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비난이 과도한 감은 없지는 않지만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기는 합니다. 틸팅열차의 개발 자체는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해봐야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나오던 거고, 실제 90년대 초반에 틸팅 메커니즘 실험도 있었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후 2000년대 내내 개발해서 TTX 시험차량까지 만들어 냈던걸 생각하면 여러모로 까일만 한 이야기기는 합니다.
다만, 기사에서 지적한 HEMU쪽은 좀 어거지성이 있고, 프랑스도 500km/h를 돌파한 시험운전을 두번이나 했지만 최고속도는 320km/h에 계속 묶여있고 차세대로 가더라도 별다른 변화가 없기는 합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300~350km/h대역 이상의 운전은 시설투자나 차량비용 증가는 물론이고, 동력비나 유지보수비가 크게 늘어나지만 실제 시간 단축효과는 수 분에 그치다 보니, 고속화 자체보다는 운행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확보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하간 이 비판기사에서 짚은 기술개발과 활용이 따로 노는 문제는 고질적이라 할 수 있기는 합니다. 물론 기술개발 자체가 미래에 소요되는 기술을 예측해 추진하다 보니 기술동향이 갑자기 급변하여 의미가 없어지거나 개발 실패가 나올 수도 있는거고, 또한 산업에서의 소요가 그리 명확하게 나오는 것도 아닌지라 개발방향을 잘못 요구해서 엉뚱한 기술에 돈을 꼴아박거나 그러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기술개발이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이기에 어느정도는 감수해야 할 영역은 있습니다.
다만 철도쪽은 정부의 리더쉽도 오락가락하는데다 재정 억제에만 방향이 몰려 있다시피 한지라 뭐 시도를 하는거 자체가 죄악으로 다뤄지는 분위기고, 철도공사는 걍 제 코가 석자라서 난리인데다, 시설공단은 건설만 하면 장땡 마인드로 일을 하니 차가 어떻고 이런건 아웃 오브 안중, 거기다 차량제조는 사실상 민간독점에 수익성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되니 기술이전이나 자체적인 개발에 대해서 극히 소극적이어서 뭘 해도 손발이 잘 안맞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에 틸팅열차는 기본적으로 시설과 운영 양쪽에 걸치는 융합기술이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운영시설간의 조율도 안되는 경우엔 그야말로 답이 없는 기술인데다, 여기에 기술 개발 자체의 리스크가 터진거까지 있으니 정말 안되는 게 다 걸린 케이스라 할겁니다.
틸팅차량이 영업차량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어느 노선에서 이 차량을 쓸 것인가가 확고해야만 합니다. 구시대의 철도처럼 노선의 특성을 상당히 타는 차량이다 보니, 고규격화된 노선에서는 틸팅기능 자체가 낭비가 되고, 저규격 노선에서는 동력성능의 과잉이 낭비가 되는 그런 약점이 있습니다. TTX 시제차량의 영업최고속도는 180km/h인데, 현재 개량 간선들은 200~230km/h수준, 향후 건설선은 270km/h까지 낼 수 있는 상황이 되니 동력성능 자체가 딸린건 둘째치고 틸팅기능 자체가 무용지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TTX가 상정하지 않은 구식 간선들, 기사에서 예시를 든 태백선의 경우 R=250커브는 물론이고, 선형자체가 캔트부족이나 완화곡선 부족이 많아서 과거 도입한 8000호대 전기기관차의 85km/h 최고속도 조차도 딱히 쓸 일이 없다 할 정도의 노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화물 운행이 빈발해서 운전정차가 빈발하고, 협소 터널이 늘어서 차량한계가 제약을 받는 이런 곳에서는 180km/h까지 내는 사양은 과잉사양일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여기에 틸팅차량은 성능을 좀 후려서 단순히 재래식 노선에 넣으면 장땡인 차량이 아니기도 합니다. 