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로 일단 잠정적인 휴전이 체결된 모양입니다. 기록을 퍽퍽 갈아치우면서 역대 최장을 3배수 이상 넘기면서 진행된 이 분쟁은 그야말로 1차대전 당시의 서부전선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진척이 되었고, 그 진행과 종결 또한 그와 비슷하게 흐른 거 같단 느낌입니다.
1.
분쟁의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정부의 어이털리는 헛짓거리인 성과연봉제라 할겁니다. 사실 성과연봉제와 유사한 성과급 제도 자체는 10여년 전에 보너스 등의 이름으로 2개월이나 3개월 단위로 지급되던 일종의 수당계산에서 빠지던 급여를 정부가 각 공공기관을 컨트롤하는 재원으로 삼기 위해서 경영평가와 연계되는 성과급 제도로 개편한 것이 시초고, 여전히 이걸 가지고 분쟁이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거의 급여제도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건 수당 등과 연계되지 않고, 1회성으로 주어지는 건데다, 삼성계 민간기업에서 실시되어 확산된 회사실적에 연동된 성과금 제도랑 유사한지라 용인되었다 할겁니다.
하지만, 성과급제도와 달리 성과연봉제는 각종 수당을 계산하는 개인의 기본급에 근본적인(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네거티브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제도가 되고, 무엇보다 주로 정부경영평가라는 외부평가를 기본으로 하는게 아닌 전적인 내부평가나 인사고과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며, 그나마도 호봉제의 틀이 깨진 연봉제 형태로 전환되는 제도가 됩니다. 특히 내부평가라는 것은 인사고과를 해보거나 당해본 입장에서라면 별로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여기에 연계되는 급여체제라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고, 당연히 그런 반감을 기초로 분쟁이 벌어졌다 할겁니다.
사실 기존 성과급 제도 자체도 잘 돌아가는 제도라긴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경영평가가 굉장히 정실적으로 정부 관료의 의향에 따라, 주로 배점방식을 편의적으로 조작해서 특정기관이 점수를 잘 받지 못하게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동작하기 일쑤기도 합니다. 정부역점사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도에서 이루어지지만, 기본적으로 경영의 건실성이나 안정성을 봐야 할 경영평가가 그냥 정부에 개기냐 안개기냐로 결정되는 구도를 만들어놓는 문제가 있어 왔습니다. 또 이걸 시행하는데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성과급을 재분배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데가 종종 있고, 공무원들의 경우는 성과급제를 기껏 도입했더니 그냥 연공서열이나 전입순, 심지어는 기관의 예산사정에 따라 힘있는 소수에게 몰아주는 식으로 평가를 매겨 성과급읍 주는 행태도 일상적인 상황에서 인사고과나 내부평가 연동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공정성 따위는 안드로메다 관광을 보내놓고 시작할 가망이 매우 높달까 그렇습니다.
그나마도 이런 성과연봉제 도입 자체가, 공공기관에서는 별 의미가 없을게 뻔함에도, 경제단체(이름을 말하면 우남찬가 Mk.2를 만들어주려고 들테니 생략합니다만)의 민원성으로 시작된 거고, 실제 제도적 구조는 전혀 다를게 뻔하지만 공공기관에서 같은 이름의 제도를 도입해 놓으면 그걸 빌미로 자기들도 멋대로 제도구성을 할 수 있을걸 기대하고서 추진되는 모양새인 만큼, 그야말로 "자칼에게서 태어난" 제도라고 해야 할겁니다.
2.
파업의 진척은 뭐랄까 서로의 프로시져대로 확산되어 갑니다. 협정들을 끌어모으고, 선전포고들이 오가면서 전 유럽이 전화속으로 걸어들어가고,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네 뭐네 하는 설레발이 확산되고 그렇게 갔습니다. 그리고 접전이 일어나는 한편으로 상대의 동맹들을 비난하는 각이 나옵니다. 물론, 외교적 수사에 근거해서 말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정치가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적 자치의 원리를 깨뜨리는 것도 있고, 외부의 중재에 의존하다 보면 분쟁의 양상도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교섭을 성실히 하기 보다는 1차대전때 그랬던 것 처럼 외부의 동맹군을 끌어들이고 공동의 의제에 끌려다니게 될겁니다.
문제는 이 사적 자치의 원리를 정부도 똑같이 깨고 있다는 점일겁니다. 초기부터 불법파업이라 규정짓고, 성명서를 남발하는 과정은 전형적인 외부개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법률적으로 철도 등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필수인력 배치의무 같은 것 까지 부과하고 있지만, 이런 원칙을 깨트리고 정부가 적극 개입한 시점에서 정치는 개입마라 라는 주장은 이미 중립성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릴겁니다. 게다가, 이미 기재부를 필두로한 정부 부처가 이미 노사관계의 틀 밖에서 노사간의 협약내용을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내리는게 지난 10년간의 관행처럼 움직이고 있으니, 아무리 공기업의 사회적 특수성이 있다 하지만 기업으로서의 자율, 자치란 게 없는 수준이기까지 합니다. 이러고서 정치는 개입마라 주장하는 건 이미 근저가 썩어빠진 주장이랄까.
