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증기기관차의 복원운행이 종종 이야기 되고 시도되면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못거두는 건 좀 아쉬운 일이지만, 사실 좀 그럴만도 하단 생각이 먼저 들기는 합니다. 진지하게 덤비기 보다는 그까짓거 돈으로 바르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란 생각이 우선드는게 좀 꼬인 생각이랄까. 일단 기반시설이 없는 것도 없는거지만, 무엇보다도 이 증기기관차의 복원운전은 단순한 박물관의 학예작업이나 이런게 아닌 그야말로 근대공업기술과 그를 떠받치던 노동과 숙련에 대한 매우 깊고 진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근래 좀 볼만한 영상들을 몇 개 찾아낸 김에 소개할 겸 해서 좀 옮겨봅니다. 마침 제조업의 총본산이다가 다 말아먹고 금융업 파먹다 브렉시트 해버린 영국의 영상들이 걸린게 좀 아이러니 하기는 합니다마는, 그동네 철도의 성숙기를 보여주는 영상이라는 점에서 볼만한 영상이라 생각합니다.
1) 증기기관차의 제조
영국의 본선 여객기인 프린세스 로열형 증기기관차의 제조광경을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차호는 LMS 시대엔 6207, 이후 국철이 되면서 46207호로 명명된 "Princess Arthur of Connaught"호의 제조영상으로 전쟁 이전인 1937년도의 것이며, 전형적인 퍼시픽형 급행여객 견인기입니다. 특징적인 부분으로는 4실린더 타입의 고성능기라는 정도가 눈에 띕니다.
잘 보면 증기기관차의 제작공정은 모든 철강 기술을 전부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압연 후판을 절단해서 프레임을 제조하는 것 부터 시작해서, 주요 부속은 대형 주물공정으로, 또한 높은 내구도가 요구되는 동력전달계는 단조부속을 쓰는게 보입니다. 그 외에도 드릴링, 밀링, 선삭, 선반 등등의 기계가공이나, 프레스 공정도 존재하는게 보입니다. 지금의 대형기계가공에서 CNC나 용접이 빠진 정도가 좀 튀는 부분이랄까 그렇습니다. 용접없이 리벳팅으로 모든 걸 해치우다 보니 원시적으로 보이는 부분들도 좀 많이 보이고, 이게 사실 증기기관의 한계기는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시대의 기계공장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이 보입니다. 실제 해외에서의 증기기관 복원 공정에서 가장 큰 제약사항이 되는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영상 중간에 나오는 철판 프레스 공정 부분입니다. 연관 보일러와 화실을 접합시키는 부분의 부품으로 증기기관차의 주요 부품중 하나입니다. 물론 지금도 프레스 공정은 절찬리에 쓰이기는 합니다만, 저정도로 두껍고 큰 강판을 저런 형상으로 한번에 찍어내는 공정은 증기기관차용 횡치식 연관보일러에만 쓰는 굉장히 특수한 공정이어서 현시대에는 몇군데 남아 있는 곳이 없다고들 합니다. 구형차 복원에서도 저것과 연관보일러 부분이 부식이 크지 않고 잘 살아있는가가 핵심이라고 할 정도이니.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동륜의 제조공정 부분도 중요한 공정인데, 대형주물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이젠 적은 것도 있고, 저 제조 공정에서처럼 주물틀을 통째로 뒤집고 서냉시킬 수 있는 시설 자체도 한계가 있다는게 문제입니다. 저 동륜과 축을 소입시키는 공정도 전용의 기계가 필요한 특수공정입니다. 영상에서는 제대로 묘사가 안되지만, 무언가 특수한 기계를 쓰는게 보일겁니다. 여기에 이 동륜에 타이어라 불리는 부속을 소입하는 공정 또한 특수한 설비를 쓰기 때문에 현시대에는 제대로 만들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대형주물은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라도 만들어 볼 여지라도 있고, 또 저런 설비가 없어도 어떻게 하는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노하우 중의 노하우인 모양이라 알기가 어려운 모양이고 말입니다.
연관식 보일러는 그래도 좀 공장들이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마는, 한국에는 확실히 없습니다. 현대적인 공정기술도 아닌데다, 이른바 슈퍼히터(과열관) 부분은 굵은 연관 내에 다시 증기관을 U자형으로 우겨넣어 쓰는 구조로 되어 있는 등 당시에도 좀 까다로운 공정들이 있습니다. 이외에 영상엔 잘 안나오지만, 실린더나 슬라이드 밸브, 그리고 보일러의 주요부속은 부식이나 내마모성 때문에 황동을 쓰는 곳도 종종 있습니다. 전체를 황동주물을 쓰는게 아니라 황동을 끼워넣거나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부속들이 많달까.
뭐 여담이지만 조립공정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쓰이는 리벳팅 부분은 현시대에는 꽤 쉬워진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용접기술 덕입니다. 물론 용접은 접합부를 가열하여 이루어지는지라 재질의 변성을 초래하는 약점은 있고, 리벳팅 이상으로 품질에 민감한 요소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기밀성이나 강도면에서는 천지차이랄까 그렇습니다. 설계 요령이 좀 달라지기는 해야 합니다마는. 뭐 요즘은 리벳 자체도 기술이 실전되어서 쓰고싶어도 못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기는 합니다.
