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연결이 본격적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사실상 만성 파행 상태의 북한 철도를 정상화하고, 또 주행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만 할겁니다. 또한, 동시에 심각한 정정불안이 아니라면 철도 운행 자체는 서로 보장될 수 있어야 할겁니다. 이 과정이 그리 짧기는 어렵고, 또 얼마나 재정 투입이 이루어져야 할지는 이번 조사 이후 남북간의 연구와 조사가 지속되어야 할겁니다. 이건 또 북한의 내정과 직결된 사안이고, 우리에 비해 경제규모가 1/30~1/40정도에 불과한 북한 입장에서는 대규모 토목사업은 국가경제를 뒤흔드는 대도박 그 자체인지라 기술 파급이나 철도산업 내부적 논리를 넘어, 국가경제, 민생, 행정 전반의 혁명을 촉발하는 트리거가 될수도 있을겁니다.
또, 한국에서는 단순히 북한 철도의 낙후성만 강조되는 감이 있습니다. 사실 기술적 수준에서는 한국의 7, 80년대 수준에 몇몇 도입기술이 튀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현대적인 차량의 도입 생산을 어떻게든 하고 있고, 시설면에서도 꽤 오래전부터 궤도 중량화와 PC침목 사용에 매진하고 있어서 마냥 일제 유산만 파먹는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에 인용한 기관차도 북한측에서 비동기견인전동기를 사용한 교류 기관차라고 설명을 붙이는데, 이는 한국에서 말하는 인버터제어 방식을 도입해서 유도전동기를 붙인 8200호대에 상당하는 차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직류 급전에 인버터 성능적 문제가 있는지 출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만. 기술 도입선이 중국 등에 국한되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오랜 부진을 넘어서 시도는 꾸준히 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번 조사는 사실 북한측이 자료 협조가 잘 되고, 통계같은게 잘 완비되어 있다면 사실 많이 간략화된 조사를 할 수 있기는 합니다. 시설 여건을 파악하고 측량과 설계를 위한 기초조사 같은건 실지조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건 굉장히 본격적인 수준까지 가야 하는 일이고, 사실 어느 노선이 어느정도의 가용성이 있는가는 실제 시각표와 지연, 운휴, 사고통계 같은 안전통계, 운전규칙, 각 역의 배선과 거리표, 주요 중계역의 입환량이나 실동데이터 등을 통해서 상당부분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기는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호신뢰가 부족한데다 우리도 이런 정보를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데 통제국가인 북한은 더할거다 보니, 이런 정보에 접근하기 전에 실제 현지 분위기와 상황을 이해하는 노력으로서 한다 봐야할겁니다.
사실 시설 부문에서는 건설 자체는 장기적인 사업이 될 수 밖에 없고, 자재와 장비를 제공하고 합동 작업을 통해서 현행 시설과 유지보수의 현대화를 주안으로 하는게 맞을겁니다. 북한도 철강과 PC침목이 생산되고 있지만, 제조 공장의 설비나 생산품 사진을 봐도 사실 썩 품질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연관산업들이 다들 낙후되다 보니 어쩔수가 없는 사안이랄까. 더욱이 천리마, 만리마를 외치며 생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생산캐파가 부족하고 경제제재로 인해 원자재 수급이 안되다 보니 제대로 돌아간다 하긴 많이 어렵다 할겁니다. 따라서 이쪽은 남한이 직접 공사를 하는건 대개량이나 고속철도 공사 같은 대규모 토목에서나 생각할 일이고, 당장에는 컨설턴트와 감리, 그리고 자재와 장비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겁니다. 유류 공급이 문제긴 하지만 보선 기계화만 잘 되어도 시설로 인한 사고는 확 줄어들거고, 운전속도도 충분히 향상 가능할테니 말입니다.
