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부흥이 정책적 화두가 되는 느낌인데, 재정 투입 자체는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 보지만 가장 문제는 그게 제대로 승수효과를 적시에 낼 수 있게 하는 타이밍에 있을겁니다. 전통적으로 주택 건설이나 대규모 토목사업이 이 영역에서 대표적인데, 문제는 주택은 이미 1가구 1주택을 넘어선지가 애저녁에 지난데다 당장에 구매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빈집만 양성하고 말거고, 대규모 토목사업은 4대강 사업이 제대로 결말을 보여줬다 할겁니다. 뭐 5년동안 수십조원을 퍼부었는데 토건업자 배만 불리고 일자리따위는 제대로 남은게 없이, 그저 남은거라고는 녹조라떼와 버려진 준설선 뿐이니.
이런 10년간의 실패에 따라서 공공일자리, 그것도 단기공공근로가 아니라 좀 더 본격적인 장기 일자리를 만드려는게 의도라 읽혀집니다. 민간부문의 침체가 장기화될 우려는 있지만 IMF이래 임금털어먹기로 허송세월한 민간부문에 기대할 게 별로 없는 눈치니, 그야말로 제세동기를 가슴팍에 대고 "Clear!"를 외치는 심정의 정책에 가깝달까.
철도 부문에서도 사정은 비슷한데, 철도건설 예산이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운영부문에서는 열심히 칼질과 외주화, 급여삭감으로 일임하여 온게 10여년간의 흐름이었습니다. 물론 효율화 자체는 필요한 과정이었고 철도자체의 기업적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해가기 어려운 과정이라 생각은 듭니다마는. 문제는 건설 예산을 아무리 늘려도 지역진흥 효과를 보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시피 했습니다. 거기다, 투자가 본격적으로 부어졌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민간부문의 투자증가와 지역 활성화로 이어지는데는 개통 후 수 년의 간극까지 생기니, 2008년에 착공한 호남고속철도가 개통한건 2015년이고, 그걸로 광주송정이나 익산, 전주가 활성화 효과를 보기 시작한건 최근 1년 정도이니 아무리 서두르고 투자를 퍼부어도 최소 5년, 길면 거의 10년 뒤에나 그 결실을 본다 할겁니다.
여기에 이제는 대규모 고속선 투자를 해볼만한 노선도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근래 이야기 되는 남부내륙선이나 광주-대구선, 춘천-속초선 같은 노선들은 비용의 절반을 부채조달하는 고속철 스킴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노선이고, 일반철도로 되더라도 수익으로 최소한의 운영비를 확실히 뽑아낼 수 있을만한 노선인가도 의구심이 남는 수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수요량으로 뭘 해볼만한데는 제주도 정도지만 제주해저터널은 돈의 문제 이전에 기술적 문제가 있는 노선이니 이건 논외고.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은 지금까지 방치해 온 부분인 수도권 이외의 광역권 철도망입니다. 철도청 시절에는 악성적자 취급받던 사업임에도 꾸준히 굴러가던 통일호들의 영역인데, 이후 효율화를 위해서 열심히 칼을 댄 결과 무궁화로 격상된 극소수의 노선을 빼면 사실상 멸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왜 이런 적자사업의 부활을 말하는가가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환경과 시대가 어느정도 바뀌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지방의 인구는 감소세지만, 오히려 거점이 되는 도시는 인구가 늘고, 또 이 도시를 축으로 근교에서 장거리 통근이나 통학을 하는 인구는 늘어났습니다. 또한 과거와 달리 교통의 수요자들도 그만큼 높은 품질의 교통을 요구하게 되고, 이게 단순히 속도의 영역이 아니라 얼마나 접근성이 좋고 이용하고 싶을때 이용할 수 있는가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철도가 이걸 제대로 포괄하지 못해 자가용 없이 지방도시의 정주여건은 굉장히 나빠진 감이 있고 말입니다.