통상 해외에서 틸팅 차량을 투입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른 시설의 개량이 부수가 되어서, 단선이라면 교행하는 역의 배선을 개량해서 통과속도를 끌어올린다거나, 곡선이 지나치게 심한 곳은 곡선을 개량하고, 상대적으로 고속인데다 곡선 통과속도가 높아 선로부담이 늘어나다 보니 궤도강화와 보수체계 개선이 병행되기도 하며, 그 노선에 없던 고속운전을 위해 방호벽이나 방음벽, 낙석방지나 선로감시시설을 강화하는 보안 개선대책도 병행되어야만 합니다. 즉, 동력성능과 영업 방안, 차량정비, 안전 대책 등 운영부문에서의 정책방향과 시설안전과 개량, 유지보수 등 시설부문에서의 정책방향이 합치되어야만 쓸 수 있는 융복합적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또한 틸팅기술 자체는 중간단계적인 기술이다 보니, 고속선을 정비할 수 있을만큼의 대량수송 노선에는 쓰기 어렵고, 반대로 지나치게 영세하고 또 지역 교통에 치중되는 노선에 대해서는 투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과투자 부담이나 비용 과다같은 문제가 더 도드라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조율하는 게 운임규제나 보조금에 대한 권한을 가진 정부의 역할인데 한국에서는 뭐.... 답이 없다 할겁니다. 실제 들은 말로는 2012년 경에 TTX 실용화를 위한 오퍼를 한참 꾸렸더니 철도공사는 돈안되고 비용증가가 된다고 정부에 떠넘기고, 정부는 민간개방 추진을 위해 철도공사에 추가 사업을 줄 생각이 없어서 그대로 무산이 되었다던 카더라도 있었고.
여기에 하나 더 거들게 된게 역시 기술개발 방향이 시장 흐름과 안맞게 돌아가버린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일단 틸팅 자체가 저런 중간형 기술이다 보니 2000년대 이후 시설 투자가 극적으로 개선되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쉽게 추진할 수 있게 되면서 충분한 대량수송을 뽑을 수 있거나 국가전략적으로 밀어줄 수 있는 노선이라면 틸팅같은 어중간한 기술보다는 화끈하게 고속선과 고속차량을 지르는 방향으로 거의 빠져버리게 됩니다. 90년대 경부고속철도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개도국의 기술집약형 메가프로젝트로 주목도를 받았지만, 2000년대 중후반이 되면 뭐 중국을 시작으로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기술기반이 빈약한 나라들도 질러보고, 동남아에서도 해보려고 시도할만큼 "만만해진" 감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틸팅으로 정비할만한 노선의 범위가 좁아진 감이 큽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설 고도화로 해결되어버린 나머지 노선에 대해서도 새로운 대안이 일본에서 나름 유행을 해버리는데, 바로 차체경사장치라 불리는 에어서스펜션을 활용한 방식입니다. 일본도 정부/공공 프로젝트로 틸팅 개발을 오래 했고 실용차는 이미 국철때 만들어서 JR까지 계속 쓰였는데, 차량회사 쪽에서 어차피 그정도의 고성능 틸팅이 아니라도 기존에 개발된 액티브 에어 서스펜션을 활용해서 2도 정도 차체경사 제어를 하는 기술을 활용해 제안하면서, 이쪽이 크게 부상을 해버리게 됩니다. 8도 가까이 꺾이는 전용의 링크구조를 올린 차량을 따로 굴리는건 비싸고 부담스럽지만, 이런 특수한 기계구조물이 없이 차체 외형이나 서스펜션 제어계통만 대폭 강화한 개량 차량으로 10~20km/h정도의 증속을 뽑아내는 방식이라면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틸팅 차량은 세계적으로 보면 고속철도와 고도화된 범용 차량들 사이에 끼어버리고, 덕분에 궤간가변차량 처럼 특수한 노선이나 대대적 투자까진 못하는 아간선 정도에 어중간한 영역에서만 남게 되는 경향이 근래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TTX개발사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기에는 좀 어폐가 많은데, 틸팅 메커니즘 자체는 결국 사장화되기는 했지만, 180km/h대역을 낼 수 있는 준고속 대역의 동력계통 자체는 ITX청춘 차량의 동력계통의 뿌리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즉, 준고속형 차량의 원형이 TTX의 개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요소기술 단위로 보더라도 활용도가 없는 편은 아니었고, TTX시험차는 틸팅 개발이 끝난 다음에는 KRTCS 개발사업에서 잘 활용을 한 바 있습니다. 결과는 썩 마음에 안들었지만, 개발과정을 거치면서 얻은 경험이나 요소기술은 지금의 철도에서 잘 써먹고 있는 만큼 그 값어치는 했다 봐야할겁니다.
