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속선에 원강선까지 받아내고 나니 태백선 축에서도 욕심이 뻗어나오는 모양입니다. 무려 고속화된 복선전철을 요구하고, 여기에 강원랜드의 이익잉여금을 때려박아달라는 이야기까지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현재 개량사업이 제천까지 2018년에 완성이 되면 대략 130km 중반 정도의 거리까지 대충 10km 정도 단축이 되고, 여기에 열차운행속도가 신형차량 투입 등으로 최적화되면 1시간 초반에 제천까지 열차가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만 보면야 여기서 다시 태백선을 개량해서 도중 구배 우회를 터널로 줄여 5~10km쯤 줄이고 고속화 한다면 사북이나 태백까지 30분 정도에 주파할 수 있을테니 2시간 안에 정선, 태백 관내에 열차가 들어오게 할 수는 있을겁니다.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야 불가능할게 없긴 합니다.
문제는 돈을 생각하는 순간 많이 깝깝한 발상이라고 해야 할겁니다. 산악지역에 200km/h이상으로 주파가능한 선로를 건설하는데 드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120km 구간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4조에 육박하는 수준인데, 태백선의 경우 기 복선개량된 구간과 태백역 이후의 접속구간 개량을 빼고 봐도 최소 70~80km정도의 노선연장이 필요하고, 이 대부분이 터널로 계획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최소한 2조 7천억에서 3조 원에 달하는 총 사업비가 필요하게 될겁니다. 이정도면 어떤 국가적인 편익을 산출할 수 있다면 해볼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현실은 매년 이용객이 줄고 수익성도 지극히 불투명해서 이익은 커녕 유지보수비나 동력, 인건비 회수가 걱정될 정도의 사업에 저 돈을 쓴다는건 좀 국민들을 납득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이야기라 할 거 같습니다.
여기에 고속화 개량을 하게 된다면 기존선의 역들 중에 얼마나 제 위치를 유지할지, 아니 유지는 둘째치고 여객기능을 건사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됩니다. 태백선에서 그나마 정규 여객 취급역이 말많았던 쌍용과 영월, 예미, 민둥산, 사북, 고한, 태백 정도인데, 이들 역을 유지한 채로 고속화 개량이 가능할지는 좀 회의적입니다. 동네가 딱 거기밖에 없으니 선로를 막 틀어서라도 몇 개 정도는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태백선이 가진 가장 큰 난점은 고도차가 격심하다는데 있고 결국 고속화 개량을 하다보면 지표에서 100~200m정도는 들어간 지점에 역이 놓이지 않으면 안되는 각이 나온다거나 할 가망이 높습니다. 태백선 프로파일도를 보진 못했지만, 대충 영상 등으로 체크해 보면 예미서 자미원까지 30퍼밀 구배를 계속 지나면서 쭉 올라갔다가, 거기서 태백까지 계속 급경사 내리막으로 가는 모양새인데, 고속철도 기준 25퍼밀 구배로 선을 뽑는다 치면 민둥산역은 지하 300m쯤 들어간 위치에 있을 가망이 높습니다. 추전부터 태백, 문곡까지는 계속 내리막으로 가는데 아마 사북, 고한도 지하 깊숙히 들어박혀야 할거고 말입니다. 이러면 기껏 철도개량을 하고서도 역이 없어서 지역은 맛이 가는 결과를 초래할겁니다.
그렇다면 개량도 뭣도 말고 방치플레이나 하잔 말이냐 라고 하면 좀 복잡한데, 일단 시설물의 개량사업 자체는 필요합니다. 태백선도 이젠 50년을 맞이하는 시설물이고, 아무리 당시에 국가적 사업으로 했다고 하지만 기술이나 재정적으로 열악하던 시절에 지어놓은 만큼 재해에 대한 취약성이나 유지보수 부담이 커지는 문제들은 존재합니다. 따라서 복선 고속전철같은 허황된 사업을 밀다가 진이 빠지기 보다는 좀 합리적인 수준의 단선전철이나 부분복선전철 시설개량 정도로 방향을 잡는게 맞을거라 봅니다. 사실 2006년 경에 산악철도 구간의 개량사업 검토가 있었던 모양이고, 이미 10년전 이야기긴 하지만 당시에 예미에서 사북 구간을 단선전철로 R=600, 최급기울기 22~24퍼밀 정도 수준의 개량계획을 뽑아내기는 했습니다. 터널연장이 전 노선의 80%에 달하는 막장상이기는 하지만, 당시 비용으로 2800~3700억원 정도 수준에서 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가 나오기는 했습니다. 이정도 수준에서, 여타 선형불량 구간을 R=400~600정도까지는 개량하는 수준을 추가하는 것 까진 생각해 볼 수는 있을겁니다.
그리고 이 수준까지 도달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차량쪽입니다. 바로 틸팅열차 쪽인데, R=400~600내외의 곡선까지 확보되고 장대급구배가 최소화된다면 틸팅열차 투입으로 20% 이상의 시간단축 효과는 끌어낼 수 있을겁니다. 현행 다이아에서 제천~태백간은 무궁화호가 1시간 40분 내외로 주파하는데, 시설개량에 틸팅열차가 가진 곡선통과속도 향상까지 합쳐 들어간다면 1시간 초반까지 당길 수 있을겁니다. 이정도면 청량리~제천간의 개량에 따른 운행시간 단축을 합치면 2시간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단축할 수 있고, 이정도면 경쟁을 해볼 수 있을겁니다. 고속전철 하겠다고 3~4조를 꼴아박고 10여년의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시설개량과 차량 조달에 1조원 내외, 그리고 5~7년 정도기간을 투자해서 현재 청량리 기준으로 3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1시간 정도 깎아내는 쪽이 합리적인 대안이 될겁니다. 또한, 연선 각역의 존치를 가급적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을거고 말입니다.
태백선은 현재로서 장기존속 여부가 불투명한 노선이기도 합니다. 인구기반이 줄기도 줄지만, 동서간 횡단노선으로서의 중요성도 줄어드는데다, 급구배 덕에 화물수송 면에서 수도권 방향에서는 경강선 축이, 남부지역에서의 접근은 동해선이나 영동선축이 유리해지면서 현재 선구 내의 광업 화물마저 마르게 되면 존속 이유가 희박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먼 미래의 호화찬란한 꿈 따위를 쫓기 보다는, 당장 근시일내에 확실히 할 수 있는 사업을 추구하는 쪽을 중시해야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