과거의 통일호를 그대로 살리는건 무의미한게, 객차 기반으로 둔중한 완행열차를 100km가 넘는 장대한 선구에 하루 두번, 네번 이렇게 넣는 방식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이용자에게도 의미가 없는 모델입니다. 극단적인 저가여행자들이나 좋아할 일이라서 이렇게 생기는 적자는 그야말로 돈을 그냥 내버리는 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로 일정한 거점 도시의 연계교통을 처리하는, 기존선의 여유용량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고속철도나 장거리 철도가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는 접근성을 확보해주는 그런 사업모델이 절실하다 할겁니다.
이런 모델이 의미를 특히 가지는건, 대규모 건설사업 없이 차량의 구매와 기존 시설물의 소소한 개량, 극단적으로 가면 수도권의 잉여차량을 쓴다면 승강장이나 개집표설비 같은 역 시설 개선과 이를 수행할 인력을 확충하는 정도만으로도 사업을 런칭할 수 있다는 거고, 이는 실제 예산투입 후 실제 사업 운영개시까지 조금 서두른다면 2~3년 정도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만약 잉여차량 연장사용과 기존역만 사용하는 수준이 되면 예산투입 개시 후 1년도 안되서 사업 개시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말은 고용 소요가 많은 운수사업을 1~2년 사이에 몇개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민간 경제의 활성화도 빠르게 점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토목사업처럼 긴 회임기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달까.
이런 관점에서 차량구입을 최소화하여 진행할 수 있는 구간으로는 광주선 셔틀을 전동차화 하고, 이걸 나주까지 연장하는 사업이 0순위로 해볼만 하고, 그 다음 손대볼 수 있는건 부전~부산간의 동해선 단선 연장, 부산에서 삼랑진을 경유하여 마산까지 가는 경부선-경전선 기존선 사업, 그리고 강릉이나 남강릉 기점으로 동해를 연결하는 셔틀 서비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선로규격이 높지 않고, 여력이 있으며, 배차증강을 하려면 시설투자가 병행되어야 하긴 하지만 좀 저율로 굴린다면 당장에 서비스를 시작할 여건이 됩니다.
일단 이들 구간에 대해서는 당장에 폐차대상이 된 1호선의 저항차를 보강해 3~5년 정도 연장사용을 하고, 이후 그간의 사업실적과 향후 전망에 따라 적정량의 신규차량을 대체 조달해 운행중지 없이 이어받는 식으로 끌고나간다면, 운영사나 공공부문에서 시설 전부와 차량을 새로 조달했다 사업이 안될 경우의 위험부담을 덜 수 있고, 또 이용자 입장에서도 빠른 사업개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철 개업까지 10년을 내다보던 그런 부담을 덜 수 있게 됩니다.
이후에 생각할 수 있는 구간은 이미 진행중인 대전, 대구의 광역철도 사업이 있고, 전주~익산간의 기존선 사용 서비스가 가능성이 있습니다. 디젤동차를 신규조달해야 하긴 하지만, 경전 서부선 광주송정~순천간을 고빈도화하고, 이걸 광양제철선으로 연장하거나, 교외선의 운행시키는 것도 진행해 볼 수 있을겁니다. 또 디젤동차 사업이라 수익성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진해선 부활이나, 태화강~온산 간도 여객영업화를 생각해 볼 수 있을겁니다. 여기는 결국 빈도와 적시성의 문제인지라.
물론 이걸 전적으로 철도공사가 부담하기에는 당장 기존사업 적자도 있는지라 경상보전대책이 추가적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한계는 있기는 합니다. 다만, 기존부채를 털고 앞으로 잘해라 라고 빚잔치 터는 거 보다는 차라리 보전수준을 좀 화끈하게 올려서 흑자기반을 만들어주고, 그렇게 서서히 누적적자를 상각시켜 나가는게 나을겁니다. 이게 상승작용으로 기존 고속철도나 장거리 일반철도를 활성화 시키고, 유휴부지 개발이나 복합역사, 구내영업 개발에 힘을 실어준다면 더할나위 없을거고 말입니다. 뭐 계속사업으로 가는건 쉽지 않겠지만, 7년에서 10년 정도의 PSO 계약으로 돌려진다면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