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문제의 시초는 1988년에 신도시 건설사업이 들어가면서 그 교통대책으로 과천, 분당, 일산 3선이 들어가게 되고, 이 노선들이 지하철 직결을 검토하면서 교류/직류 겸용 운전이 요구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분당선은 전 구간을 철도청이 하도록(다만 이 시점엔 노선이 완전히 결정되진 않은듯 하지만), 일산선은 철도청이 하되 직류방식으로 서울지하철을 따라가도록 감사원이 개입해서 바꾸었는데, 여기서 관심사가 과천선이었습니다. 이미 안산선이 5공화국의 유산으로 1988년 10월 25일에 안산~금정간이 개통해 있는 상태였는데, 이거랑 직결을 하는 노선으로서 과천선을 잡았기 때문에 이 노선의 전력, 통행, 신호, 차량 에 대해 지하철 방식이냐 철도청 방식이냐의 논란이 있었고, 이 시점에서 기존의 1호선 교직양용차 투입은 좀 어렵게 된 모양새가 됩니다.
실제, 직결운전을 하는 걸로 1989년 3월의 관계기관들(아마도 철도청, 서울시 등이 들어간)이 어느정도 가닥을 잡았는데, 철도청 차량들은 저항차들이다 보니 터널에서 저항열 때문에 터널기온이 치솟는 문제가 있었고, 또 차량 출력이나 가속도도 철도청이 약하고, 전력소비는 저항차가 워낙 크다는 한계가 있어서 새 차를 사는 걸로 가닥이 잡힙니다. 즉, 저항제어를 넣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걸로 보입니다. 명확히 언급한건 아니지만 일단 89년엔 그랬습니다.
당시, 차량부문의 정리는 계자첨가 여자제어방식을 쓰는 방안, 즉 당시의 초퍼제어차의 변형방식으로 JR이 쓰던 그게 처음 언급이 됩니다. 그리고 직통운전으로 남는 직류차량은 3호선으로 돌린다는 것도 이 즈음의 이야기로, 이 때문에 결국 일산선이 차량잉여를 피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직류화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 셈입니다. 일단 저 계자첨가 여자제어방식의 추천은 국내 3사, 즉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가 89년 한진에 인수되면서 90년 사명 변경)이 제기한 것으로, 이미 당시시점엔 좀 구형이 된 방식이었지만 일단 "교직겸용 구간에 적합하고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희망하였다고 하지만, 당시 수도권 차량 고장 문제가 잦아서 연기되었다가 이후 분당선과 패키지로 검토가 되기 시작한게 91년 6월 이후라고 언급이 됩니다.
이 검토에서는 유럽 회사들이 끼어든게 좀 보이는데, 현대정공을 통해 ABB가 들어왔고, 대우중공업을 통해 GEC-알스톰이 들어와 있습니다. 물론 이들 회사들은 미츠비시, 히다치, 도시바 등의 일본회사들과 꽤 오랜 거래관계를 가지고 있고, 당연히 이때도 일본회사들은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기술회의를 하면서 좀 여론을 몰아간 걸로 보이는데, 결국 91년 말에는 VVVF제어+유도전동기로 가닥을 잡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해당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고속 전철 시대를 준비하는 차세대 차량으로서"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 즈음에 이미 300계나 ICE-1의 개발에 GTO-VVVF가 들어가기도 했고, 사실 또 초기 고속철도 계획의 토목건설비 계획에서 안산선의 150% 라는 숫자를 인용하는 등을 보면 아주 빈 말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뭐 지금 보자면 워낙에 뜬금없는 이야기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나름 포부를 가진 결정이랄까.
여하간 이때 도입되는 기술들이 제법 많은데, 이른바 M/T비를 1:1로 하는것도 이 때가 시초고, 교류구간 회생제동, 유도전동기와 VVVF인버터, 스테인리스 차체, 고무스프링+볼스터리스 대차, 열차정보시스템, 신호절체장치와 전자제어제동 등이 모두 이 때 들어왔고, 이게 지금까지 수도권전철 전동차의 기본설계가 되고 있는 택입니다. 20년이 아니라 거의 30년을 우려먹는 수준의 기술도입이 이 때 결정된 택이랄까. 뭐 기술의 정체 발생은 이미 일본도 비슷하기는 합니다만서도.
