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사실 비용절감의 압박을 받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차종이 분산되는 만큼 초기도입에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날 뿐더러, 관리해야 할 사항들도 늘어나게 됩니다. 부품도 여러 종류를 구비해야 하고, 정비작업을 할 때의 작업 절차나 작업용의 각종 설비도 달라지게 됩니다. 또한, 기관사나 정비사들도 차종 별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다, 차종 별로 어느 노선, 어느 열차에 투입해야 하는지를 구분하게 된다면 이걸 감안해서 운용계획까지 짜야 하니 단순히 신경쓰는 정도가 아니라 돈이 나가고 사람이 들어가는 문제가 생깁니다. 즉, 파편화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차량의 단순화 자체는 사실 경제가 장기간 정체되었던 일본에서도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JR동해가 일찌감치 단순화를 추진했던 전례가 있었고, JR동일본도 신간선 차량이나 도쿄권 차량에 대해 기존차량들을 내구연수가 끝나자마자 도태시켜가면서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연산 수백량 단위의 전동차를 자체생산하면서까지 그야말로 불도저로 밀듯 차량 단순화를 추진하는 택이랄까.
안그래도 국내의 철도사업자들은 비용의 압박을 강하게 받다 보니 이런 단순화의 유혹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저항차나 초퍼차 같은 종류는 기술적으로 너무 노후되다 보니 부품 수급에서 어려움을 겪는 예도 많고, 에너지 효율 등의 면에서 보더라도 교체하는게 싸게 먹히는 선에 근접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VVVF차량들로 교체하면서 차량 종류를 줄이고, 호환성을 확보하는 방향도 흔히 보입니다.
다만, 좀 아쉬운 점은 단순화가 능사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단 가장 큰 단점은 마케팅적인 측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래에서야 ITX-청춘의 2층객차를 포인트로 홍보한다거나 하는 수준이라서 의미가 아직 약하긴 한데, 너무 한 계열로 차량을 몰아놓거나 하다보니 노선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나 이미지면에서 진부함이나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주게 되어 이용객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한계가 생깁니다. 통근차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생각할까 싶기도 하지만, 저항차에 화낸다거나 차내설비를 두고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경우도 좀 있는지라 의외로 의미가 없는 영역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뭐, 간선열차로 가면 이게 의외로 어필하는 경우가 제법 되기도 하고.
또한, 기술력의 유지와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좀 아쉬운 점이 생깁니다. 한 차종에 익숙해지다 보면, 더 고성능이나 더 개량된 기술이 나오더라도 관성적으로 그걸 회피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새기술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고, 경영상의 여력이 없는 상황에선 기술혁신을 하려 들지 않을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만, 이게 수 년, 수십 년이 누적되면 그야말로 낙후된 철도가 되는 것도 금방이게 됩니다. 증기기관이나 저항차량 투성이의 노선들이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닐겁니다. 당장이 급하다고, 또 리스크를 겁내서 기술도입을 주저하다 보면 그리 되는 거라 하겠습니다. 새 기술을 안쓰다 보니, 기술자들 역시 현재에 안주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해 둔감해지고, 결국 기술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게 됩니다.
항공에서의 이야기긴 하지만, 엔진 종류를 극단적으로 단일화하거나 기체를 극단적으로 단일화하다간 해당 설비의 잠정사용중지 한방에 사업이 모두 묶여버리거나 할 위험성이 생기게 되기도 합니다. 철도차량에서야 이런 경우는 생각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단순화를 달리다 보면 대안기술에 대한 감각이 없어져서 그런 문제가 본원적 문제라고 착각하게 되어 대책이고 뭐고 없이 그먕 때우는 식의 방향으로 흐르기 좋다 하겠습니다.
결국, 균형의 문제일 수 밖에 없는게 이 차종의 문제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한 장르의 차량에는 2~3종 정도의 차종이 있는 형태는 되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은 듭니다. 또한, 좀 낭비성이 있더라도 노선 특성에 따라 어느정도 커스터마이즈된 차량을 써 보는 그런 노력도 좀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