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서울역 그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적어둡니다. 지금은 이름과 컨셉을 따서 영업을 하긴 하는데, 일단 그 적통을 논할 여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릴"이라는 양식당이 유명하기는 했던 것은 맞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식당은 해방 후에도 총독부 철도국의 철도 외 부대사업들과 비슷하게 그대로 대한민국 교통부에 이관이 되었을걸로 보이는데, 제대로 영업을 복귀한건 1946년 전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려 신문광고에 "철도청 공고 제120호"라는 공문격을 부여한것이 여러모로 튀는데, 신장개업이라고 써붙여 놓은 것은 이게 그릴이라는 공식 상호를 처음 쓰면서 대중영업을 적극적으로 해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1966년 6월 1일부터 영업개시라고 했지만, 앞서 이미 구내식당으로서 영업하거나, 일제강점기의 영업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리뉴얼 개업이라고 생각을 하면 맞을겁니다.
한귀퉁이에 남은 출입구 사진은 여러모로 재미있는데, 당시에 쓰던 역명판 양식을 그대로 준용해서 "서울역 그릴"이라 적었는데, 그게 또 정면에 붙은게 아닌 벽체에 돌출간판으로서 수직으로 설치된게 재미있습니다. 사진에 찍힌 출입구 위치는 아마도 서울역 귀빈출입구와 주 출입구 사이에 계단참에 설치된 작은 출입구가 아닌가 추정되기는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꽤 생소한 이름인 "그릴"을 왜 썼는가 하면, 당시에는 그릴이라는 이름이 가장 널리 쓰이는 양식당의 명칭이었기 때문입니다. 호텔에 부설된 식당이나, 시내의 유명 양식당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따다가 명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름대로 양식 위주의 판매였는데, 여론에 휘둘려서 한정식을 판매하기도 하는 등 아주 엄밀했던거 같지는 않습니다. 당장에 각종 단체연회같은것도 종종 유치했던 기록도 보이니, 지금의 연회 부페들 처럼 좀 자잘한 한식메뉴를 가지고 있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튀는 점은 아래에 명시된 철도청 직영이라고 부기한 점입니다. 실제 당시의 조직도에서도 철도청 내부에서 다른 본국이나 지방국 외에 직할부서로 서울역 그릴이 명시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국영식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지금의 상식에서 보면 이해가 안될만한 그런 위치라면 위치인 셈입니다. 사실 이건 당시의 분위기가 민간업역과의 명확한 분리가 없던 시대라 그런데, 교통부의 직영으로 워커힐 호텔같은게 경영되기도 했다거나 그러던 시대기도 했기에 철도청에 이런 식당부문이 있는게 이상한 건 아니기도 합니다.
여기에 조직 존속의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서울역 그릴이라는 식당이 급행이나 특급에 연결되는 식당차의 운영도 같이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식당차 연결이 늘어나면서 이후 대전역이나 부산역에도 그릴이 설치되기도 합니다. 다만, 대전역 그릴은 그리 오래가진 못한거 같고, 이후 70년대에 설치된 부산역 그릴은 서울역과 함께 끝까지 남기는 했던 걸로 보입니다. 이 당시에 식당차 취급 메뉴가 마침 기사에서 살짝 언급되는데, 4종류로 간소화를 해서 "비후스텍(비프 스테이크)", "함박스텍(햄버그 스테이크)", "샌드위치", "도시락"으로 줄였다고 다루어집니다. 그 외에 종종 왜 한식이 없냐는 비판이나, 질이 떨어지거나 메뉴가 비싸다는 비판기사는 꾸준글 수준으로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나오는 모양새가 보입니다.
여하간 직영 조직으로 운영되다 보니 이런저런 잡음도 많았고, 또 60년대 이래로 민간에서 하는 업역을 정부가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이 많이 제기되다 보니, 또 이런 사업들을 불하해서 이런저런 관변 유력자들의 배를 채우는게 당시에 흔한 일이다 보니 서울역 그릴도 끈임없이 민간 위탁이나 민영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의외로 실제 직영이 폐지된건 80년대에 들어와서 였습니다. 1980년대 들어와 민간에 불하하는 걸 모색하는데, 1983년에 결국 당시 P모 호텔이 사업을 불하받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식당차의 운영도 같이 따라가게 됩니다.
이후 서울역 그릴은 90년대까지 해당 상호를 가지고 영업을 했던 걸로 보이는데, 어느시점엔가 언급이 사라지게 됩니다. IMF전후해서 정리가 된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마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식당 하나의 업황이나 개폐가 뉴스가 되기엔 그 시대가 그렇게 녹록하던 시대가 아니기도 하니 그렇겠습니다만. 여하간, 이제는 그런 오래된 역사를 아이템으로 삼아 비즈니스를 해볼만큼 어느정도 사람들이 문화적 자산이 쌓인 결과인 셈이니 실제 연고의 유무는 좀 차지하고라도 의미는 있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