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몬슨권 자체는 이름 그대로 에드몬슨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승차권 시스템입니다. 19세기에 만들어져서 아직도 세계 도처에 그 시스템을 그대로 쓰는 곳이 제법 남아있습니다. 흔히, 두꺼운 딱지에 인쇄했기 때문에 에드몬슨 권이라 불린다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정확히는 위조방지 체계쪽이 에드몬슨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승차권의 원권 위에 자잘한 글씨나 무늬를 인쇄해 새겨두고, 승차권 종이 하나하나마다 일련번호를 새겨서 임의로 조제하더라도 사후검증으로 찾아내는게 가능한게 그 본질이랄까. 이때문에 내부자의 위조나 변조, 외부로부터의 위조 모두 방지할 수 있게 된게 가장 큰 강점이어서 널리 보급된 체계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고품위의 인쇄기가 일상화된 시대엔 위조방지가 충분하진 않지만, 과거엔 인쇄기 자체가 상당한 자산이고 특히 종이 자체가 두꺼운 종이라면 통상적인 인쇄기로는 다루기가 어려웠기에 이게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겠습니다.
이 위조방지 개념은 지금도 사실 흔하게 쓰이는데, 전산화되어 있지 않거나 별로 필요가 적은 공원이나 유원지, 시설물의 입장권에 이게 쓰입니다. 티켓을 책자 스타일로 만들고 매 권면에 일련번호가 죽 기재되어 있는 방식의 입장권이 이것입니다. 이 일련번호 체계와 관리방식이 사실 에드몬슨권의 핵심이라고 하는게 맞을겁니다. 다만, 철도와 달리 권종이 단순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체계가 단순화된 감은 있습니다.
에드몬슨권 시스템 하에서는 승차권은 모두 사전 제조되어야 하다 보니, 위 사진에서처럼 승차권을 발행하는 사무실은 생각외로 복잡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창구가 좁게 만들어지는 이유가 단순히 보안이나 권위주의 탓이기 보다는, 공간 확보 차원에서 그렇게 된 부분이 있달까. 창문의 좌우로 빼곡하게 승차권을 담아두는 랙이 들어차 있는 분위기가 매표실의 전형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승차권들은 보통 가지런히 담겨서 한 장씩 빼기 좋게 고안된 통이랄까 그런데 담겨져 있는게 보통입니다. 저 승차권을 담아두는 순서나 규칙은 역마다 내려오는 일종의 전승이랄까 그런 식으로 자리가 잡히는 분위기가 있고, 그거에 익숙해져서 바로바로 찾아 내 줄 수 있는게 매표원의 숙련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경험과 숙련이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낸달까.
일련번호가 부과되어 관리된다는 특성상, 승차권들의 발매 상황은 매일같이 보고가 되어야 하게 되고, 또 예외적인 상황이 생겼을때도 그거에 대한 보고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금은 전산처리가 되다 보니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이 되고 예외처리 또한 비교적 빠르게 백 오피스에서 처리가 되는 편인데, 저 당시에는 매일 마감을 하면서 처리를 해야 하다 보니 꽤나 복잡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옆의 얇고 넓은 서랍들이 바로 이런 보고서나 기록양식을 담아두는 함이라 보시면 될겁니다. 옆 쪽으로 책상이 길게 나 있는 것도 이런 예외처리나 특수한 처리가 필요한 경우를 위한 것들이 들어 있어서라 보시면 됩니다.
에드몬슨권의 통제 시스템은 발매에서의 통제도 상당하지만, 또한 개표와 집표도 중요한 통제 도구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역 창구를 떠난 승차권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물건이고, 이게 복제되거나 일부러 재사용을 하거나 할 경우에는 방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게 옛말로 개찰이라 하는, 흡사 우편의 소인(canceller)과 같은 시스템이 들어갑니다. 입협이라고 표현하는데, 개표가위를 가지고 승차권의 일부를 잘라내는 과정이 바로 그겁니다. 이걸로 승차권이 사용되었음을 표시하게 되고, 이걸 가지고 다시 열차 내의 차장이나 도착역의 집표에서 인지를 하게 됩니다. 이 개집표에서도 나름의 시스템이 있는데 이건 다른 기회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에드몬슨권의 통제 때문에 여러 관행이 생겨나는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진즉에 없어졌지만 일본에서는 지금도 남아있는 룰 중에 "당일에 한해 유효"나 "타역 출발 승차권의 발행은 역장의 허가사항"이라는 규칙입니다. 이건 에드몬슨권 중 근거리 승차권은 워낙 많이 팔리는데다 싼 만큼 이걸 위조하거나 매집해서 암표화하거나 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일부러 발매를 당일에만 하고, 그 날 쓰지 않으면 환불이나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지정을 하던 관습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규제지만, 당시에는 표 자체의 유통이나 제조를 통제하는 식으로 위조방지를 하다보니 저렇게 다뤄지는 이유가 있었달까. 또 타역 출발 승차권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역에서 수작업으로 기재해 발행해야 하는 특수한 승차권이 될 수 밖에 없고, 시스템의 한계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서 역의 사정에 따라 제한하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뭐 무엇보다도 역에서 발매하는 승차권의 권종이 그만큼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게 에드몬슨권 시대의 풍경인데, 그러다 보니 지방노선으로 가면 딱 그 역에서 다니는 열차의 행선지 범위 만큼만, 조금 더 나아가도 인접한 큰 역에서 접속되는 주요 도시행의 승차권, 우리나라라면 부산이나 서울, 대전, 대구 정도의 승차권만 보유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일본철도에서 나오는 "xx시내" 착으로 표시되는, 장거리 승차권의 도착역을 두루뭉실하게 처리하는 규정도 여기에서 기인한 셈일겁니다.
