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사실 동서횡단철도는 분단이래 한국 교통의 비원에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분단이 되면서 동서간 루트는 매우 험한 육로 아니면 빙 돌아서가는 해로 뿐이던 시절이 있었고, 이게 해소되고 나서도 인클라인이나 스위치백을 거쳐 겨우겨우 다녀야 했었습니다. 태백선 개통 전에는 7시간이 넘게 걸리던, 부산보다 더 먼 곳이 강릉이었다시피 했었고, 태백선 또한 당대의 경제력과 기술력으로 할 수 있던 한계선상의 노선이다시피 했습니다. 정선을 거쳐 강릉으로 가려다가 못가고, 직결터널화를 많이 못한 걸 아쉬워하던 그런 노선이었으니. 그래서 원주~강릉선의 의미가 각별하면서도, 또한 그로 인해 남겨지는 노선을 그냥 두기가 애매하달까 그런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두번째 단축이라 할 수 있는데, 1973년 태백선 개통으로 약 1시간여가 단축되었던 것에 이어, 원주~강릉간 개통이 이루어지면 현행 6시간에서 2시간 초반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개통효과는 호남고속선 이상의 문제를 하나 남겨두게 됩니다. 태백선도 사실상 그렇게 되었지만, 가장 짧은 루트로 수요가 몰리고, 기존 루트는 쇠락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원주~강릉선의 단축효과가 워낙 큰게 이 기존 루트의 유지를 좀 까다롭게 합니다. 2시간 반 정도로 원주~강릉선의 소요시간을 계산하면, 현 태백선과 원주~강릉선 경유를 비교할때 그 소요시간이 균형점을 이루는 지점은 솔안터널 정도가 경계선이 되어버립니다. 만약 직결운행을 무한정한다고 치면 도계까지 원주~강릉선 경유가 유리하게 되고, 환승을 끼더라도 동해에서는 원주~강릉선을 선택하는게 시간적으로 이득이 생기는 그런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이 말은, 태백선 열차는 솔안터널을 넘어가는게 말 그대로 로컬 서비스 공급 차원에서나 필요한 일이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금도 횡단교통량을 치는 건 야간의 정동진 가는 사람들 정도에 그치기는 합니다만, 이정도가 되면 사실 청량리발 동해/강릉 종착 태백선 열차는 존재의 의의가 없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더욱이, 망우~청량리간의 용량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됨에 따라서 열차 증발이 난해해지는 상황이 되는데, 이때 가장 칼대기 좋은 존재가 이 태백선 경유 횡단열차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대충 동백산과 도계 두 역과 일부 정차인 신기역을 빼면 현재 동백산 위쪽의 영동선은 로컬서비스를 제대로 못넣고 있으니 이쪽은 그리 체감을 못할 여지가 많기는 합니다. 도계 정도는 좀 민감하긴 하겠습니다만서도. 하지만, 태백선 연선은 이쪽과 온도차가 상당한데, 일단 도로여건이 개선은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철도가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이 태백선 구간이고, 또 덕분에 비교적 이용객이 유지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 구간의 수요가 아예 없다면 모르지만 관광 수요가 은근히 유지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 섯불리 차를 확 빼버리다가는 역시 재미없어지기 좋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태백선 로컬로 모든 열차를 정리해 보자고 할 여지가 생길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태백선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중앙선 쪽이 충분한 열차편수가 확보되고, 여기서 다시 제천 거점으로 환승열차가 원활히 투입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여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원주~강릉선으로 인한 서울쪽 용량압박은 중앙선도 같이 당할 수 밖에 없는 판국이다 보니, 로컬화를 하더라도 이걸 받아줄 간선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고 중앙선 열차로 몰빵하기도 어려운게, 중앙선의 수요는 결국 원주, 제천이 반인데, 이걸 점감시켜가는 배차를 하지 않으면 영주, 안동엔 그야말로 공급초과가 벌어지게 되고 이건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게 됩니다.
