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철의 차량분류기호를 보면 직용차(기호 ヤ, 업무용 차량) 기호나 그 외의 좀 기괴한 기호들이 제법 있습니다. 구원차(エ)나 배급차(ル) 같은 종류가 이 쪽인데, 대개 이런 기호를 받은 차종 중에는 묘하게 전동차들이 많습니다. 일철, 특히 구식 국철차량들을 파다 보면 이런 쪽에도 제법 관심이 몰리게 됩니다. 이런 차종들은 대개 구형차의 재활용인데, 50년대까지는 이른바 "잡형식" 전차라 불리는 사철 매수선용 차량이나 규격정비 이전의 이른바 "다이쇼 년간" 차량을, 70년 즈음까지는 모하63형 같은 전쟁기 차량을 활용하고, 80년대 즈음에는 사업폐지가 된 소화물용 전동차나 우편용 전동차를 활용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직용차에 해당하는 차들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영역이 다채로운 편이니 좀 뒤에 설명하고, 구원차와 배급차 부분부터 좀 이야기를 하자면... 구원차는 딱 우리나라의 유니목이 담당하는 업무를 하는 차들입니다. 요즘은 일본도 궤륙차라고 유니목 비슷한게 저 일을 하는 듯 합니다마는, 워낙에 도로접근성이 나쁜 곳들이 많아서 저런 차가 유지되기도 합니다. 사철에도 저런 차가 여럿 남아있는 모양새기도 하고. 보통 옆쪽으로 호이스트 크레인이 수납되기도 하고, 안에 침목이나 가대차, 기타 부속품 종류가 실려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사고시에 출동하는 차다 보니, 평시엔 별로 움직일 일이 없이 기지에 대기하는 차라서 구형차를 개조해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배급차가 재미있는 차종인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화차입니다. 지금은 좀 바뀐듯 하지만, JR화 초기까지만 해도 차량기지의 부품수급은 이른바 철도공장이라 불리는 중정비 기지에서 일괄로 관리하다가 각 기지로 배송해주는 방식을 취했다고 합니다. 국철시절에는 아예 이들 공장에 브레이크 슈 같은 소모성부품을 전문 제작하는 주물공장까지 있었다고 하고. 이걸 거의 매일 단위로 각 기지에 배송을 해야 하는데, 어차피 차량기지간에 운반을 해야 하니 이 전동화차들에 실어서 배송하는 방식을 썼다고 합니다. 20세기 초반까지 지어진 기지들은 대개 도로접근성이 아주 개판이다 보니 이런 배송시스템이 굉장히 유용했다고 합니다. 뭐 여담이지만 영국같은데는 아예 도로접근이 불가능한 차량기지가 있었고, 거기서 자동차를 생산해서 철도로 운반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러거야 말로 철도의 역사유물이랄까.
이외에 직용차가 구형차의 천국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동차 외에도 객차나 화차도 직용차로 쓰이지만, 차량기지 등지에서 쓰이는 경우가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이른바 견인차라고 해서 중간차들을 다른 기지로 이송시켜야 할때 해당 중간차의 앞뒤에 운전대 기능을 하는 전용의 전동제어차를 구형차를 개조해서 붙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편성을 짜서 회송열차로 이동시키는 방식이 꽤 흔하게 쓰입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 비상용품을 차내에 적재하고, 각종 신호보안장치가 완비되어 있으며, 또 제어계통이 다른 차량을 연결하기도 하는지라 구형차 주제에 그야말로 만능 전차에 가까운 느낌의 차량이기도 합니다. 이런 차량은 위의 모 기지에서 처럼 양쪽의 전동제어차를 서로 연결해서 차량기지 구내 입환기로도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잘 쓰이는게 이른바 직원수송용 차량이나 교습용 차량입니다. 직원수송용은 차량기지들이 대개 좀 격오지에 있거나 진입로가 마땅찮은 경우가 있어서 이를 위해서 기지와 입출고역 간을 운행하는 용도의 차량이 투입되기도 하는데, 기지에 대기하는 영업용 차량을 그렇게 쓰기도 하지만, 영업용으로 못쓰는 차를 저렇게 지정해 두기도 한다고 합니다. 교습용 차량의 경우는 말 그대로 훈련용으로 구식 차량을 현용사양에 맞게 운전대 등을 개량해서 만드는 차량인데, 최근에도 209계의 잉여차를 저렇게 활용한 사례가 있기도 합니다.
일본식 차량 운용에서 구형차들이 가는 림보랄까 그런 영역이 이런 직용차량이나 기타 작업용 차량들이긴 한데, 이보다는 좀 더 영업일선에 가까운 차량도 있습니다. 바로 예비차들입니다. 영업일선에서 완전히 빠지는 건 아니지만, 정규운용을 하지 않고 임시열차나 뭔가 사고가 났을때 땜빵용으로 들어가거나 하는 차량으로 보관되는 차들인데, 일반 전철 외에도 특급용 차량이나 심지어 신칸센 차량에서도 이런 운용이 존재합니다. 비용효율성에서 그리 득책도 아니고, 또 안전면에서도 대개 구식기준 적용이다 보니 논란이 있긴 하지만, 아예 차량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기 보다는 느릿한 구식차량이라도 다니는게 낫다는 생각인지 일선 은퇴 후 소수 편성이 수 년 정도 이렇게 예비차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아마도 재고부품을 적당히 소진시키면서 교보재 비슷하게 쓰는 그런 개념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런 운용법이 적당한가는 별론으로 해야 겠고, 법령도 워낙 까탈스럽게 되어있다 보니 이런 개념을 쓰려고 해도 못쓰는 부분은 있긴 합니다. 다만, 구형차를 일거에 다 없애는 식으로 쓰기 보다는, 어느정도 완충용도로 쓰는 지혜랄까 그런 점은 좀 배워볼만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의 모 기지의 운용 방식도 그런 아이디어의 발휘라고 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