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보이는게 관제가 안이했던거 아니냐, 철도공사랑 붙어먹어서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정말 돌팔이 약장수 수준의 썰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관제는 서울 귀퉁이, 대개 관련된 사람들은 거진 아는 모 처에 있습니다. 거기서 200km 넘게 떨어진 곳의 현장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개인적인 직무경력 정도일수 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신호와 통신에 의존해야만 합니다. 원격에서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은 있다 한들, 현장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지 직원의 판단이나 각종 센서의 동작상태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축지법이나 텔레포테이션을 쓴다거나, 개인한테 날아다니는 옵저버가 달린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직원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이야기는 더 말이 안되는건데, 고장신호가 나는 걸 안보고 다른 게 고장이라고 직관이나 예지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면 그사람은 직원이 아니라 신 정도로 이름을 붙여야 할겁니다. 거기다 고장신호가 나오는 분기기가 안중요한 분기기도 아니고, 마침 출고를 기다리는 열차들이 못나가고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니 여기도 그야말로 "아임 온 파이어~"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었고 말입니다. 인접해서 서행하라고 지시 못한건 굳이 따진다면 불찰이라면 불찰이겠지만, 고장개소와 일단은 관련이 없고 신호가 정상적으로 나고 있으며, 보수에 나간 직원의 안전확보가 된 상태에서 2~3분씩 누적 지연을 단선에 뿌리는 짓을 하라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겁니다.
이 상황에서 솔직히 관제권이 국토부에 있었다고 한들 상황판단을 극적으로 다르게 해서 사고 예방이 가능했을까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공무원이 일을 하면 아마 철도공사 직원들 보단 보신이 먼저라서 잡아놓고 보려고 하지만, 열차지연으로 지연보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닥치고 민원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는 꼴을 몇번 당하면 일을 그렇게 할 수 없을거고, 좀 심하게 일을 했으면 아마 징계든 인사조치든 날리고 볼 사람들이 잔뜩 있을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국가가 관제권을 휘두르게 될때 지휘통제의 영이 얼마나 제대로 설지, 또 국가 책임으로 발생하는 지연보상이나 손실보상이 터질때, 그리고 그게 누적되서 국가에 손배청구가 날아드는 상황에서도 그걸 계속 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하는 책임감 넘치는 공무원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 구상 청구하겠다고 날뛰면서 꼬리자르기나 하고 관행을 고치지 못하는건 지금보다 더 심할거고.
MJ81 선로전환기가 문제라고 약파는 기사를 봤을땐 그야말로 기도 안차는 수준인데, 사진으로 보이는 분기기는 일반선용의 NS선로전환기 입니다. MJ81은 고속용으로만 쓰고 있고, 형태와 색상도 전혀 다른 물건을 들고와서 약을 파는 건데,이건 평소 민원을 해소하기 위한 전형적인 업자의 물타기성 보도일겁니다. 아는게 없는 기자들이 이런걸 필터링할 능력은 없고, 당장에 협찬이 아쉬운 사람들이니 뭐 그러려니 할 일이고.
고장 조치가 미흡했다는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인데, 선로전환기 고장이 흡사 기계 자체가 그냥 퍼질러지는 걸로 인식하기 쉽지만, 사실은 레일 측 분기기 자체에 이물질이 끼거나, 윤활유가 씻겨나가거나 먼지가 섞여 윤활이 불충분해지거나, 또는 지금같은 겨울철에 서리나 얼음이 끼어서 생기거나 하는 케이스가 흔합니다. 이점에서 기온 급강하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는 합니다. 직근 원인이 아니어서 그렇기는 합니다만.
기계라는게 일시적으로 동작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고, 또 베어링과 습동판이 개입하는 기계라면 윤활관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장 현장에서 응급적으로 할 수 있는 청소와 급유를 실시하는 조치를 한걸로 보입니다. 베어링의 발달이나 기계정밀도와 가공기술, 소재기술의 발달 덕에 소요량은 줄었을지 몰라도, 없어질 수는 없고 또 가장 흔한 고장원인에 대한 조치방법임에도 이런 소리를 하는 건 뭐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 할겁니다. 21세기의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총포류나 기갑장비류들도 늘 청소와 급유를 하라고 하는건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상감시장비나 블랙박스 이야기도 사실 엇나간 이야기에 가까운데, 영상감시장비 고장으로 인해 조기에 이상을 판단할 기회를 놓친 건 맞기는 합니다. 다만, 그 영상감시장비가 멀쩡하더라도 과연 고장을 실제 목도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할 거라 봅니다. 육안으로 확연히 티가 나는 고장이었다면, 예를 들어 분기기가 확실히 뒤틀렸다거나 레일이 확연히 부러져 나간 거였다거나 했다면 기회가 되었겠지만, 이물질로 레일 끝이 수cm정도 벌어진 정도였다거나 했다면 감시장비도 무의미했을겁니다. 왜 고장이었는지, 이게 왜 수리가 안되었는지는 분석하고 개선해야겠지만, 이미 다른 센서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외부 침입이나 오취급 방지 차원에서나 의미가 있는 건인지라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긴 어려울겁니다.
