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통계연보의 인킬로 데이터를 시계열로 쭉 뽑아봤습니다. 그 결과는 좀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 볼 부분들이 있지 않나 싶어지는 영역이 있습니다. KTX가 확실히 수요증가 효과를 견인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리 틀리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무궁화나 새마을이 포괄하던 트래픽으로부터 전이가 상당부분이 아닌가 라는 점입니다. 또한, KTX개통과 비슷한 시기에 본격화된 광역철도망의 확충, 즉 2005년부터 이어진 경원선 연장, 중앙선, 경부선 연장 등등이 오히려 철도 이용량 증가를 유발한 다른 한 축이 아닌가 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KTX와 광역전철의 쌍두마차가 2000년 이후의 철도회귀를 이끌어낸 것이라고 보는게 맞지 않은가 라는 점입니다.
이 "KTX의 전이현상" 이라는 관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수도권전철 기여분을 제외한 인킬로 데이터를 시계열로 정리해 보니, 좀 더 이런 경향이 명확히 나타납니다. KTX가 상당히 강력한 푸쉬업을 한 것은 분명한 경향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푸시업이란게 결국 기존선으로부터 자의반 타의반에 가깝게 KTX로 넘겨진 트래픽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즉, 경부선이나 호남선처럼 워낙 막강한 교통량이 지천에 널려있던 구간에 고속선 투자를 한 것, 다시 말하면, 선이 모자라서 선증사업으로서의 고속선 투자는 그 성과가 명확히 드러난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모자란 구간에서 고속화가 수요를 견인해 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경부고속선의 성과를 가지고 그렇다 말하기가 좀 위험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간선에서 통일호 이하는 수도권전철 트래픽에 먹힌 부분이 있어서 위 그래프로 간선수송을 다 대변하긴 애매하긴 합니다만, 사실 따지고 보면 위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아직 간선수송 트래픽은 과거 고점인 92년의 피크를 돌파하진 못했습니다. 2015년에는 확실히 돌파할 거 같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쇠퇴기는 95년 이후 철도 민영화를 위한 법제개혁 같은게 돌아가고, 변죽을 올리던 개혁 시책이 난무하던 2000년대 중반까지를 쇠퇴기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09년 부터 이런 추세가 풀리게 되는데, 이건 2단계 개통의 위력이 크지만, 기존선 구조조정 끝에 기층수요가 버스와 자가용으로 떨어질만큼 떨어져 바닥을 찍은 결과...라는게 맞지 않나도 싶습니다.
사실 90년대의 횡보 추세라는 것의 정체는, 분명 자동차 보급의 확대로 인한 수요이탈이 한 축이 되기는 하지만, 다른 한 축은 경영부실이다 뭐다 하면서 간선부문의 종합적인 체질개선이 지연되면서 간선열차 공급 개선이 한정되어 버려서 "전부 받아내지를 못했다"라는 다른 한 축이 있던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마을 PP중련이나 무궁화 장대형 11량 편성쯤 되어야 700석 정도의 공급을 해내는데, 실제 당시에 그런 공급 노력을 제법 기울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차량도 부족, 시설도 부족, 그리고 실제 서비스나 사업모델의 개선노력도 한계가 있다보니, 결국 받아내지 못하고 그게 다 자동차로 쭉 빠져버렸던게 90년대 횡보 추세를 만든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한 저 과거 추세를 보면서 앞으로의 정책방향에 대해서도 한가지 좀 고민할 점이 있는데, 바로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담당하던 기능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는점입니다. 무궁화에 어느정도 포괄된 층위도 있지만, 90년대 초반 피크점에 도달했을 때의 통일호+비둘기호 트래픽의 절반 이상은 그대로 유실되어 버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물론 지금 그대로 저때의 공급방식을 되살리는건 의미가 없습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농촌에도 상당한 인구가 남아 있던 시대고, 반면 도로망의 질은 허접한데다, 자가용 보급율이나 버스 노선의 충실도 역시 한급 아래기는 했으니. 하지만, 그런 수요가 철도 바깥으로 나가게 내팽개쳐 둔 것은 과거 정책의 헛점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따라서 향후 정책방향에서도 간선과 수도권 투자 외에, 지방 거점도시를 축으로 한 기존철도 활용도 강화, 그리고 고속화 개량으로 인해 발생하는 구 철도시설의 기능 유지라는 부분을 분명히 신경써야만 할 것입니다. 수도권전철의 경우 79년 이후 수 차례에 걸친 경제공황이나 붐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총량에서 마이너스 성장 없이 꾸준히 성장추세를 유지해 오는게 눈에 보이는데(개별 노선으로는 좀 변동이 있겠습니다마는), 어느정도의 품질을 갖춘 지방광역철도나 구철도 활용 근거리 여객철도 같은 모델 또한 어느정도는 성장을 담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P.S.:
주제와는 상반되지만, 명절기간 중에 국토부가 사주해 기획내사를 벌이다가 사람을 자살로 몰아버려서 좀 시끄러운 모양입니다. 안전문제를 "무엇이 사고를 일으켰는가?"가 아니라 "누가 책임질 것인가?"로 자꾸 몰아가는 추세가 이런 사단을 낸건데, 이런 식으로 누굴 조지려고 드는게 기본 스탠다드인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무식한 안전관을 가진 사람들은 책임을 물어 좀 공직추방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