에드몬슨권 이야기를 할때 가장 화려한 포인트는 바로 특급열차의 지정석이나 침대석 예악입니다. 지금은 전산으로 모든 간선열차의 좌석지정이 가능하지만,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장거리를 달리는 특급열차들의 좌석을 어떻게 예약해 관리했을까는 전산쪽을 좀 아는 사람에게라면 상당히 궁금한 부분일 겁니다. 각 역에서 발매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지 않으면 좌석중복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일겁니다. 이걸 통제하는 것이야 말로 지정석 예약의 꽃이라 할겁니다.
실은, 이것도 결국 사람의 힘에 의존해서 했습니다. 어떤 한 장소에 모든 대장을 몰아놓고, 이 대장을 사람들이 열람하면서 전화통화를 통해서 대장에 기재하고 좌석지정을 창구에 알려주면 그걸 가지고 제공을 하는 방식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도 그랬고, 미국도 20세기 초반의 철도 전성기때 장거리를 달리는 특급열차들이 이렇게 관리를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두개 역에서 한 두 창구로 그렇게 돌았을 리는 없는데 도데체 어떻게 했는가...라는 궁금증이 남을겁니다. 그건 아래 사진을 보면 좀 이해가 될겁니다.
저 사진에 보이는 원탁과 가운데의 책장이 바로 그 예약 승차권을 관리하는 핵심 아이템입니다. 사진에서는 멈춰있지만, 실은 저 책장은 모터를 붙여서 꽤 빠르게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둘러앉은 사람들이 저 책장의 지정날짜 대장을 꺼내서 그 대장에 발매내역을 대조 확인하고 역에 통지해 주는 그런 방식으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저 방식 자체는 20세기 초반의 미국의 장거리 특급에서 쓰기 시작해서 항공에서도 썼던 모양입니다마는.
저렇다 보니 사실 지정석 예매를 하는 역의 숫자랄까 그건 저기 둘러앉은 사람들 숫자 정도로 한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창구 숫자는 좀 늘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더욱이 예약기간을 늘릴수록 천문학적으로 대장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니 1주일 정도면 엄청나게 일이 커지게 되어 일자를 어느정도 한정하고, 또 열차의 숫자도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억제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대장을 노선 별로 구분해 운영해야 하니, 당연하지만 연계되는 창구를 노선별로 구분하는 것도 필수적인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특급열차들에 Limited라는 표현이 쓰인 것도 저정도로 특별취급을 해야 했으니 "한정"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저렇다 보니 저 원탁에 앉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원탁의 기사" 레벨의 숙련도가 요구되었던 모양인데, 회전 책장 자체가 영상으로 보면 의외로 고속으로 움직이는지라 앉아서 원하는 대장을 바로 집어내는데도 짬밥이 요구되고, 그걸 다시 꽂아 넣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고참쯤 되면 대충 휙 집어던져 꼽아도 제 위치에 들어갈 정도였다던가. 다만 아무리 숙련도가 높아져도 기본적으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이 밀릴때엔 예약 1장을 하는데 거의 30분 정도가 걸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 전산처리의 욕구가 가장 먼저 발생하는 영역이 되었고, 일본의 MARS나 미국 항공회사의 공동발매망 SABRE같은게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 할겁니다.
사실 모든 열차를 저렇게 통제하는 건 굉장히 지난한지라, 역별로 발매할 수 있는 호차와 좌석수를 배정하고 그것만 팔게 하거나, 부족하면 융통성을 발휘해서 앞옆이나 뒷 역의 좌석을 빌려오는 식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당일발매 열차에서는 주류였던 듯 싶지만, 그래도 최상위 열차들은 일단 운임이 비싼 만큼 낭비를 최소화해야하고, 도중 경유지가 많아서 역별로 배정하는 방식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아서 저런 방식을 썼다고 보입니다. 뭐, 아무리 저렇게 관리를 하더라도 실제로 구두로 정보를 주고받는데다, 일이 밀리다 보면 바빠지다다 보니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어서, 역에서 팔지 않고 열차의 여객전무가 관리하는 별도의 좌석들이 여럿 준비되어 있었다고도 합니다.
지금은 매표원의 일이 단순 반복적인 일이라고 치부되는 감이 있고, 승차권 자체는 당연히 그랬던 걸로 인식하는 감이 있지만, 사실 이 승차권 시스템의 원초로 올라가면 의외로 노동집약적인 존재였다는게 보입니다. 정보기술에 의한 인클로저 운동이라는게 사실 그리 멀리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달까. 다시 저런 시대로 되돌리는거야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한번 정도는 되짚어 볼만한 이야기가 아닌가도 싶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