블랙박스 쪽은 정말 이해가 안되는 케이스인데, 열차의 기관실에서 기관사가 조작 미스를 한 것과 큰 관련이 없이 시설 요인으로 발생한 사안에서 블랙박스가 결정적인 사고 원인 조사에 기여할 수 있을거라 보이진 않습니다. 자동차 블랙박스 처럼 기관사의 시야범위를 찍는 물건이라면 그나마 도움은 되겠지만, 정작 이런 장비는 아닌 모양인지라. 또, 사실 항공기의 블랙박스도 콕핏을 촬영하지 않고 사고조사에서 특별히 기여한 경우는 테러리즘이 생긴 경우에나 써먹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음성이나 교신을 녹취하고, 기기취급 상황을 기록하기는 합니다만. 사실 무전은 녹취되고 있고, 기기취급정보는 사고때 마다 까보는 TGIS나 TCMS라 불리는 차상 컴퓨터의 로그 분석을 예전부터 계속 사용하고 있어서 딱히 이런 설비가 필요한가도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언론에서 별로 안다루는 거지만 사실 중요한 문제 하나는, 시설의 구성입니다. 왜 고속으로 주파하는 구간에 단선을 두었고, 그 단선 도중에 멀리서 출동해야 하는 도중 분기가 설치했는지, 또 이 관리상 허점이 되기 좋은 도중분기에 많은 열차가 영향을 받게 만들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술이 좋아져서 도중분기가 널리 쓰이기는 하지만, 이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는 신호소는 그리 흔하지 않을 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상주인원을 두던가 아니면 인원이 배치된 시설이 그리 멀지 않은데 있습니다.
고속구간에 단선을 쓴 경우가 없는 건 아닙니다. 여천~여수엑스포 구간이 대표적인데, 여기는 두 역 모두가 유인역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이외에 과거 고속열차가 들어가던 광주선의 경우 도중분기가 여럿 걸려있지만, 고속구간도 아닌데다 분기기 자체를 사용하는 빈도가 그리 강한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강릉선의 경우는 기존선과 고속선 차량이 모두 사용하는 기지 분기여서 전환횟수도 많고, 통과속도는 거의 100km/h이상인데다, 또 이게 문제가 되었을 때 출동할 수 있는 곳들도 멀찍히 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동해안은 호설지와 강풍으로 유명한 동네고.
이 신호소 위치는 정말 기가 찬데 강릉역을 빼면 사람이 배치된 시설은 강릉기지 정도고, 그나마도 분기와의 직선거리는 강릉역은 약 5km정도, 기지는 2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나마도 도로 여건이 좋지 못한 상황에, 도보출동으로는 날새는 거리에 배치가 된 택입니다. 당연히 응급조치를 하러 나가서도 시간에 쫒기는게 보통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놨습니다. 여기에 로드뷰나 사고사진으로 보면 해당 분기는 성토지 절토지 사이에 있고, 차량이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는 접근로도 전혀 안되어 있어서 인근 농로에서 도보로 접근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사고 자체가 안나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사고가 났을때 구난 자체가 어려운 위치고,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2일간 사용중지라는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했습니다. 선로변 주요 토목구조물 인접해서 구난 및 작업용의 공터와 창고를 두고, 여기에 차량진입이 가능한 접근로까지 완비한 고속선에 비하면 이건 설비가 미흡이 아니라 전무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니, 2일도 싸게 막은 택일겁니다.
하다못해 현장출동과 판단에 시간을 벌어줄 수 있도록 시설이라도 잘 닦아놓았던가, 아니면 충분한 예비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시설계획이 잘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예산절감에 목을 매는 건설사업자가 실제 운용단계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설계하고 지은 결과가 이번 사고의 숨겨진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기관간의 헤게모니네, 역할분담의 오류니 이런걸 떠나서 이런 시설을 좋다고 질러놓은 것에 대해서는 반성과 개선이 필요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