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비관론적인 입장에서 종종 이야기를 하던 입장이긴 해도 지금의 잘 돌아가는 분위기는 반가운 일이기는 합니다. 이용객이 슴풍슴풍 떨어져나가는 철도만큼 비참한 것도 없는지라. 하지만, 이 활황의 내면을 좀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동해선 KTX가 주말에 2300명 이상을 찍었단 이야기를 하면서 잔치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 과연 이 수요가 없던 수요를 새로 창출한 것인가에 대해서 좀 고민이 필요합니다. 즉슨, 포항에서 신경주나 동대구를 거쳐 환승하던 수요가 단순히 포항착발KTX로 변경된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입니다.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으니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일단 동대구나 신경주의 KTX승강인원 감소라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고, 그 감소량이 의외로 저 2300명 정도의 수요치랑 엇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동해선 KTX가 활황인 다른 이유로, 포항공항이 현재 폐쇄상태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하루 평균 300~400명 정도의 수요가 나오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항이 개량공사를 이유로 폐쇄중인 만큼 이 수요가 결국 KTX로 넘어왔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실제로 포항발 수요는 결국 동대구, 신경주, 포항공항의 전이수요에 불과한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남습니다.
물론, 전이수요라고 하더라도, 버스나 항공으로 빠져나가던 수요를 대체한 것이니, 철도의 수송분담률 증가효과를 어느정도 유발한 셈이기는 한지라 사회적 편익효과는 있다 할겁니다. 또한, 기존의 철도 환승으로 이용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동대구~분기점까지의 고속선 임율에 분기점 이후 신선 경유 KTX임율 부담으로 인해 기존 보다 운임인상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철도전체로 봤을때 경영개선 효과도 어느정도 있긴 하니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새로 수요를 만들어낸게 아니라는 건 아쉬운 부분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호남고속선의 경우도, 광주송정역이 근 3배 가까이 수송량이 늘었다고 하지만, 이는 광주역이 KTX 운행이 중단되면서 이쪽의 수요가 광주송정역으로 일시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물론, 광주와 광주송정은 KTX 이용객 규모는 비등한 편인지라 수요를 통합하더라도 2배 언저리긴 한지라, 이보다는 더 늘었지 않냐고 반론할 여지는 있습니다. 또, 호남고속선이나 전라선의 이용객이 소폭이나마 증가하긴 한 모양이고, 기존 호남선과 달리 대전 수요가 빠지는 걸 감안해야 하는지라 수요 창출, 내지는 기존에 철도로 받아내지 못했던 수요를 새로 받아낸 모양새가 되기는 한 택이긴 합니다.
하지만, 호남고속선은 동해선과 달리 8조에 달하는 투자를 벌여서 사실상 복복선화 사업을 벌인 케이스인 만큼, 이런 수요증가가 정말로 막대한 투자를 합리화할 정도가 나오는가에 대한 논란은 남습니다. 이거야 하루아침에 결론낼 수 있는 사안이기 보다는 장기추세의 변화가 중요하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좀 우려가 된달까.
여기에다 초기 컨벤션 효과 내지는 대기수요가 반영된 점도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실은 수원발 KTX도 개통 초기에는 20량 편성을 가득 채워 다닐 정도로 꽤나 호들갑이었지만, 어느정도 기간이 지나면서 주말엔 만석을 찍지만 평일엔 그정도는 아닌 모양새가 되어버린 전례가 있습니다. 즉, 초기엔 언론에서 많이 다루고 또 기대가 크다 보니 예상 이상으로 이용객이 나오지만, 조금 지나면 실제 자기에게 최적화된 루트로 재편되면서 이런 컨벤션효과는 줄어들게 됩니다. 호남고속철이나 동해선 KTX 역시 지금에서야 악플성 보도든 뭐든 자꾸 회자되니 사람들이 덤비지만, 하계수송이나 명절 시즌을 지나고서의 수요를 좀 두고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과거 경부고속선 개통당시 처럼 사람들이 고속서비스에 대해 전혀 모르다가 아주 느리게 전이되던 상황보다는 많이 좋아지기는 했습니다. 당시에는 일부러 다이어까지 개편해서 일반열차의 장거리 직통을 줄이기까지 했지만 고속으로의 이동은 매우 느리게 이루어졌었는데, 이번 개통은 기존선 다이어의 삭감이 없음에도 초기에 꽤 이용객이 몰렸다는 점은 고무적이기는 한 점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개척가능한 잠재시장이 작다는 한계도 있는지라 수요에 대한 고민이 없어진건 아니랄까 그렇습니다.
P.S.: 광주선의 광역전철화를 전제로 해서 한번 알고 있는 비용데이터들을 가지고 계산기를 두들겨 봤는데, 1시간 시격으로 전동차를 투입해서 대충 하루 15,000명 정도 유상고객을 확보하면, 수지균형점을 어느정도는 맞출 수 있을걸로 일단 개인적으로는 추산이 나오기는 합니다. 도중역 증설 등을 끼고 가면 1만명 정도까지는 어찌저찌 맞출 여지는 있을듯도 한데, 지방정부에서 10년 정도 기간의 MRG를 걸고, 도중역의 주요시설(승강장, 스크린도어 등)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해서 전동차 운행을 요구해 볼만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