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서 부정청탁법 위반사례의 냄새가 납니다마는 뭐 그건 사실관계를 국외자가 알기는 어려우니 그냥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라고 생각을 하는게 맞을겁니다. 적당히 사실관계를 끌어다가 썰을 풀었는데 보면서 참 뭐 이런 뻘소리를 까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줄타기는 잘한 거 같아 보입니다.
일단, 기사 말미에 적지만 서울역 체제 117년 어쩌고 하는거 부터가 이미 망한 드립에 가깝습니다. 서울역의 남대문정거장 연원은 공식간행사에서 자주 다루지만, 그 기준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원 경인선의 시종착으로서 쓰인 서대문정거장이나 경원, 경의선 거점인 용산, 신촌같은데는 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실질적으로 서울역이 중앙역으로써 입지를 다지게 된건 1923년에 경성역이란 이름을 받은 이후로 봐야 할겁니다. 1921년에 수색~신촌~서울간의 경의선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경의선이 오지도 않았고, 이 시점 이전까지는 터미널이 모두 다 따로 놀던 시대라서 독점 어쩌고를 논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대문정거장이 독점체제의 거점이 된 것도 무슨 경쟁체제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일본이 가진 철도사업의 경험에서 나온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도쿄의 경우 19세기에 철도건설을 시작해서 일단 1895년 시점에 관설철도 간선(현재의 도카이도 본선)의 신바시, 도호쿠 방면으로 일본철도주식회사의 우에노, 그리고 코우부(甲武)철도(현 주오 선)의 이다쵸 3개 터미널이 성립하고, 이후에 만세이바시, 료고쿠 등의 터미널이 중구난방으로 설립됩니다. 이후 어느정도 재정이 확충되면서 고가철도 형태로 도심관통선을 두게 되고, 이를 통해 1914년에 중앙역이라 할 수 있는 도쿄역이 설치됩니다. 도쿄역 플랜 자체가 천황제 제국주의의 완성을 선언하는 그런 도시계획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데, 마침 서울역 건설을 검토한 1910년대 후반은 굵직한 무력투쟁을 진압하고, 마침 전시특수와 경제활황 덕에 철도재정도 상당히 좋던 시점이라서 대규모 건축을 지를 수 있는 여건이어서 식민지배체제의 성과물로서 그런 과감한 투자를 한거라 봐야할겁니다. 그게 당시의 정비경험을 집약한거다 보니 지금까지도 잘 우려먹은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동경성(청량리)이나 남경성(영등포) 같은 역을 둔건 그냥 그 당시의 도시행정 유행이던 광역화(대도쿄나 greater london같은)의 유행에 따라 경성부가 영등포까지 포괄하게 되고 하면서 그렇게 한거였고, 무슨 시종착역을 갈아치우겠다는 발상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좀 썰렁한 이야기라 할겁니다. 두 역의 이름이 높게 나온건 그 두군데가 각각 경인선과 중앙선의 분기역으로 서울시계 안에 있던 중요한 역이라 그리 붙였다 봐야지, 간선철도의 거점역이 되고 어쩌고를 논하는건 많이 나간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광명역의 경우는 도전장을 냈다기 보다는 건설관료와 철도관료의 마인드 차이에서 벌어진 일에 가깝다고 보는데, 구도심 따위 어찌되건 말건 새로 지으면 그만이고 대규모 교통시설은 공항처럼 시외에 지어놓고 자동차로 연계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는 관료들의 마인드가 친 사고라 봐야할겁니다. 덤으로 철도청의 기존시설에 의존없이 아예 독립된 고속철도를 별도 사업으로 분리하려고 하던 사심 가득한 양반들 덕에 망한 역이 되었다 봐야할겁니다. 결국 광명역도 활성화가 되기는 하지만, 경기도 주변 도시가 과밀화되고 버스와 도로가 확충되는 시점까지 10여년과 막대한 예산을 허비한 셈이고. 용산역의 중앙역화 관련한 이야기도 솔직히 말해서 그걸로 이득보는 누군가의 이해관계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누가 단언을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경쟁강도가 미흡하다면서 까는 포인트가 철도공사가 중구난방으로 신설된 역사에 KTX를 모두 정차시키는 배짱영업을 고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마타도어라 하겠습니다. 주간조선에서 함안역 가지고 철피아 드립을 치던 것도 있는데(링크) 그걸 무슨 배짱영업 운운하고 있는건 비열한 비유랄까. 까놓고 말해서 철도공사가 배짱영업을 하는게 아니라, 그걸 그렇게 만든 보이지 않는 손들, 정치와 관료, 지역의 이해관계자들 작품이라 할겁니다. 정차역 논란같은걸 열심히 보도해서 불질하는 양반이 어디의 누구였을까 스스로 반성이나 하고 말을 했으면 싶은 생각도 많이 드는 부분이고. 지금도 김제, 장성, 광주 운행중지가지고 지역에서 불뿜는 양반들 수두룩하고, 언론에다가 기사들 열심히 태우려 시도하는데 그때마다 만만한 홍어좆이 철도공사였지, 철도시설공단이나 철도국을 깐 언론사는 한 곳도 없었던 기억이 나는데 말입니다.
