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지난 유행어를 좀 비틀어서 강평하자면... "KTX 많이 사면 뭐하겠나. 좋다고 신호대기나 쳐먹겠지."
사실 현재의 고속선 운영 상황에서는 차가 문제가 아니라 선로가 문제라서 좌석난이 벌어지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SR개통 이전에는 기존선을 갉아먹어가면서 대수송기간에 임시KTX를 꾸역꾸역 넣어대던 철도공사가 SR이후에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 1~2개 열차, 그리고 병목구간을 피해 다닐 수 있는 기존 경부선 경유로나 좀 밀어넣는 정도의 봉인을 당하고 있는데, 이게 결국 본질은 차량 수량보다는 선로용량 문제라 할겁니다. 이미 평택~오송 구간은 복합열차를 2개열차로 치면 도카이도 신간선보다 열차횟수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나올 지경에 이르렀는데, 열차를 더사봤자 현실적으로 열차횟수를 늘릴 수 있는건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겁니다. 결과적으로 오송역이 평일 아침의 구로역 꼬라지가 나면서 정시성도 망하고, 운영효율도 망하고, 이용객은 짜증나는 그런 난장판이 매일 벌어질겁니다.
원죄를 따지고 들면 SR분리덕에 차량을 통합운용하지도 못하고, 고속선의 747이라 할만한 수송력의 KTX-1편성은 수서엔 넣지도 못하게 봉인시켜서 기껏 좌석공급 개선 여력을 다 말아먹어 잡순데 있기도 합니다. 특히 SR이 복합열차나 중련편성 비율이 낮은건 차량수급도 걸리긴 하지만 그 이전에 호남고속선 방향, 특히 익산 이남에 중련차는 지나치게 과잉수송력이고, 이걸 적당히 찢어줄만한 기존선 직결운행은 지방배치인력 확장이나 면허문제 등 복합적으로 막혀있으니 수익관리 차원에서 안하는게 맞을겁니다. 뭐 이런걸 지적하면 국토부가 험험 할거고, 메이저 일간지들은 열심히 세척업무를 하셨으니 원죄가 있어서 아닥들을 하시는 걸 텝니다만...
실제 제시한 대로 2016년에 의결해서 2017년에 헉헉대면서 기채를 하고, 2023년쯤 되어서 형식승인까지 완료한 EMU-300차량을 24개 편성을 샀다면 철도공사의 KTX편성보유량은 KTX-1 46개 편성, KTX-산천 신구 도합 39개 편성(중 1개는 논외로 둬야하지만)을 합치면 109개 편성을 갖추게 됩니다. 이중 운용율을 85% 정도로 가정하면 92개 편성 운용으로, 보통 1개편성이 2왕복 4개 열차 정도에 충당된다 가정하면 하루 360개 열차까지 운행횟수를 뽑아내는게 가능해집니다. 이 숫자는 현재 철도공사 공시에 나온 고속열차 횟수 243회를 100회 이상 상회하는 숫자고, SR측 횟수를 빼고 하루 19시간 운전을 가정할때 3분 간격으로 차를 넣어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건 뭐 지하철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는 차를 여러대 더 사는게 중요하다기 보다는, 현재 EMU-300을 사는 방향처럼 1개 편성에 최대한 수용력을 끌어올리는게 중요하다 할겁니다. 이 와중에서 2층 부수차 같은걸 중간에 끼워넣어서 닭장화되는 KTX에 좀 더 여유공간을 확보해준다거나 하는 서비스 개선도 병행하면 더더욱 좋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수용력 극대화 방향으로 뭔가 해보려던 철도공사의 시도는 어째 불운이 겹치고 유무형의 겐세이가 들어가서 돈좌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뭐 하다못해 특실의 일반실 개조화나 산천의 좌석증가 개조같은 그야말로 몸비틀기 대책에 대해서 악플 세례를 퍼붓던 기자들과 그걸 받아서 개조 금지(엄근진)하던 나으리들이 있던걸 보면 입으로는 경영개선을 말하지만 손가락으로는 방만경영™을 갈구하는 분들이 참 많았지요.
그러고 보면 기사 말미에 SR이 EMU-320(이라지만 사실상 300) 14개 편성을 사겠다고 시도를 한다는데... 참 항공업계에서 보던 음흉한 밀어주기와 "민간경영의 우월함" 주작의 냄새가 살짝 날듯 말듯도 한 느낌도 듭니다. 아 네 저어얼대로 그러실 분들이 아니죠. 네. 저어어얼대로 말입니다. 어찌 한갖 미물이 나으리들의 고상한 의중을 알겠습니까. 선진화된 경쟁체제® 좀 하자는데 태클을 걸면 저어얼대로 아니되겠지요.
사실 철도공사가 지금 EMU-300을 어느정도 확보하는게 필요하기는 합니다. 2000년부터 직수입된 알스톰제 KTX-1의 잔존수명이 EMU-300차량의 초도운영개시 예상 시점인 2024년이면 5년 남짓, 개중 프랑스 현지공장에서 시운전까지 간 1호 및 2호 편성(현 편성번호와는 별개일 듯 하지만)은 96~97년 생산분인걸 감안하면 슬슬 대체차가 시야에 들어와야 할 타이밍이고, 국내조립품 차량도 역시 10년 이하가 남게됩니다. 차량의 진부화 등을 이유로 조기강판 내지는 제한운용으로 돌려지기 시작하거나 한다면 2025~2026년엔 대체차량이 일정 수량은 확보가 되긴 해야할거라 봅니다. 언급된 대로 EMU-300 24개 편성으로 6천억원의 예산이 나올 지경이고, KTX-1 46개 편성 구매에 2조원 넘게 예산이 꼴아박힌걸 생각하면 수요대책을 겸해서 조금씩 앞당겨 사재기를 하는건 필요한 조치라 할겁니다.
더욱이 세대 교체 없이 기존의 산천 편성을 답습하는 방향으로 가는건 비용 절감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기술 발전이나 산업 육성 측면에서도 그리 득책은 아니라 할겁니다. 더욱이 국내 인구는 줄어들긴 하겠지만, 대중교통으로의 수요전환, 고령화 등으로 인한 자가용 수요 감퇴, 그리고 소득향상으로 여행 수요 자체는 인구 정체와 별개로 어느정도 신장세는 유지가 될거라서 적어도 차량의 세대교체를 할 수요 기반은 나올 거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럴때 전향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할거고, 이 점은 예비타당성 조사같은 규제도구에서 어느정도는 받아주기는 해야할겁니다.
P.S.:
그런데 사실 예비타당성조사를 공기업까지 확장하게 된 배경에는 근래 각광받는 공공사업비 계산단위인 4대강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자원외교로 해먹은 것도 아주 화끈했고 말입니다. 정부예산 꼴아박기도 모자라서 예타 규율의 밖에 있던 공기업을 동원해서 꼼꼼히 해먹었던 전력이 있으니, 입법당국이나 재정당국으로서는 규제를 강화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