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궤간가변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는 칼날 위에 선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상당히 많은데다, 그 중에서는 기계적인 문제의 영역에 걸치는 해소가 매우 난감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즉, 기술을 구현하는 것 자체는 어찌되었든 가능한데, 그걸 장기적으로 유지 운영하는데 드는 노력이 너무 커져서 상당한 비용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바로 궤간가변 차량이 처한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공적으로 영업운전을 하는 루트가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는 제법 있습니다. 탈고 차량 기반의 스트리쥐(Стриж)같은 열차는 그런대로 정규열차로 안착을 하고 있고, 스페인에서도 영업 루트가 존재하기는 합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국내선 보다는 국제선과 같이 영업성이 어느정도 나올 수 있고, 횟수가 제한적인 노선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범용적인 열차에 쓰이는 경우가 의외로 적은데, 이게 바로 비용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가 일본이 개발중인 프리게이지 트레인입니다. 신간선 구간에서 고속주행과 기존 개량협궤 구간에서의 특급 정도의 운행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신간선 건설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을 거라 국가와 지자체가 기대했던 시스템인데, 1998년에 1차 시제차를 개발해 투입한 이래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제차를 3대째를 만들어 사업을 지속하고 있지만 실용화에 대해서 누구도 확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초기에는 궤간가변차량의 대명사 스페인 탈고조차 극복하기 어려운 케이프궤와 표준궤의 전환을, 전동차에서 그것도 고속역에서 달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개가를 올렸지만, 결국 현재는 답이 없는 사업이 되다시피 한 모양새입니다.
실제 발생했던 트러블을 까 보면, 차축의 스프링하 질량이 너무 커져서 JR시코쿠 내 기존선 구간에서 80km/h이하 속도제한을 먹고 시운전을 했어야 했다는 안습한 케이스도 있었고, 이후 고속주행 시험을 해보니 280km/h이상 주행이 불가능했고, 그나마도 궤간가변을 하면서 이상마모 현상 등이 발생해서 사실상 고속주행은 단념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 개발목표였던 신간선과 기존선의 직결운전은 거의 뭉개지다시피 하고 있는 눈치에, 개발기간이 길어지면서 채용이 점점 어려워지는 그런 문제가 따라붙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시피 합니다. 이런 사안은 실질적으로 감속운행 같은 대응 외에 부품 교체주기나 시설의 보수 주기를 늘려서 대응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당초의 목표로 한 경제성을 많이 벗어나버려서 사업지속에 의문을 만들어 버린다고 해야 할겁니다.
러시아와의 직결열차를 투입하는데 있어서 궤간가변이 필수적인가 하는 고민은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현재 국내개발품이 목표로 하는 화차의 경우, 직결투입이 필수적이라고 하기는 많이 어렵습니다. 벌크 화물의 경우 환적에 상당한 비용이 들기도 하고, 환적을 하면서 생기는 손실분이 제법 되는 문제가 있기는 한데, 그 대신 환적 거점 자체가 일종의 재고량 버퍼이자 분배거점이 되는 면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불필요하다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나, 한국처럼 좁고 규제가 많은 지역 대신에 규제가 약하고 부지도 여유가 있는 북한이나 러시아 영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달까. 여기에, 석탄 운송 자체가 꽤 장대한 노선, 예를 들어 몽골이나 시베리아 내륙에서 가져오는 걸 감안하면, 차량 구입비나 유지보수비 이전에 차량의 무보수 운전거리가 맞는지부터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라서, 반드시 유용할거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고부가가치와 속달성이 벌크보다 중시되는 컨테이너 수송의 경우, 환적 자체는 설비만 갖춰지면 꽤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어서, 순전히 차량 구입비나 유지보수비가 환적으로 발생하는 시간로스나 비용을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만 남게 됩니다. 여기에 벌크화물보다 더 압박스러운 장거리 이동, 즉 유럽행 노선에 투입이 가능한가도 따져보지 않을 수가 없을겁니다. 결국, 이런걸 쳐내면 연해주나 시베리아 지역 착발의 급송품 컨테이너나, 아니면 아예 소화물류 수송 수요 정도에나 대응가능하지 않을까 우려가 듭니다. 우리나라가 아무래도 이쪽으로 치우친 상품구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과연 철도가 그만큼 당겨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랄까.
여객의 경우도 이 문제가 남는데, 연해주 지역의 여객수요가 많다고 해도 항공을 압도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충분한 수요가 된다면 아예 표준궤 고속선 내지는 고속화 간선을 밀어넣는 방향으로 가면서, 더 먼 내륙지역으로는 러시아 국내편으로의 환승을 전제로 굴러가는 방향이 될수도 있을겁니다. 오히려 함경, 경원선이 고속철도화 된다면 200km/h정도에 머무를 궤간가변차량 보다는 300km/h이상을 확실히 낼 수 있는 통상형 고속철도 차량으로 가서 환승하는게 시간적으로 유리할테니.
궤간가변은 그래서 틸팅과 비슷한 니치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필요한 곳이 없지는 않지만, 그게 충분한 시장성을 가지기는 어렵달까. 기술개발 자체는 해둘 필요는 있지만, 시장성으로 가면 쉽지 않은 이야기가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