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철도 합동조사 사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진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게 본 건 함흥역 운전사령실이라고 공개된 사진의 B컷으로 보이는 이 사진입니다. 좀 정신없는 와중에 찍힌 듯 싶지만, 북한의 철도 운전현황을 잘 보여주는 한 컷이라 할겁니다. 옛날에는 역무실에 모든게 집약되어 있고, 맞이방에서도 매표구 너머로 이 풍경을 언뜻 볼 수 있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든 폐색장치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야 아예 관제실에서 취급하거나, 아니면 역의 별개 장소에 PC를 기반으로 한 통합된 신호연동장치를 쓰는지라 폐색장치를 별개로 쓰는건 보기 힘듭니다만, 원래 통표폐색기를 쓰던 시절에는 빨간색으로 칠해진 기기 두 대가 돌출된 창 앞에 세워져 있는게 기본적 레이아웃이었습니다.
함흥역의 것은 통표폐색기가 아닌 일종의 연동폐색기로 보이는 장치인데, 직통전화기가 있고 그 아래에 옛날에 쓰던 모뎀같은 기기가 놓여있는게 아마도 폐색기로 보입니다. 신호기나 분기기하고 연동이 되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인접역의 폐색기하고는 연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서 폐색취급을 하면 양쪽에서 해정 취급을 할때까진 폐색이 유지되는 그런 장치일걸로 보입니다. 아마도 통표식은 제한적으로 지선에 쓰도록 이전해 가고, 급행열차들이 운행하는 주요 간선은 자동폐색 아니면 저런 일종의 연동 내지 무통표 폐색을 사용하는 형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보통 중간역이라면 폐색용 전화기가 상행과 하행 2개가 있는게 통상인데, 저긴 3대가 있는데, 하나는 함흥 종착인 신흥선의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협궤로 건설된 노선이지만 어느샌가 표준궤화된 걸로 아는데, 그래서 함흥역에 들어온 걸로 보입니다. 다만 흥남선 등의 협궤 네트워크는 전철화까지 해서 여전히 사용중이고, 이건 별개의 역에서 취급할 걸로 보입니다. 이쪽은 전기기관차 견인 객차운전까지 하는 등, 의외로 통근용으로 절찬리에 쓰이는데 이번 조사의 범위 밖이니 따로 다뤄지진 않은걸로 보입니다.
옆에 세로로 긴 종이를 끼우는 라이트업 패널 같은 건 좀 흥미로운데, 보통 저건 운전명령 내지는 시각표로 보입니다. 일본철도 현업에서는 승무원에게 지급하는 양식이 저 세로로 길쭉한 종이인데 아마도 당시의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외에 조작반을 대신하는 구내배선도라던가, 옆에 꽂아둔 규정집으로 보이는 서책은 꽤 정갈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실무에서야 저렇게 까진 안하겠지만, 낡고 빈약한 대로 최선을 다해 유지하는 옛 철도의 풍모가 잘 남아있다 할겁니다.
나진~두만강 간의 복합궤 구간의 사진은 처음 공개된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통상적으로 복합궤를 부설하는 경우엔 궤도중심선을 최대한 맞추고, 신호, 전기의 편의때문에 3선궤 방식을 많이 쓰는데 궤도중심선이 완전히 어긋나는 4선궤를 쓴게 좀 독특하다면 독특합니다. 사실 이 방식이 러시아궤와 표준궤를 혼용하는 유럽에선 흔한 방식인데, 이건 케이프궤와 표준궤, 표준궤와 이베리안궤와 달리 한쪽 레일을 공용하면 다른 레일이 겹치기로 설치되어야 해서 레일 부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기는 합니다.
사실 토목 측면에서는 궤도중심선이 어긋나 있다면 터널이나 교량을 더 크게 건설해야 하고, 분기기도 굉장히 복잡한 구조가 적용되어야 하는데다, 전차선의 경우도 한쪽 궤간은 쓰기 어려워지는 난점이 있습니다. 결국 저건 특정한 시설물을 사용하기 위한 방편 비슷하게 쓰이는 정도인데, 나진-하산 구간에서 추가로 대대적인 인프라 공사를 하기는 힘든지라 일종의 방편격으로 건설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 향후에는 여객기능이 주가 될 표준궤는 개량선으로 인프라를 분리하고, 기존선 측은 화물 위주인 광궤를 전담해 운행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걸로 가닥을 잡는게 바람직할걸로 보입니다. 실제 현지 위성사진들을 보면 선형에 굴곡도 많고, 현대적인 토목기술로 직선화할 여지가 많아 보이는지라, 당장에 하기엔 투자비용 문제가 있겠지만 개량사업이 어느정도 진척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반 농담으로 북한은 세계 운수애호가들에게 마지막 프론티어라는 드립을 치기는 하는데, 아마 실제 개방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빈말은 아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증기기관차는 거의 일소된 듯 싶어 아쉽기는 합니다만, 의외로 끈질기게 구식 차량을 유지보수하면서 굴리고, 낡은 인프라를 최대한 유지하고 있는지라 이점에서는 그야말로 최후의 프론티어라는 이야기를 해도 틀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