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세종역 이야기가 다시 불거지는건 역시 오송분기라는 희대의 정책실패 건과 세종시의 궤도교통을 도외시한 멍청한 도시설계, 그리고 충남 지자체끼리 치고박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 공주역 선정까지 실패의 총합 결과라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닐겁니다. 천안아산 분기였다면 지금의 입지에서도 어느정도 해결을 볼 수 있었고 아니면 아예 오송역 주변을 도시중추로 잡았다면 분기정책이 욕은 먹어도 적어도 합리적인 구조가 될 수 있었을겁니다. 또 이게 실패했어도 세종시와 오송역 또는 다른 주요 KTX거점역을 이어주는 철도가 있거나, 한때 제기되던 조치원-대천선 같은 경부선과 직결이 가능한 철도를 세종시 도시계획 등에 포함했다면 시차는 있어도 지금의 불만을 어느정도는 누그려볼 수 있었을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주역 입지를 마암리 같은 곳으로 잡았다면 공주와 세종 양쪽이 쓸 수 있고, 또 말 많은 논산에 역을 하나 줄 수도 있었을겁니다. 뭐 결국 아무것도 안되었으니 이모양이 된거겠습니다만.
일단 논란이 된 세종역 설치의 개략적인 구상은 역 설치가 가능한 거의 유일한 포인트인 발산리의 교량구간에 본선에 바로 붙은 승강장을 설치하는 이른바 "간이역"구조로 500억 이하로 건설하겠다는 게 기본인 걸로 보입니다. 오송역과 공주역 양쪽에서 약 20km 정도씩 떨어진 위치인데 현재의 KTX차량으로는 좀 무리수가 있는 역간이긴 하지만 아예 정차를 못시킬 만큼 심각한 위치는 아니기는 합니다. 아마도 공주역과 오송역 정차열차는 정차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하거나, 3~5분 정도 시격으로 오송정차를 하고서 뒷 열차가 정차하는 식의 꼼수를 써야 하는 위치가 되기는 합니다만서도.
일단 언급한 위치에 역 설치 자체가 아주 불가능 하지는 않기는 합니다만, 기술적으로는 트러블이 많은 선택이 될걸로 보이기는 합니다. 구배조건이 일단 안맞을 가능성이 없잖아 있어 보이고, 덤으로 본선에 바로 승강장을 붙이는건 역시 아무리 호남고속선이 배차가 떨어지는 노선이라고 하지만 매우 위험한 대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열차가 제때 출발하지 못하면 본선이 틀어막히는 문제가 있고 또 고속운행이다보니 가감속 한번이 시간을 엄청나게 까먹는 문제가 있어서 여러모로 정시성 측면에서 핵발암 요소가 될 가망이 높습니다. 본선에 바로 승강장을 붙인 고속철도는 신칸센 정도에서나 보이고, 그나마도 말단구간의 배차가 적은 곳에 한정되거나, 초기 건설된 구간에서 부지가 없는걸 억지로 만들어붙인 경우에나 관측이 됩니다. 그리고 본선정차로 역을 설계하게되면 다이아 설정이 꼬이게 되어서 종국적으로는 전 열차가 정차하지 않으면 안되거나, 다른 열차들을 틀어가면서 겨우 억지로 정차시키는 다이어 설정을 해야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철도회사 담당자의 위궤양을 부르는 역이 된달까.
결국 어거지로라도 분기기를 붙여서 부본선을 양방향 1개씩 확보한 공주역 스타일의 역으로 지어야만 합니다. 문제는 이 개방구간이 어중간한 700m 정도 남짓이라는 겁니다. 공주역 정도의 기본적인 배선구조를 가진 고속선 역이 1km정도의 길이를 가지는지라, 이 거리는 여러모로 애매한 거리가 됩니다. 또한 교량과 토공-터널 구간의 접속구간 길이가 그리 길지 못한것도 걸림돌인데, 이 구간이 짧다보니 고속선용의 분기기를 설치하는데 길이가 모자라게 됩니다. 한쪽으로 좀 추가적인 접속구간이 필요한데 또 양쪽이 터널이어서 터널을 다시 까발려서 짓지 않는 한에는 이건 대책이 없달까. 이런 조건을 피해간다면 분기기 번수를 좀 작은걸 쓰고 오버런 여유를 대폭 후려치는 방법이 있긴 한데, 고속선에서 이걸 잘못 끼워넣으면 병목이 되기 좋은지라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기도 합니다.