이후 기술세미나 형식으로 차량방식 결정과정에는 ABB(스웨덴/스위스), GEC-알스톰(프랑스), 지멘스(독일), 그리고 일본의 미츠비시, 도시바, 히다치, 일본차량 등이 개입합니다. 이때 차량의 제어방식으로1C4M이 결정되었다고 하며, 이후 입찰을 거쳐 도시바-미츠비시의 공동설계로 도시바가 주전장품(컨버터, 인버터 등 반도체 부품)을, 미츠비시가 유도전동기를 개발해 공급하는 걸로 결정이 됩니다.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VVVF로 가닥을 잡게 된건 유럽계 메이커, 특히 ABB의 입김이 강하지 않았을까 추정이 되고, 아마도 도입선 결정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과거 종종 그랬듯이 꾸준히 약을 팔다가 예전부터 거래했고 가격경쟁력이나 지원체계가 좋은 일본쪽으로 싹 틀어버린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유럽 메이커가 일본 메이커를 밀어내기 위해 VVVF를 밀다가 틀어진게 아닐까도 싶고, 덕분에 일본이 자기들도 개발 도중인 VVVF를 들고나오게 된 모양새가 된게 아닐까...
이후 IGBT 방식의 1C1M방식(개별제어)를 도입하지 않은건 이건 연구개발중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언급이 나오고, 유닛제어, 즉 1개 인버터가 8개의 전동기를 제어하는 방식은 차륜관리에 문제가 있어서 기피된 것으로 언급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1C4M이 여기에서 결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IGBT-VVVF가 나온게 92년이라고 하니, 뭐 좀 아쉽기는 해도 현실적으로 베타테스트를 넘어 알파테스트까지 하는 건 거시기 하기도 하니 잘 한 결정인 셈입니다. 또, 이과정에서 이견이 난게 서울지하철과 미츠비시는 단독구동차, 즉 M차 단독으로 다니고 T차는 그야말로 자유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버렸고, 철도청은 유니트 구성, 즉 MT비 1:1로 기기를 분배한 방식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건 구형차에는 8M2T까지 차를 붙이고, 대부분 구간에서 3.0km/h/s 가속을 쓰던 지하철공사의 차량스펙과 이보다 약한 6M4T가 기본에 2.5km/h/s를 쓰던 철도공사의 스펙 차이가 근본적 이유였다고 추정되는데, 한편으로는 향후 전용같은걸 생각했기 때문도 아닌가 싶습니다.
뭐, 정작 저렇게 했지만 차량이 완전히 신개발품이 되어버려서 차량의 적시공급에 상당한 애로를 겪었던 모양이고, 건설쪽에서도 트러블이 있어서, 과천선 개통은 94년으로 밀리고, 차량 납품도 한참 실갱이 끝에 93년 6월 29일로 6월 기한을 빠듯하게 맞춰서 겨우 공급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94년 4월에 개통을 하지만, 이 전후로 차량과 시설 트러블을 상당히 겪은건 유명하기도 합니다. 뭐 그렇게 고생해서 내놓은 결과를 가지고 20년을 넘게 우려먹고 있는 걸 보면 기술이라는 영역을 좀 다시보게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때 VVVF 도입에서 고생한 탓인지, 90~91년에 저항차 고장 트러블을 겪으면서도 1호선 증비/교체차를 이른바 신저항이라 불리는 저항차로 간 것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때 철도청이 최종적으로 도입한 결과, 300계 신간선 전동차와 완전히 도일한 설계방식의 주전장품이 도입되게 되었다고 자평한 부분입니다. 물론 차량의 성능이 다르니까 이 말은 좀 자화자찬 격이 들어간 이야기지만, 기본 설계나 부품에서 나름대로 동일계열들을 제법 끼워넣었을거라 생각이 됩니다. 뭐 이렇게 해서 이 시스템을 확대개발해 고속전철을 만들겠단 생각을 했단 말이 빈말은 아니긴 하지만, 고속철도를 별도 트랙으로 추진하게 되면서 이때 철도청의 도입사업들은 결국 수도권전철에 머물게 되긴 합니다. 물론, 이후 TGV계열의 국산화 과정에서 VVVF의 도입같은게 들어가기는 합니다만.... 해무를 자주개발할 정도가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과거 열악했던 역사속의 이야기랄까 그런 느낌이 된 감도 있습니다.
여하간, VVVF의 도입은 여러모로 획기적인 일이었고, 간단히 이랬다고 말하기만은 쉽지 않은 영역이었으며, 그냥 쉽게 먹은 것도 아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왕년의 모 가전회사 광고 멘트 대로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결론대로 된게 이 건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