3.
여하간 전쟁은 벌어졌고, 양측의 작전 또한 지난 대전의 경험을 살려 착착 진행됩니다. 파업선언과 함께 근무자들이 일선에서 빠지자, 사측과 정부측이 가진 슐리펜 계획, 즉 불법으로 규정하고 업무방해로 걸며, 손해배상을 씌우고, 각종 프로파간다를 열심히 살포하는 과정이 착착 돌아갑니다.
다만, 이번에는 루이 나폴레옹 3세같은 지휘부도 아니고, 사회 분위기도 과거와는 달라서 아무리 우익을 강화하지만 제압능력이 계속 불충분하고 참호만 길게 늘어서게 됩니다. 이미 2013년에도 그랬습니다만. 결국 형사처벌이 불발되면서 슐리펜 계획은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피해를 누적하면서 버티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달까 그렇습니다.
반면, 노측의 파업전선 역시 충분한 데미지를 입히지도, 반격의 실마리를 제대로 확보하지는 못하고 주저앉은 채로 막대한 자원을 소모하는 참호선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막판에 법적 쟁송이라는 돌파구를 찾아보지만 불확실성도 크고, 사실 이걸 할거면 이렇게까지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면서 전쟁을 벌일 이유는 없었을겁니다. 경제적인 피해는 사회와 회사만 보는게 아니라, 노조 자체도 어마어마하게 보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결국 어떻게 질서있게 전선을 정리해 철수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 셈입니다.
결국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이라는 구호와 달리 모두가 끝장나는 전쟁이 되어버렸달까.
4.
노측의 철수 과정에서 보이는 잡음은 뭐랄까... 성과 없이 물러나는 모든 전쟁이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일본군이 2차대전 과정에서 늘 끌려다니는 강경론의 기본 논리를 다시 보는거 같달까 그렇습니다. 태평양전쟁 개전 시점에서 미국이 금수조치를 가하고, 국무장관 코델 헐이 일본에 전한 최후통첩까지 받아들고서도 중일전쟁에 쏟아부은 막대한 인명과 전비를 없는 걸로 돌릴 수는 없다면서 결사항전론을 계속 군부가 관철시키는데, 딱 그걸 보는 기분입니다.
전투에서는 질수도 이길수도 있고, 전쟁은 또한 무력으로 하는 외교이자, 정치의 연속이라 할겁니다. 물론 지금 물러나게 되면 다시 파업을 할 수도 없고, 사회의 관심이 식고나면 정부가 얼마나 악행을 더 저질러 올지 모를 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1억 총옥쇄 같은 방향으로 가는게 능사는 아닐겁니다. 우수한 CEO는 잘 벌고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 보다, 손절매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 할건데, 이번 분쟁에서는 그리 깔끔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한 것 같아 보입니다.
5.
이미 누적된 정부의 정책실패 덕에 철도부문은 재무적 실패로 회사로서의 존재 가능성이 흔들리고, 사회 기반시설로서의 역할도 상실하며, 자칫하면 2000년대 영국철도가 겪었던 개지랄난동 민폐를 재현할 가망도 큽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관료들은 먹튀를 감행하고, 욕먹는건 철도 일반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될겁니다. 이런걸 막기 위해서 결연히 투쟁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 앞으로의 과제는 동맹을 늘리고 공감대를 확대해서, 근본적으로 이런 투쟁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판을 짜는게 맞을겁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맛깔나게 싸대기를 후리면 뭔가 되겠지 하는 모험주의적인 또라이 관료들이 안나오진 않겠습니다마는, 섯부르게 사고치지는 못하는 판을 짜는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노조가 너무나 많은 정치적 미션을 가지는 상황 역시 좀 해소가 되긴 해야 할겁니다. 이건 노조의 노력으로 될 일은 아니기는 합니다마는. 너무나 많은 상징성이 집중되다 보니, 한 기업장에서 조합원의 이해를 관철하는게 주가 되어야 할 조직이 정당이나 사회단체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연대라는게 중요한 가치기는 하지만, 그게 무한책임을 대신 지어주는 구조가 되는 걸 좀 해체하기는 해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이번 분쟁을 두고 "내부로부터의 중상"이니 뭐니 하는 식의 이야기가 번져서 세계를 불사르는 괴물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