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국토부의 좀 봉창두들기는 듯한 무정차 열차 도입 드립덕에 등급화 주장이 꽤나 물위로 올라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래도 일본의 운영패턴을 많이 보기도 하고, 또 워낙 난립하는 정차역 덕에 소요시간 저하같은게 줄줄히 일어나다 보니 여기에 대한 반감에서 주장이 나오는 걸로 보입니다. 다만, 이게 그저 좋기만한, 그리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는 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무정차화 도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영역이라 할수 있습니다. 사실 수요구조를 보고 밀어붙였다기 보다는 시설공단의 입맛에 맞게 병목구간에 최대한 우겨넣기 좋게, 그리고 과거 고속철가지고 큰소리치던 시절의 2시간 대 주파 드립을 맞추기 위해서 나왔다고 봐야할겁니다. 거기에 일단 차량회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루 한두편 정도가 아니라 좀 더 공격적으로 밀어넣고, 그걸 모아서 편도 1회라도 닦닦 긁어내야 할테니 대량배차를 꾀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거고 말입니다. 부산이 나름대로 대수요처기도 한지라 아주 수요가 안나오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요를 뽑아낼지는 좀 우려가 든달까 그렇습니다. 구 #001, #002열차도 생각만큼 자리를 채워다니진 못해서 산천 단편성 운행이 기본이던 때가 많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등급화 이야기는 저 무정차 열차 도입에서 좀 더 나가서 주장이 나오는데, 이건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그리 맞는 이야기도 아니고 현실적으로도 좀 무리수가 많은 이야기라 생각이 듭니다. 등급제를 단순히 계통별 애칭을 붙이는 레벨이 아니라, 한 계통에서 속도나 정차역으로 계통을 구분짓는 개념으로 보는 스타일이 바로 이것으로, 가장 직근한 예가 일본의 도카이도 신칸센이라 할겁니다. 이런 등급제 구조는 수송구조에서 여러가지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라 할겁니다.
우선, 노선자체가 분기가 없거나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구조여야 합니다. 도카이도 신칸센의 경우 산요신칸센 구간까지 포함해서 도중에 노선의 분기가 없습니다. 도중회차는 정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일 노선 상에 회차로만 계통이 구분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속철도는 기본적으로 2개의 고속선이 분기하고, 거기서 다시 파생노선으로 기존선 경유 5개의 분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서울 위쪽으로 기지 입출고인 행신과 인천공항, 그리고 수서가 추가되어 있어 발생 가능한 계통이 7X4=28가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중 의미가 없는 걸 치고, 복합열차로 처리해 계통의 가짓수를 줄여놓아서 정리를 했는데 다시 등급구분이 끼어든다면? 등급 숫자만큼 승수가 계통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그야말로 환장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배차량이 충분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립니다. 한 노선에서 저런 상하관계로 등급을 나누게 될때 가장 관건은 하위등급의 정차역들이 보는 시간적 손해고, 이거 때문에 아무리 저게 롱테일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역이 돌아가는 이상에는 막 쳐내는 방향으로 가기는 힘듭니다. 코기방패 세우고 뻘짓거리 잘하는 시설공단이나 국토부의 높은분들 조차 역을 날리거나 쭉쩡이로 만드는 그런걸 막 하지는 못하니 말입니다. 그런 시간적 손해를 줄이려면 배차가 충실해서 대기시간을 버는 방향으로 가던가, 아니면 환승을 잘 찍어서 장거리를 가더라도 손해를 덜보게 하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근데, 앞서 분기가 많은 노선이라는 특성에, 병목이 곳곳에 도사리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고속철도에서는 충분한 배차를 확보한다는 건 좀 많이 기대하기가 어렵달까 그렇습니다.
단적으로 행선 7가지를 그냥 순환으로 5분배차한다고 쳐도, 같은 행선지가 나오는데 산술적으로 40분이 걸립니다. 40분 간격 배차에서 2등급제를 해버리게 되면 결국 그냥 완행만 다니는 역은 완행으로 노선 끝까지 가고, 급행노선은 완행과 접속이고 뭐고 신경 안쓰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실제로는 일반열차 끼어드는거나 이래저래 발생하는 간극을 감안하면 접속이 거의 없이 1시간 배차의 완행과 1시간 배차의 급행이 되는지라 큰 실익이 있기 어려운 각이 된달까.
여기에 사실 영업 정책도 자잘한 기여분이 있는데, 일본의 3등급제 체제를 유지하는데 가장 큰 골간은 자유석 제도입니다. 모든 열차에 자유석이 설정되어 있고, 이건 별도의 열차지정 없이 이용하는게 가능해서 유동적인 이용객을 받아내는 건 물론이고, 각역에서 환승 이용을 할때 열차접속 부담없이 배차를 적극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정차역을 미리미리 인지를 해야하니 패턴다이어의 가치가 높고, 또한 열차의 계통, 행선, 정차역 배치를 가능한 한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해야 하니 등급제가 유용하게 쓰인다 할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유석 제도를 적극적으로 구축하지도 않고, 또 사람들의 활용도도 환승이용 편의 목적에는 거의 방점을 두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찌감치 인터넷 예매가 널리 보급되어 있고 사람들 또한 이걸 기본으로 이해하고 이용하다 보니, 등급제를 써가면서 직관적으로 계통을 이해할 필요 없이 여행구간에 맞춰 열차표를 끊어 그 열차를 타면 되는지라 구태여 저렇게 시책을 짤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할겁니다. 결국, 그 결과 등급제가 도입이 되어도 단순한 운임 증수책의 일환 정도의 역할 외에는 딱히 기능을 가지지도 못하게 된거고 말입니다. 사실 일본의 경우도 등급제의 요금차등폭이 그리 큰건 아니기는 합니다만.
무정차 열차 도입이 어느정도 단초가 될 여지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뭐랄까 실제 등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깔았다기는 좀 그렇고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든 뚫어보려는, 그리고 정치적인 사감을 가진 시책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