정작 열차 삭감이나 역 삭감을 하려 들면 네마와시 죽어라 돌고 나중에 불나는 건 철도공사지, 국토부나 언론들은 그 꼴을 보면서도 심심하면 합리화 노오오오력이 부조카네 드립이나 쳤지, 뭐 도와준것도 개뿔도 없는 사람들이 말은 참 쉽게들 합니다. 왜 경산역 KTX정차하게 된거 가지고 비슷하게 관피아나 영남대줄기 드립좀 쳐보시지 그러셨습니까들? 만만한 진영역에 대고 노통 고인드립좀 그만 치시고?
전라선이나 경전선 도중 정차역의 경우는 KTX 기존선 직결운행이 새마을호의 확장판인 점도 감안을 해야할겁니다. 무정차로 내빼봤자 기존선에서는 겨우 역당 2~3분 정도를 버는게 전부인 상황이고, KTX운행으로 새마을호 운행횟수를 삭감당한 상황에서 그 이용객이 도로로 빠져나가느니 철도로 흡수하는게 나은 방향일겁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라면 선택정차를 통해 수요를 적당히 유지하고 시간 손실은 줄이는 방법으로 가는게 합리적인 방향일겁니다. 배짱장사가 아니라. 물론 전라선이나 경전선은 오랫동안 단선이었으니 새마을호도 교행덕에 정차를 많이 해야했고 그래서 정차역이 많다는 역사적인 부분도 있고.
그리고 가장 스위치가 눌리는 부분은, 사설철도를 왕성하게 허용한 조선총독부 철도국 체제를 빠는 포인트라 할겁니다. 이전에 민영철도로 시작한 경부·경인철도 운운하는 멍청이가 있었단 말을 듣고 시껍했는데, 이번엔 나름 언론사에서 일제때의 사철 개념이나 이런걸 참 아름답게들 보는 글을 봐서 여러모로 아연실색이랄까 그렇습니다. 그냥 그당시에 총독부 재정이 그리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철선의 대행으로서 내지의 민간자본을 동원하려던 차원에서 그렇게 한거에 가깝지, 경쟁이고 나발이고의 대상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찍해야 762mm 협궤나 깔고 다니던 회사들이 경쟁체제라고 하면 자전거나 마을버스도 철도와 경쟁한다 해야 할겁니다.
일본철도의 관민 병행 정책은 기본적으로 영국의 자유주의적 발상이나, 프랑스의 민간지원적 발상에서 출발된 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프라를 없는 재정으로 빨리 하려고 시도하면서 그렇게 된 거에 가깝습니다. 어느정도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관의 통제를 강화하고, 간선의 일원적 수송체계를 확립하는게 중요하다 생각해서 1900년대의 대대적인 간선사철 매수정책을 집행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상 20세기 이후의 일본에서 사철은 국철의 보조로서 자잘한 지선이나 도시내 수송을 하는 역할만 하게 되었지, 경쟁체제 운운은 뭐랄까... 도시권의 대규모 사철 종사원의 부심부리기 차원에서나 나왔다 봐야 할겁니다. 당장에 지방사철의 존폐가 국철의 승차권 대행발매나 환승처리에서 판가름이 나는 판에 뭔 경쟁을 하겠습니까.
