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빠진 떡밥을 또 들고와서 이런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으면 욕을 안들을수 없을겁니다. 진짜 일제 잔재 드립을 치고 싶으면 용어집을 털어보면서 좀 그럴싸한 걸 개척을 해야지 이런 게으른 조사를 하면 욕먹습니다.
한국철도의 복선구간은 언제가 시초일까요? 실은 1905년입니다. 일자는 불명하지만 일단 복선구간에 쓰는 쌍신폐색기의 사용개시를 1905년 10월에 영등포~서대문 구간, 지금의 영등포~서울 구간에 적용한 것이 시초고, 출전을 정확히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같지만 그 직전에 영등포~노량진 구간이 최초의 복선운전을 실시했던 것으로 압니다. 이 시점만 보면 일제시대의 초입,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사실상의 철도통제를 가져간 시점의 이야기이니 일제의 잔재라고 할 여지는 분명히 있기는 할겁니다.
다만, 좀 한 가지 주의할건 경인철도 시절에 이미 철도가 운행하면서 도중에 교행을 실시하면서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통행방향 규칙은 존재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비록 개통초기 시각표에서는 오류나 소사 정도에서 한차례 교행하는게 하루 운전의 전부였던 모양이기는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방향을 지켜서 보내는게 존재하였을겁니다. 일본이 건설했으니 일제의 잔재다 라고 하기에는 저때는 아직 조선정부의 통제력이 살아있던 때고, 미국의 입김이 많이 묻어있는 경인철도가 구태여 일본식 기준을 따랐을까 하는 점입니다. 뭐, 경인철도가 찝찝하다면 한성전기회사의 서울전차도, 분명 도중의 교행시 방향 내지는 복선의 통행방향 규약은 건설초부터 있었을겁니다. 이정도 시점까지 오면 솔직히 일제의 잔재라기 보다는 미국의 잔재 내지는 대한제국의 잔재 정도라고 해도 될 법 합니다만, 좀 신중하게 말을 하는게 맞겠지요.
그리고 지하철 쪽이 통행방향을 반대로 하게된 것은 이게 근본적으로 궤도사업, 즉 노면전차의 일환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라 봐야합니다. 지금은 도시철도법과 그 관련 시행령, 행정규칙이 정비되어서 따로 규정의 빈틈이 많이 줄었지만, 그 이전에는 지하철건설촉진법 등으로만 입법되고, 나머지는 노면전차를 관할하던 궤도운송법, 과거의 삭도궤도법의 주요 항목을 인용해서 썼을거라 보입니다. 물론 1호선은 원래 교통부나 철도청의 사업에서 출발하였다가 서울시 지하철로서 추진된 사업이다 보니 철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사업은 서울시가 궤도사업의 연장으로서 보고 추진했던 것이고 그런고로 각종 규칙 역시 거기에서 기인했을 거라 봐야 할겁니다.
노면전차는 당연히 도로를 공용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만큼 도로의 운행방향에 종속되어야만 안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1945년 이전에는 일본과 동일하게 모든게 좌측통행이었지만, 해방후 미 군정은 자기들 차량이나 운전사에 맞게 도로를 우측통행으로 바꿨고, 이에 따라 노면전차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노면표지도 거의 없고, 신호는 사람이 주로 다루는데다 시설물의 개축은 노면전차에나 일부 필요한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거의 필요하지 않아서 그게 가능했을겁니다. 아마 분기기 배열을 좀 바꾸고 차고 입출고선 정도만 뜯어고치는 정도면, 나머지는 운전사의 숙달이면 족한게 목측운전을 하던 노면전차의 개축 소요 전부였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철도는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일단 철도는 신호에 따라 철저하게 통제가 되는 시스템이기에 이런 전환이 안전상의 개선을 얻기 어려운데다, 역으로 당시 흔히 사용된 통표폐색 시스템 하에서는 오히려 번잡해질 가능성이 매우 컸고, 신호기와 연동장치의 전면 재시공도 이루어져야 하고, 건넘선같은 분기기의 방향부터 안전측선이나 인상선 같은 각 시설물들을 일제히 재부설해야 하는 문제가 따라붙다보니 너무 일이 커져서 안하게 되었다 봐야할겁니다.
결과적으로 재정 사정과 기술적 난이도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필요도가 적었고 그렇게 두고 쓰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고칠 수 없는 레거시가 되어버렸다고 해야할겁니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주의 철도 중에는 도로와 운행방향이 반대가 되어있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는 사안이고, 이게 크리티컬하게 작용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전력방식이나 신호방식의 파편화나, 운영조직의 이원화로 인한 비협조나 책임전가 같은 조직병폐 쪽이 더 심각한 문제라면 문제일겁니다. 뭔가 장애만 났다하면 상대방 회사에 넘길 건수가 없는지부터 찾아보는 것에는 위기감을 못느끼고 저런 하잘것 없는 소위 "일제 잔재"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이건 많이 잘못된 세계관이라 할겁니다.
일본과 외교적 대립이 매우 엄중한 시기일수록 이런 식의 기사를 날리기 보다는, 좀 더 중요한 이슈를 발굴하고 정확한 정보를 보급하는게 바람직한 언론의 자세라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