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GTO 사이리스터 인버터 베이스의 300계 신간선 전동차를 한국 규격에 맞게 조정해 제안하거나, 전구간 별선을 전제로 제안했다고 추정을 했고, 그래서 중정비 이전문제나 전체 구간의 별도 건설이 비용문제의 키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생각한 배경은, 89년 즈음해서 뜬금없이 나타난 야마가타 신칸센 구상이었습니다. 87년 민영화 출범이 있고 이후 JR각사는 경영이 빠르게 안정화되는(사실은 정부가 상당부분의 부채를 인수하는 빚찬치 덕이지만) 모양새가 나타납니다. 다만, 국철 당시의 과도한 건설투자와 누적채무의 공포가 남아있던 시대다 보니 신간선은 상하분리(이후 JR매입하여 상하일체로 전환)에 동결된 각 공사 및 전국 신간선철도 정비는 모두 그대로 통제하고, 조반신선 같은 건에 대해서도 JR동일본은 건설이나 운영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뜬금없이 정치와 협의끝에 저 야마가타 신칸센을 미니신칸센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여기서 정비신간선으로는 순번도 한참 밀리고 또 대규모 공사를 꺼리는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현지에서 요구만으로 저런걸 결정하기엔 좀 온도차가 많이 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결정이라면 결정이었습니다. 정비신간선 계획 동결의 해제가 93년 부터 이루어진걸 생각하면 좀 묘하게 서둘러서 건설이 들어간 감이 있는데... 여기서 머리를 치는게 미니신칸센의 규격이 한국의 기존선 철도와 대동소이하다는 부분입니다. 표준궤 철도, 교류전철화(다만 25kV가 아닌 20kV), 그리고 3m를 넘지 않는(2,945mm) 차체 규격이라는 점에서 이런 의구심이 든달까.
특히나 차량 사양면에서 좀 눈에 띄는게 300계 차량이 GTO사이리스터에 알루미늄 차체 등 꽤나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데에 비해서, 꽤 구태의연하게 사이리스터 제어 외에는 철제차체에 직류전동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게 좀 괴이쩍은 감이 있습니다. 물론 도호쿠 신간선에 200계 차량이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병결시 모터 성능을 맞추기 위해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할 여지는 있지만, 나중에 이 차량과 VVVF제어를 적용한 E4계 차량을 병결하거나 하는 예도 있고, 또 차체 재질의 경우 이미 스테인리스나 알루미늄 차체 자체는 상당히 실용화된 것도 있어서 뭔가 "사연"이 있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400계 차량의 이런 정황에 추가적으로 의심이 되는 부분이, 초도시험차량의 완성 시점이 1990년 11월로 개궤공사가 다음 해에 착공되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느낌이 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고속철도를 노태우 행정부의 공약사업으로 검토가 본격화 된 감이 있는데, 90년대 말에 코어 시스템 결정을 노태우 행정부에서 하느냐 다음 행정부에서 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상당히 심했고, 실제 91~92년에 거의 결정까지 갔다가 최종적으로 93년으로 밀리는게 당시 언론에서 확인이 됩니다. 이 미묘한 타이밍을 생각하면 90년 11월의 완성차가 나오는 것에서 뭔가 묘한 뉘앙스가 느껴진달까.
만일, 이 가설이 맞다면... 몇몇 일빠와 혐한들이 KTX-1차량을 구매한 걸 두고 잘못된 결정이었네 어쩌네 하는 것이 그야말로 아주 무지한 오지랖에 가깝단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최고속도 시험 운전에서 348.8km/h 까지 낸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운용속도 240km/h를 기준으로 한데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도태단계에 있던 직류전동기를 채용하고, 당시 이미 국내에서 전동차용으로 채용을 추진중이던 GTO 사이리스터 인버터 제어기술도 빠진 그야말로 깡통차에 가까운 기술제안인 셈입니다. 당시 제안된 TGV 기술은 300km/h 영업운전을 시행하고 있었고, 비록 이후에는 정비성이 좋은 유도전동기에 밀리지만 당시로서는 차세대 전동기로 검토되던 동기전동기를 채용했으며, 비록 현대적인 인버터는 아니지만 장기간 입증된 사이리스터 인버터였으니, 여러모로 당시로서는 기술적 사양차이가 제법 났다고 해도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랄까.
물론 이런 기술결정을 비교적 최선을 다 해서, 꽤 철저한 가격협상까지 한 끝에 나름 합리적으로 내렸다 해도, 결국 93년에 10.7조원으로 99년 완공으로 추진되던 사업은 이후 4번의 사업변경으로 2배 가까이 사업비가 치솟고, 사업기간도 6년에서 완공까지 20년이 걸린 역대급 사업이 벌어지면서 그야말로 완전히 꼬이게 됩니다. 93년의 기술이 10년뒤에는 판도가 완전히 바뀌어서 진부화되어버렸으니, 그 때의 최선의 판단이 이후에는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버린 셈이기는 합니다. 다만, 그때의 결정을 우매한 결정이네 뭐네라고 하기에는 실제 컨텍스트는 상당히 복잡하달까.
P.S.: 사실... 저 고속철도 결정 과정에서의 흐름에서 조금 더 일본측이 "이럴수가 있나"라는 반응이 나온건 단순한 민족감정적인 이유라고 몰기에는 좀 더 복잡한 정황이 있습니다. 함부로 떠들고 다닐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여기에 적진 않습니다만... 일본측은 기존의 커넥션만 믿고 꽤 기고만장해 있다가 통수를 당한게 아닌가 라고 추정이 되는 정황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