오히려 이번에 가서 주로 봐야할 건 시설 자체보다 신호와 전기, 차량이라고 봅니다. 신호쪽은 일단 당장에 운행에 문제는 없을거라 보이지만, 남한이 밟아온 발전 경로를 어떻게 따라올 것인지를 견적내 봐야 할거고, 사실 가장 시급한 쪽은 전기일겁니다. 현대적인 철도는 모든 설비가 전기와 통신에 의존하고 있는데, 북한의 경우 일단 전력설비의 심각한 노후화에 송배전망의 부실까지 겹쳐서 사실상 바닥부터 모든걸 다시 구축할 각오를 해야 할 정도입니다. 아마 설비에 따라서는 아예 비상 발전기를 도처에 설치해 굴리는것도 각오해야 할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달까. 이 부분은 오히려 철도가 아니라 전력에서 일을 해야 할 부분이 큰지라 이쪽에서의 협력사업이 긴요할겁니다.
차량부문은 일단 동력차의 불충분과 노후화가 가장 관건이라 봅니다. 검수체계는 구식이긴 하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꾸역꾸역 차를 굴릴 수 있는 면도 크기는 할겁니다. 문제는 낡은 차들은 그만큼 노력과 비용을 많이 먹기도 하지만, 성능면에서도 제약이 커서 안그래도 단선에서 용량을 우려먹는데 제약을 받는데 더 제약조건을 끼워넣고 있을거라 봅니다. 한국의 노후차량들을 지원하려 해도 전기차는 북한의 전력방식이 전혀 다르고, 디젤차의 경우는 지나치게 무겁고 커서 써먹기 힘들거라 봅니다. 그렇다고 새차를 생산해서 지원하는 건 우리도 디젤차가 워낙 노후되어서 문제인데 여유부릴 상황이 아니고. 일단은 어떻게 수송을 정상화 할 것인지가 급선무가 될거고, 이후 어떤 차량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 어느정도의 스펙을 가지는 차량이 필요한지 검토가 들어가야 할겁니다.
신호, 전기, 차량 셋은 특히나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협력이 필수적인, 즉 인터페이스가 중요한 사안들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북한측에서 이게 문제가 될 사안은 차량 정도기는 하지만, 장래적으로는 남북이 간선부문에 대해서만큼은 가급적 일치된 규격을 사용하는게 바람직할겁니다. 이를 위한 기초조사가 이루어지는게 필요하고, 덤으로 북한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의 규격 또한 파악해야 할거라 봅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대차교환을 실시해서 운행을 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대차와 차체간의 인터페이스, 그리고 연결기 간의 인터페이스가 표준으로 규정되어 있을겁니다. 이런 사안은 이번 조사의 범위에 전부 반영되긴 어렵지만 별도의 연구와 협력활동이 따라야 할거라 봅니다.
그리고 이번 조사로 어느정도 사업의 전모를 계획할 수 있게 된다면, 이를 위한 남측의 사전준비가 있어야 할겁니다. 특히 중요한건 화차의 증비와 이를 쓰기 위한 물류역과 노선의 확충, 운영체계의 확보가 있어야 할거고, 여객의 경우도 객차 베이스로 당분간 운영하게 될테니 국제운송에 걸맞는 객차 설계의 확정과 이에 따른 신조 생산, 그리고 이를 굴리기 위한 선로 확충과 구내 개량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걸 위한 동력차의 확충도 따라야 할거고 말입니다. 현재 수도권 우회노선은 여객에 대해서도 불충분하지만, 화물에 대해서는 심각한 수준이고, 특히 한강 이북에는 제대로 된 물류거점이라 할 곳이 마땅히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서울 시내 철도는 용량의 한계를 매년 시험받는 상황에 몰리고 있기까지 합니다. 이 문제는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닌데도 지지부진한지라 특단의 대책이 빠른 시일내에 있어야 할 겁니다.
일단 조사가 돌고 난 다음의 결과를 살펴봐야 겠지만, 생각보다 꽤 빠른 시일 내에 연결이 담보될 수 있을거고, 북한의 경제개방이 빠르게 돌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운송 인프라에 걸리는 부하도 생각보다 걸릴겁니다. 좀 더 속도감있고 유기적인 활동이 사전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할거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