그렇다면 TTX같은 틸팅기술 자체가 앞으로 용처가 없는가 하면, 개인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강호축 운운하면서 충북선을 핵심간선으로 대규모 개량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연선 인구 규모나 산업입지, 그리고 지리적 조건상 이 축을 준고속 내지 고속화하는 것은 비용 대비 편익이 나오기가 매우 힘들다고 봅니다. 또 충북선을 개량한다 하더라도, 여기에 붙는 다른 간선축 중에 고속화가 되는 축은 중앙선과 중부내륙선 정도에 머물러서 고속화의 가치 또한 별로 없고 말입니다. 경부선은 135km/h정도가 최고속도고, 태백선, 영동선은 80km/h도 제대로 뽑기 힘든 산악노선이라, 대전/천안~제천~동해 정도의 열차계통을 만든다면 EMU-230 같은걸 넣으면 구간의 절반은 무궁화호의 최고속도인 150km/h도 못내고 다녀야 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강릉선 경유? 제천~원주간 삼각선 신설은 단선으로 해도 건당 2천억은 넘게 깨지는건 기본일거라 논외일 수 밖에 없을겁니다.
다만 축선 자체가 의미가 없는건 아닌게, 행정부가 집결되어 있는 세종이나 다른 지역으로 태백선 연선지역에서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은 국가의 균형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업이기는 합니다. 여기에서 적정 투자의 방책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게 바로 틸팅열차라 할 수 있을겁니다. 궤도강화나 곡선 개량, 건널목 해소같은 보안도 개선 등은 기존의 화물열차나 비틸팅 일반열차도 같이 편익을 얻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예산 확보의 설득력을 얻기가 쉬울 뿐더러, 조 단위가 시설투자가 대폭 줄어든 대신 차량도입으로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정도가 된다면 재정 합리화 면에서도 꽤나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태백선이나 영동선 같은 곳은 연선의 가용토지가 한정되어 있어서 대규모 이설사업을 하게 되면 새로 시가지를 꾸리기 매우 어려운 곳들이 대부분이고, 기설역 자체를 옮기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 폐역이 속출할 가망이 높습니다.
만약 향후 지역개발 이슈가 강화되고 경제가 팽창하게 되어서 고속화 간선을 정비할 만큼이 되더라도, 기설 투자가 그리 크지 않고 어차피 건설투자에는 계획단계부터 10여년은 걸리는 사업이니 틸팅 차량이 자기 수명의 반분 이상을 달리고 난 뒤에나 실제 고속화 간선이 사용 가능하게 될 가망이 높습니다. 뭐 건설이란게 뭐가 걸리적거려서 지연될지 알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한데다, 장항선 처럼 개량 안하고 기존 차량만 울궈먹으려다가 공중에 뜨게 되는 것도 좀 피할 수 있을겁니다. 새차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용객의 만족도를 이끌어내기도 쉽고 말입니다.
제안을 좀 한다면 대전~제천~태백~동해를 주축으로 한 180km/h급 성능의 TTX 6량 편성을 투입하되, 제천~천안~서울, 제천~서대전~광주, 대전~여수, 대전~안동 같은 노선을 추가로 설정해서 사업량을 확보해 총 10~12개 편성 정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150km/h급 선구 중 따로 대대적인 개량을 하기 애매하다면 기존 차량 속도에 맞춰 다니는 정도가 되면 족할거고, 현재 KTX망이 제대로 포괄못하는 지역간 수송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충분히 예산당국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