일제당시의 사철은 크게 2개 층위로 나뉘는데, 하나는 1917년 이후 등장하는 20년대 사철들이고, 다른 하나는 30년대 중반쯤 등장하는 사철들입니다. 전자는 실질적으로 국철의 대행노선으로서 운영되던 것들로 이후 총독부 철도국이 매수해서 국철노선에 편입해버리거나 하는 경우가 여럿이고, 후자는 그나마 지선망으로서 독립노선이 제법 되기는 하지만 지선철도에 가까운 것들입니다. 그나마도 이들 노선들은 대부분 총독부가 제공하던 적자 경상보조나 차입금 이자의 보조금을 파먹던 노선들이 대부분이어서 제대로 경영체제를 갖춘 건 그나마 노선이 많고 몸집이 큰 조선철도 주식회사 정도, 그나마도 철도국 관료 낙하산 자리 수준이던 회사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해방 이후에 21%의 사철이 있는데 왜 그게 다 없어졌는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없이 참 해맑은 모양새인데, 그걸 없앤게 바로 미 군정청입니다. 1946년에 군정청 명령으로 시행된 '조선철도의 통일' 명령으로 각 사설철도가 그대로 교통부 철도국에 설비일체와 직원 일체가 그대로 통합이 되어서 지금의 국철로서 이어져오게 됩니다. 적산몰수로 아예 국유상태이던 삼척철도는 저 명령 적용 없이 그대로 철도국에 병합이 되었고 말입니다. 정책의 기저에는 국내 정치인들의 의향같은게 있긴 하겠지만, 군정청에서도 통합운영이 바람직하고 효율적으로 봤기 때문에 저렇게 된거라 할겁니다.
철도가 도로에 대해 완패하게 된게 저 철도 단일화같은 정책변화의 결과라는 주장도 좀 말은 안되는게, 적어도 90년대 이전까지는 철도는 계속 수송량의 증가추세가 이어집니다. 그 처리능력을 압도할 만큼 도로수송량이 더 빠르게 확장되어서 철도의 역할이 줄어들었다는게 맞을겁니다. 1960년대 이후로도 90년대까지 철도 여객 수송량은 단 한번도 감소추세로 전환된 적이 없었던 게 그런 반증이라 하겠습니다. 투자가 못따라갈 만큼 빠르게 경제와 사회가 확장된 결과기도 하고, 철도가 모든 수송을 포괄하는게 비효율적인 체제로 점차 빠졌기 때문이기도 한 셈입니다. 선진국에서 철도몰락의 원인으로 꼽는 자동차화는 한국에서는 아무리 빨리 쳐줘도 1970년대 이전까지 올라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랄까.
이점에서 철도경영이 완전한 독점사업 운운하는 건 말이 안되는건데, 그렇게 완전한 독점사업이라면 왜 버스나 자가용을 신경쓰겠습니까? 그바닥은 그 바닥대로 알아서 돌아가고, 철도는 수익성이 최대가 되도록 경영을 하면서 수익안되는 사업은 버스나 자가용으로 가든 말든 내팽겨쳐야 정상인거 아니겠습니까. 외려 고속철 때문에 국내선 항공이 무너지고, 버스가 프리미엄 버스를 찍어내고 이러는게 실질적으로 교통수단간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단 증거에 가까울겁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당장에 철도운임이 2배쯤 뛰었던가, 고속철 입석으로 좌석정원의 2배쯤 태워다니던가 그랬을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부분에서 철도운영과의 모 씨가 “당초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철도노조 등의 반발로 주간선(경부선, 호남선)에서만 제한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한걸 인용해서 약을 파는걸 거드는데... 까놓고 말해서 차량회전율이나 승무인력활용을 최대한 효율화하고, 최대한 돈되는 수요만 빼먹어 보겠다고 그렇게 체제를 몰고간 게 뻔히 보이는데 저렇게 약을 파는 건 참 견강부회의 극이라 해야 할겁니다. 언제부터 정부가 그렇게 노조 눈치 보고 일했다고 떠드는지 참 엄살도 가지가지다 싶달까. 그렇게 주간선만 다녀야 할거 같으면 기존선 직결로 다니는 광주송정~목포는 왜 다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어차피 평택분기에서 오송까지의 복선에 최대 170~180회 이상의 열차를(복합열차는 1회로 쳐 봤을때) 우겨넣는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적자부담을 가지고 운행해야 하는 지선 직결구간 운전을 회피하고 흑자를 볼 수 있는 고속전용선에 올인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사기를 치고 있으니 참 소오름끼치는 사람들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