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걸 두고 한마디로 보통 평가합니다. 수정주의라고. 역사를 편한대로 재단하고 필요하다면 날조도 서슴지 않는 그런 행태의 시초가 이렇게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이것저것 논리를 비틀기 시작하는 겁니다. 딱 비슷한 행태가 건국절에서 있었는데, 국토부 나으리들은 그게 그렇게 보기 좋으셨나봅니다?
일단 철도의 날로 지정된 9월 18일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야기는 어느정도 논리적으로 글러먹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제 당시의 조선 통치를 합리화하는데 가장 잘 써먹은 논리가 문명개화고, 그 첨두중 하나가 철도와 같은 교통 인프라의 확충이다 보니 어느정도는 당시의 식민화적 요소가 없는 건 아니라 할겁니다.
다만, 1899년에 개업한 경인철도 자체는 기원 자체가 고종이 미국인 모어스에게 부여한 것으로 일본의 침탈의 결과라기 보다는 이미 일본의 우선권이 부여된 것을 작정하고 무시한 채 미국에 부여한 것으로 이이제이를 의도하여 일본에 대한 견제를 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후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과 회유 끝에 부설과 운영이 일본 손에 넘어가기는 했어도 기본적인 설계나 자재는 전부 미국으로부터 충당되다시피 했습니다. 일제때 쓰여진 기록들에서는 모어스를 이권 브로커로 제대로 건설할 능력조차 없어서 인수 이후 다시 재시공을 했다는 식으로까지 폄훼하는 기록을 남겨두고 있는데, 반면 모어스가 자본모집을 시도했다가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거나, 모어스의 사업이권을 어떻게든 나눠가지기 위해 미국과 외교적 접촉을 했던 걸 보면 단순히 말할 것은 아니라 할겁니다.
결국 일본이 인수해 운영하게 된게 좀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당시까지는 적극적인 병탄의 의향이 있는 시대는 아니었던데다 청일전쟁으로 나가떨어진 청을 빼면 미국이나 러시아라는 상대가 남아있었고 그래서 경제적 침탈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는 일본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외교적 개입에 의존했지만, 외견상으로 민간사업인 양 그리고 경제적 목적의 철도사업으로서 운영이 되었습니다. 서울 주재 각국 외교공관들의 주된 이동수단이다 보니 마구잡이로 들이댈 만한 노선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지정된게 제3공화국 당시이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민정이양 후 대통령선거 이후에 이루어진 일인 만큼 독재의 유산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방 이후 아직 당대의 기억이 곳곳에 남아있고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내려진 것이라서 단순히 일제의 답습이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말로 일제의 부정과 극복을 의도했다면 해방 이후의 굵직한 철도사의 중요 사건들, 예를 들어 1946년 5월 17일에 단행된 "조선철도의 통일" 군정령 시행개시일을 연원으로 잡거나, 철도청 창설일인 1963년 9월 1일, 그리고 이번에 대안격으로 나온 대한제국 철도국 설립일 6월 28일을 기준했을겁니다.
사실 정부조직 설립일을 기준하는 것 자체도 좀 마뜩찮다고 보는데, 철도의 날 제정 당시에는 "기간교통 수단인 철도의 의의를 높이고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함이다."라는 목적이 있었고 이 때문에 철도가 처음으로 운행이 이루어진 날을 지정했다고 봐야합니다. 즉 첫 기적을 고고지성으로 삼은 것은 현장과 실물을 중시하는 의도에 나온 것으로, 정부 내 사무분장 변경일을 기준하는 것은 여러모로 마뜩찮다 해야할겁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무능하고 무력한 대한제국 정부의 책상물림 따위를 기념해 뭐할거냐라고 까여도 변명하기가 어렵달까. 뭐 요즘 철도의날 돌아가는 꼬라지가 현업을 치하하기 보다는 공무원들의 논공행상 잔치판이나 되어가는 분위기니, 그렇게 가서 국민들 뇌리에서 잊혀져 평범한 하루가 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