 눈가리고 아웅질을 해서 수익보전을 정부가 밀어줬기 때문에 투자자는 운영을 개판치건 말건 일단 정부와 도장을 찍은 만큼은 벌어 나가는 구조로 갑니다만, 대만고속철의 경우는 이런 약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게 됩니다. 즉, 정부가 호구를 잡혀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이 지경이 되면 투자원금 회수를 위해서 사업약정을 해지해서 자산일체를 조기 반환하고 정부로부터 시설투자금을 반환받는, 아마도 수익률을 상당히 손해보는 수 밖엔 없게 된단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투자자와 민자법인, 정부 간에 법정다툼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여하간, 이 지경이 되니 일단은 정부와 화의를 걸어보려고 재정재건대책을 대만고속철 쪽에서 만들어 갔는데, 일단 우선주의 상환과 함께 보통주식을 증자하여 재정자립도를 회복하되, 다만 투자액이 늘어나는 만큼 사업기간을 35년에서 75년으로 연장해 달라는 제안을 정부에 제출을 했습니다. 이를 대만 교통부가 서포트 하는 식으로 한 것으로 보이고.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회에 상당하는 대만 입법원에서는 해당 내용을 만장일치로 기각시켰고, 이 시점에서 우선주의 상환능력을 상실한 대만고속철도는 사실상 다른 대책이 없는 한 파산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과, 교통부 장관은 사직하고, 정부는 대만고속철도의 사업인수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파산이 되더라도 인수시 까지의 잠정운영과 고용승계 등 대책을 준비하기로 한 정도랄까.
사실 대만고속철도 사업의 운영현황은 나쁘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영업이익률은 2013년 기준 31.5%에 달하고 있고, 어찌되었든 당기순이익이 나고는 있으며, 이용인원도 일평균 13만명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구간이 좀 짧은 편인거 치고는 양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더욱이, 기존선과 경영분리가 되어서 교차보조의 부담도 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대신 기존선을 굴리는 대만철로관리국은 죽어나지만), 향후 노선연장이나 각역의 접속개선, 연선개발 등을 통해서 수요도 아직 더 늘어날 여지가 있긴 합니다. 건설비가 우리나라에 비해서 좀 세게 꼴아박힌데다, 정부부담분은 거의 없어서 그만큼 하중이 더 걸리기는 합니다만서도, 대신 우리보다 운임수준이 좀 높게 되어있긴 합니다.
그런데도 이지경이 된건 사실은 수요예측이 매우 과다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측 분석기사에 따르면 대만고속철도의 초기수요예측 대로라면 현재 하루 30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을 했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현 시점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수송밀도를 자랑하는 도카이도 신칸센(40만명/일)에 버금가는 숫자로, 실은 대만고속철도의 차량과 인프라가 이걸 받아줄지부터 의문이 드는 수준이기는 합니다. 12량편성의 신칸센 전동차로 차량당 수용능력에서 이미 한계가 있는데다(정원 자체는 KTX만큼 나오기는 한다지만), 타이베이역의 병목구조(교차지장 10분 이상, 착발선 4개) 덕에 역을 이설확장하기 전엔 일본처럼 5분배차를 쪼아버릴 능력이 전혀 없는 판인지라. 이런 말이 안되는 수요는 90년대의 양호한 성장추세(연 6%대) 덕에 낙관론이 판치다 보니 생긴거라지만, 뭐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랄까 그렇습니다.
수요예측이 과다하다 보니 사업투자도 그만큼 과다했고, 또한 민자사업으로 하다보니 공공부담분이 전혀 투입되지 않아 사업비 대부분을 수익으로 상환해야 하는 판이 되었는데, 그걸 35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상환하겠다고 사업계획을 짜 냈으니 그야말로 망할 수 밖에 없는 판이 되었달까 그렇습니다. 일전에 호남고속철 상환 플랜 이야기를 했는데, 대만의 1/4 정도의 유상투자를 했는데도 거의 60년은 각오해야 할 판이 벌어지는데 저동네는 그야말로 "객기"를 부려도 너무 부렸달까.
거기다가, 자금 조달쪽도 문제인데, 현재 이른바 연합차관(신디케이트 론)을 금융권에서 조달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최근 발행분은 근래의 저이자 기조 덕에 4%대 이율(반년 2.16~2.25%으로 추정)을 유지하는 걸로 보이는데, 기존 차입분은 해석이 맞다면 반년에 4.32~4.89%, 즉 연리 전환했을때 9%에 육박하는 이자를 냈던 걸로 보입니다. 다행히 기존 차입분은 2013년 시점에서 전부 해소하기는 하지만, 저정도 이자를 두들겨 맞으면서 사업 할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정말 머릿속이 장미빛 일색이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봐서는 피바다겠습니다만.
게다가 운임수준에서도 좀 무리수가 있는게, 345km에 우리돈으로 5.6만원 정도 수준으로 전선 고속선을 기준하면 우리나라보다 그리 비싼 편도 아닙니다. 일본이라면 저거의 2배 정도 받을 상황이고, 사실 우리나라도 정부 요구대로 50년 정도의 상환기간을 목적으로 하면 저거보다는 비싸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경부고속선 총 사업비 만큼을 전부 유상조달한 고속철도가 같은 값을 받는다는 건 사실상 사업이 안되는 구조라는 이야기라 할겁니다. 물론, 운임이 무한정 올릴 수 있는 건 아니기는 합니다만, 저정도면 노답 그 자체랄까.
하여간, 어찌되었든 결국 파산 트리를 타든 아니면 정부와 극적인 딜을 해내든 할 걸로 보이고, 아마도 공적자금이라도 때려붓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좀 예측이 됩니다... 매출 1.2조원 수준에 부채는 15조원 쯤이 깔린 판에서는, 고용인원 3,320명 짜리 회사가 인건비를 후려까 봤자 연 이자 6천억원 수준에서 1/10이나 충당하면 다행이라 의미도 없을 뿐더러, 평균연령 37세에 평균근속 7년이라 연공급 체제가 기본이 되는 동아시아 지역 고용관행을 생각하면 명퇴같은걸로 깔만한 인건비도 마땅치 않을겝니다.
이걸 보면서 부채상환한답시고 만든 모 회사를 다시 보게 됩니다. 아마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수익 약정까지 걸고 투자를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아주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