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분리가 철도안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숫자만 보면 그럴싸 합니다. 기여가 없다고 할 수는 없기는 하지만, 사실 저런 그래프 자체는 의외로 많은 나라에서 잘 관찰이 됩니다. 철도구조개혁, 철도민영화가 사고 감소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흔히 그 개혁의 찬동자들이 들고오는 사례기도 합니다.
사실 이건 좀 더 장기시계열로 보고 나서 주장할 부분입니다. 통계 접근성이 썩 좋지 못한데다, 과거 데이터가 제대로 축적되어 있지 않아서 눈속임이 나기 쉬운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저기서도 2001년부터 들이민건 마침 자료누적이 그렇게 되어 있고, 철도청 시절에 사고가 증가하던 추세가 꺾이니까 자기 의견을 호도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실제 통계값을 정부 통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링크) 게으른 분들을 위해서 캡쳐해서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실은 2000~2003년 사이의 사고건수 증가는 장기적인 사고감소 트렌드가 오히려 반전된 흔적이고, 그냥 사고건수 자체가 95년 이래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였던건 매한가지였기 때문입니다. 통계의 작성기준이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전반적인 통계 흐름에 반전이 있다고 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그런 추세입니다. 이건 일본의 통계값을 보더라도 대동소이합니다. 그냥 경제발전에 따른 의식향상과 철도 시스템의 발전이 지속되기 때문에 사고가 줄어드는 것이지, 상하분리라는 행정적인 조치 하나로 감소했다고 하면 사기치는거 밖에는 안된다 할겁니다. 일본은 상하분리 국가가 아닐 뿐더러, 민영화 직후 신간선에 한해 수익재분배 목적의 상하분리를 단행했다 해소시켰던 전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추세의 변화는 그렇지 않다 할거고, 대형사고 발생 사례에서만 늘 문제가 될 뿐입니다.
상하분리가 기여한게 없지는 않을겁니다. 사실 과거 철도청은 혹독한 블랙기업으로 사람을 갈아넣어 굴러가는 걸로 악명이 높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적자는 70년대 이래 계속되어 오면서 생산성을 올리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고, 과밀운전이나 혼잡도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렇기에 안전투자에는 인색했었기에 작업의 기계화나 안전설비의 강화, 각종 보안장치의 고도화 이런건 진척이 더뎠고, 이후 상하분리 덕에 건설재정이 국가 책임으로 넘어가고, 여러 안전시책에서 국가 비용이 적극적으로 들어간 것의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사고감축의 이유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을겁니다. 오히려 그렇다면 고속철도 건설 투자가 피크를 이루던 2000년대 초반 기간의 사고 증가를 설명할 길이 없을겁니다. 그땐 시설공단이 없었지만, 고속철도 건설때문에 고속철도 건설공단이 연결선이나 역 건물의 공사를 여럿 진척하고 있던 시절이니 말입니다. 그런 공사증가에 이유가 있을거고, 그 외에 정부가 열심히 민영화를 하겠다고 조직을 뒤흔들고 노사관계가 엉키던 시절이었으니, 그 때문에 늘었다고 보는게 더 합리적이라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역설적으로, 사실 사고감축의 가장 큰 기여는 철도공사 출범이라고 주장해도 틀리진 않을겁니다. 과거 사고는 졸음운전이나 직원의 인적 오류가 큰 원인으로 작용한게 많았고, 이 배경에는 24시간 단위 맞교대로 대표되는 혹독한 노무관리에 있었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걸 기준으로 월(30일) 소정근로시간을 산출해 보면 단순 구속시간이 360시간, 휴게시간을 5~6시간 주었다고 가정해도 270시간이 나옵니다. 대충 주당 62시간 근로라는 살인적인 근로시수가 나오는 숫자입니다. 승무원의 경우도 저당시에는 제대로 승무시간 관리가 안되어서 월 220~230시간을 탔다고 하니 대충 환산해도 52시간 정도가 나옵니다. 물론 법정근로시간이 주 6일 근무에 주당 48시간이 기준이던 시대인걸 감안하긴 하지만, 공사화 이후 근로기준법 적용으로 3조2교대화를 하면서 과로가 해소된게 가장 큰 요인이라 해도 틀린건 아닐겁니다.
장래적으로 상하분리를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여러 요소를 고민해서 결정을 해야할겁니다. 운영수익으로 지속적인 철도 건설을 하는건 애저녁에 틀려먹었고, 근래에는 워낙 대규모 투자가 따르기 때문에 순수한 수익기반으로 철도를 건설해 유지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인게 보통입니다. 고속철도 방식, 즉 운임수입으로 고속철도 건설비를 감당할 수 있는건 이젠 한국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이는 상하통합을 실시해서, 운임수입을 기반으로 막대한 건설채권을 발행해 철도를 건설하고, 기존 수익력으로 누적된 건설채무까지 커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상하분리를 더 강화하는 것도 즉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강릉 사고에서처럼, 행정능력만 있고 실제 시공이나 감리 능력이 전무한 시설공단에 아무리 기능을 더 부어넣어준들, 실제 제대로 현장인력을 확보해서 안전활동을 제대로 할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정상운행에 대한 유인이 사라지게 되면서 현업능력이 없는 기업이나 관공서가 대개 그렇듯이 예산 효율성에 집착하게 해서, 역설적으로 과도한 원가삭감으로 무책임한 유지보수, 흔히 말하는 "가라"가 늘어날 가능성이 늘어날 위험이 다분합니다. 그리고 그걸 잡는다고 감사와 감독만 늘어나서 일하는 사람 한명에 감독자만 예닐곱이 붙는 상황이 늘어날거고 말입니다.
더욱이 과밀운전이 일상화되다시피한 한국 철도에서 운영과의 철저한 협업 없이 유지보수 활동을 안전하게, 그리고 적시에 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처럼 일주일씩 주요 역의 절반을 죽여놓고 대보수 공사를 한다거나, 중부유럽들 처럼 주요 간선의 운전을 3일씩 두절하고 대보수 작업을 하는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일겁니다. 1시간 두절을 가지고도 죽일놈 살릴놈을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국철시절 도카이도 신간선처럼 반나절 운휴를 하면서 계약사업자가 긴급보수를 하게 할거같지는 않으니.
결국 미래의 철도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순히 상하분리냐 통합이냐로 결론이 날 사안은 아니라 할겁니다. 다만, 흔히 말하듯이 현장에서 제대로 일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답을 찾는 것이 그나마 좋은 결론을 얻을 유일의 대책일 것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