저렇다 보니 증기기관차의 제조 공정은 그야말로 방대하고, 또한 당대 기계공업기술의 집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크고 육중한 면에서 정밀한 맛은 적을 거 같지만, 회전기계인 만큼 생각외로 정밀도가 요구되기도 하고, 또한 부속이 워낙 많다 보니 그 각각의 조립 자체도 쉽지 않은 편이어서 증기기관차를 직접 조립해 낸 것 만으로도 기술력을 인정받을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영국에서 신조차를 찍어내는 걸 보고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현시대에는 공장부터 새로 만드는 것 부터가 일이 되는 수준이랄까 그렇습니다.
2) 증기기관차의 정비
이건 위 영상보다는 좀 더 뒤에 제조된 영상입니다. 영상은 입고와 출고를 포함한 이른바 "경정비" 수준의 정비광경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뭐 영상을 보는게 가장 빠르겠지만, 일단 입고 통지부터 시작해서 물을 일단 채우고 재를 제거하는 공정부터 시작을 해서, 지금도 "무화(無火)"라는 용어로 남은 불씨를 빼고 보일러 냉각을 대기하는 공정, 증기관이나 연관의 누출을 찾는 공정 등등 일련의 준비작업을 보여주고, 또 보일러나 연소실을 청소하고 공정, 그리고 망치와 거울, 그리고 렌치와 기름통을 들고 실시하는 점검 등이 보입니다.
그리고 후반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화입 작업을 볼 수 있습니다. 대형공장의 로(furnace) 종류나 보일러에 비하면 좀 쉬워 보이지만 은근히 까다롭기도 하고, 또 정비에 들어가지 않는 기관차는 밤새 불을 살려두기 위해서 당직이 수시로 불을 확인하고 탄을 더 넣는 등의 작업을 실시하는 등 상당히 일이 많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고내수(庫內手)라 불리는 반숙련공들이 있었고, 이들이 이후 훈련을 통해 기관조사를 거쳐 기관사로 육성되는 코스를 거치는게 고전적인 커리어 패스였습니다.
영상 초입과 말미에 이른바 기관구의 특징들이 좀 눈에 띄는데 특유의 급수설비나 높다란 탑처럼 생긴 급탄설비가 그것들입니다. 현재의 기관차 사업소들은 저런 설비가 거의 눈에 띄질 않는 편입니다. 대개 매립되어 있거나 해서 잘 보이지 않게 설치되는 편이고, 돌출되어 있다고 해도 건물안에 있는게 대부분이고, 그나마 세차기 같은게 좀 튀는 수준인데... 저때에는 수십톤에 달하는 석탄을 한번에 싣고, 또 수시로 톤 단위의 물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특유의 설비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저런 설비가 없다 보니 수도관으로 급수를 하고 석탄은 페이로더나 포크레인을 써서 싣기도 한다고 합니다마는, 이건 어디까지나 관광용으로 저율 운행을 하니 가능한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3) 화부의 업무
증기기관차의 운전 자체는 지금의 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특유의 조작요령이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스로틀 외에 컷오프, 이른바 체절이라고 하는 조작이 있는 건데 아무래도 이런건 글도 많이 남아있는 편이기도 하고 증언을 얻을 여지도 좀 있는데 반대로 영상으로는 잘 안남아있는 편입니다. 대신 중요하면서도 은근히 토막토막으로 남아 있는 화부(firemen)의 일을 영상으로 남긴게 눈에 띕니다. 전통적으로 증기기관차는 1명의 기관사와 1명 또는 2명의 기관조사가 승무를 합니다. 한참 고용문제가 대두되던 시대엔 3명의 기관조사를 승무시킨 예도 있고, 또 별도로 첨승인이 타기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마는.
영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어떻게 석탄을 연소시킬 것인가 부분입니다. 탄의 입도라던가, 화상에 탄을 어떤 요령으로 던져 넣는가라던가, 증기나 물을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 또 흡기나 배기를 어떻게 맞추는지 이런 요령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도 영어가 그리 유창한 편은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긴 어렵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무조건 탄을 많이 넣어 호쾌하게 검은 연기가 뿜어나오는게 좋은게 아니고 또 공기를 충분히 불어넣어 연기가 안나게 만드는 것도 좋은게 아니란 부분이 중요한 포인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 요령있게 잘 하지 못하면 탄은 탄대로 낭비되고 화력은 잘 안올라 증기생산이 모자라게 되어서, 화부의 숙련도와 기관사와의 협조가 기관차의 성능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기기관차 관련해서 또 재미있는 포인트는 탄의 품질이나 물의 성질(센물이냐 단물이냐), 또 도중에 실시되는 보일러나 스프링의 품질시험 같은것도 있는데 이건 영상으로 다룬게 안보여서 생략합니다. 뭐 저런 영상들 조차도 좀 보이는 부분 위주로 포인트를 집은거다 보니, 실제의 현업에서의 노하우나 숙련의 골자를 전부 뽑았다기엔 아직 빈 데가 많긴 할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까지는 이걸 잘 아는 분들이 여럿 있고 그 후진에게 전수를 했을건데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는 많은 부분이 유실된게 안타깝달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증기기관차의 복원은 너무나 아득할 뿐이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