따라서 어차피 직결운행을 완전히 유지하지 못할바에는 확실하게 로컬과 서울직결을 양쪽으로 갈라버리는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서 생각이 미치는 것은 TTX입니다. 개발을 마치고도 선로 고도화와 차량정비 부담으로 인해 묻혀버린 차량인데, 8~12편성 정도를 확충해서 태백선 직결계통을 축으로, 현재 어중간하게 유지되는 서울-제천간, 그리고 호남고속선 덕에 불거진 기존 호남선 계통을 벌충하는 용도 등으로 운용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방 기점의 열차에 너무 많은 투자가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는 합니다만, 그만큼 개량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생각하면, 지역균형발전 같은 차원에서는 한번 해볼 수 있는 투자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정히 비용부담이 생길거 같다면, 일본처럼 중정비를 포기하고 15년 정도의 차령을 전제로 운용하는 걸로 도입을 생각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로컬은 충북선의 일부열차 연장과 함께, 서원주 거점 열차를 포함해서 직결운행을 넣되, 철암 종착과 동해 종착을 이원화하는 방향으로 가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철암종착은 별로 경제성이 확보되는 방식은 아니기는 하지만, 어차피 영동선 로컬 공급을 늘려봤자 수요를 당겨올 여지가 없다면 중간 종착역을 하나 만들어서 태백선의 로컬서비스를 적은 차량으로 충분히 하는게 나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철암 종착이 좀 그렇다면, 아예 동백산에서 그대로 통리까지 들어가는 편을 하루 3왕복 정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되긴 할겁니다. 이미 전차선도 걷어낸데다 통리역도 구내가 좁은데다 이미 전용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쉽진 않긴 하겠습니다만, 나름 주민도 제법 있는 지역이고, 또 관광거점화가 진행중인 곳인 만큼 지역의 지원 하에 계통 부활을 좀 해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역사성도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하니.
로컬의 차량편에 대해서는 대전 광역철도 추진에 맞물려, 충북-태백까지 동차화를 추진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110km/h제한을 받아먹는 현행의 전동차를 그냥 쓰는건 매우 난감한 입장이긴 한데, 120km/h정도까지 성능개량을 하고, 출입문 숫자를 줄이거나 해서 차내 거주성을 개량하며, 내설 대책과 객실 단열 시공을 충실히 해 둔 차량이라면 운행에 무리는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정히 애매하면 제천 정도에 디아이싱 작업을 할 수 있는 설비를 두는 방식도 될거고 말입니다. 어차피 충북선과 태백선은 선로 규격이 그리 격차가 크지 않은데다, 운행경로도 직결화하기 편하고, 직결을 할 경우 제천, 충주, 오송, 조치원에서 물갈이를 적절히 할 수 있어서 맞물려 굴리기가 나쁘지 않기도 합니다. 광역철도 기반이 확충되어 있다면 거기에 밥숟가락 하나 올리는 식으로 차량운용을 때운다면 그만큼 효율성도 올라가게 될거고 말입니다.
그리고, 근래 관광열차 사업과 관련해서 슬쩍 떡밥이 돌았지만(링크), 서울~강릉을 연결하는 관광열차를 아예 과감하게 야간 침대열차로 꽤 단가를 후려치는 모델로 개발을 해 보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겁니다. 외려 청량리 경유가 아니라 수원/천안 경유로 내려와서 간다면, 제천까지는 3시간 정도를 소요하고, 여기서 태백선을 넘기면 3시간 반 정도가 더 걸리며, 만약 영동선 우회를 돌리면 1시간여가 추가되어 강릉까지 7시간을 넘겨서 갈 수 있게 됩니다. 6시간을 넘기면 침대열차를 영업할만한 여건이 되고, 8시간정도가 되면 그야말로 훌륭한 루트가 됩니다. 안그래도 청량리발 강릉행(현재 정동진행) 야간열차는 정동진 가는 사람이 먹여살리는 수준이니, 아예 대도시에서 동해를 연결하는 침대열차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떡밥이 될 수 있을겁니다. 다만, 수요층이 충실한 서비스를 중시하는 수요인지, 아니면 저렴한 수준이라도 누워가면 생큐인 수요인지를 좀 살펴는 봐야할겁니다. 전자라면 일본의 카시오페이아 같은 차가 필요하지만, 후자라면 그냥 유개화차 수준이라도 온돌 평상에 모포 하나씩 덮고 가는 차면 될테니 말입니다.
이번 호남고속철도 개통 과정에서 운행계통의 정리문제로 큰 내홍을 겪었고,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 보니 잡음이 좀 과하게 들린 감이 있습니다. 사실, 철도공사나 국토부로서도 이 문제가 이정도로 홍역을 세게 치룰 거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선동 몇개가 날뛰자 그야말로 불타는 개뼉다귀가 된 셈이니. 원주~강릉선의 경우는 이렇게 장렬하게 방화를 당하지 말고, 좀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통정리안을 만들고, 지역과의 협의를 좀 더 진중히 진행을 하는 방향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