덤으로 호남고속선이 슬래브 궤도를 기본으로 채용한 것도 개축의 난점입니다. 자갈도상을 쓴 경부고속선의 경우는 여러 제약요건이 있긴 하지만 분기기를 신설해서 정차역을 만드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았는데, 슬래브 궤도 구간의 개축은 현재까지 경험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공항철도의 경우 이걸 하기는 했지만 결국 자갈도상으로 도배를 하는, 매우 마이너스한 개축이 되어버린 문제가 있습니다. 더 좋은, 그리고 더 효율적인 시설물로 가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되어버린달까.
여기에 정략적으로도 골아픈 부분이 많아지는데, 일단 이 역이 설치가 되더라도 오송역에 비해서 거리는 짧아지지만 또한 동시에 배차도 구려진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스마트 폰 등을 써서 구매할 수 있고 하니 시간에 맞춰 이용하는 걸로 피해갈 여지는 있지만, 역시 기본 배차가 구린 한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기존역들의 역세를 뺏어오는 효과 때문에 아무래도 비용효율성에 민감한 철도 운영자들 입장에서는 이건 계륵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도 생깁니다. 거기다가 가장 골치아픈건, 이걸 허용하면 논산훈련소에서 7~8km는 떨어진 논 한가운데의 논산훈련소 역을 막을 명분이 없어진단 문제가 생깁니다. 이건 그야말로 지옥문을 열어제치는 짓 그 자체가 된달까.
하게 된다면 KTX-1이 일소되고 350km/h급 동력분산식 차량으로 전량 대체된 후에나 생각할 일일겁니다. 뭐 한다면 여기에 더해서 대전지하철1호선을 지상선으로 연장해 와서 접속시키고, 다시 세종시 시내방향으로 고가철도 형태로 연장해 들여서 궤도교통 접속을 확보하는 식으로 가면 대전 북서부 수요도 당겨오고, 궤도교통 접속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배차 구린걸 만회해 볼 여지가 생기니 어찌저찌 해볼만은 할겁니다만... 여기까지 오면 500억 사업이 아니라 한 1조짜리 사업이 되니, 아마 안될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걸 하느니 죽어나자빠진 조치원-보령선 같은걸 살려서 시내관통을 시키고, 여기에 경부선 일반열차를 직결로 받아오되 TTX나 EMU-250같은 고성능 차량을 직접 끌어오는 방향이 더 나을겁니다. ITX새마을 열차 속달타입으로 조치원까지 1시간 20분 주파가 가능한데, 천안-조치원 구간이 개량되고 TTX같은 틸팅기능을 살려서 150km/h순항을 해 오면 10분에서 15분 정도는 절감할거고, 그 절감시간만큼 세종시 시내 구간 철도를 직결해 들어오는 방향이 되면 그게 KTX보다 더 효과가 클겁니다. 덤으로 서울, 영등포, 수원, 천안을 정차할 수 있을테니 접근성 면에서 더 강력할거고 말입니다. 뭐, 그 대신에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니 답이 없기는 합니다만서도.
P.S.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이렇게까지 돈을 꼴아박아 줘서 밀어주는게 모두가 피보는 세상에 유일하게 RHA 700mm급 장갑 밥그릇을 자랑하는 국가직 고위관료들 정도라는게 좀 배알이 뒤틀리기는 합니다. 하려면 세종시 그치들 급여와 후생복지비, 판공비를 까서 그 재원으로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