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정책추진력을 얻으면서 남북사업의 명분을 타고 동해북부선이 빠르게 추진이 되고 있습니다. 일전에 착수식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예타면제도 안걸고 뭘 할 수 있겠냐라 생각했는데, 법률상의 면제요건을 맞춰서 남북협력사업의 형태로 바로 잡아넣어 보름만에 결론을 낸건 그야말로 광속추진이라 할만 합니다.
사실, 사업면에서 보면 보성-임성리선과 비견할만한 비채산노선이 될 가망이 높기는 합니다. 속초와 설악산이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건 동서선, 즉 경춘선을 연장해 속초에 이르는 서울방향 노선에서나 중요한 이야기에 가까운 거고, 동해축 방향은 큰 반향이 있을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산업면에서도 분단상황 덕에 영동권에는 강릉보다 이북지역에 중요한 산업시설은 없다시피 하고, 한국전 당시의 그나마 주요항만시설로 꼽히는 주문진항이나 속초항은 어항으로나 유지되는 수준이며, 그나마 남한지역 내의 주요 철광산인 양양철광도 폐산한지가 오래입니다. 즉, 산업면에서 철도가 필요하지 않게 된지가 오래라 여객 수요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크게 기대할게 없다 하겠습니다. 이는 안그래도 적자부담이 누적되는 철도공사 관할 기존선에 더 부하를 거는 형태가 될거고, 좀 심하게 말하자면 개통하자마자 공적 서비스 의무 보전 당첨이라는 이야기라 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해방 직전까지 영동지역 북부의 핵심 교통선이자, 해방 이후 상당기간 선로시설이 그대로 유지되었던 이 동해북부선은 오랫동안 방치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3공화국 시절에 동해북부선 중 묵포~경포대를 개통한 것을 빼면 더이상의 진척이 없었고, 2000년대 데탕트 시기에조차 정부가 별달리 의지를 보여주지도 않았던 것이 그탓이라 할겁니다. 북한 측에서도 별로 중요도가 있는 선로가 아니어서 남측 지원으로 복구한 구간을 방치해버렸고, 얼마 전의 재조사 당시에는 차량 운행이 힘들 정도로 재해 피해를 입었던게 알려지기도 했었습니다. 즉 서로 말은 많지만 그리 가치가 있다고 하기가 어려운 경우였습니다.
다만, 북한측의 사정은 어찌되었든 남한측으로서는 이젠 좀 상황의 변화가 있다 할건데, 일단 강릉선이 완공되고 동해중부선은 공사 중이며, 동서선의 착공이 임박하면서 영동지역 주요 도시간의 철도 연계 필요성이 증가했습니다. 이용객의 수요면에서도 관광활성화나 이용 편의면에서 필요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철도 서비스를 유지하고 효율화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지보수를 위한 작업차량이나 자재의 수급을 다른 노선으로부터 추진해 올 수 있기도 하고, 차량 또한 강릉기지 처럼 잘 갖춰진 기존 시설에 집약화하면서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동서선 개통 이후 보선용 기자재는 죄다 서울을 거쳐 동서선에 반입해 와야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는데, 건설할때야 그렇다 치지만 나중에 본격적으로 운영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영동지역 내에서 서로 융통도 못하고 아주 깝깝해 질 수 밖에 없을겁니다.
따라서, 명분으로서 남북관계를 두고, 실질적으론 내부적 편의와 효율을 위해 일을 하는 형태가 되는 사업이 이번 동해북부선 사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물론, 만약 남북관계가 좀 더 협조적인 관계가 되어서 국제간 열차 운행이 가능해진다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만, 특히 영동권의 경제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거고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프라를 생각없이 지어댄 덕에 강릉시 통과에서 굉장히 애로가 꽃피는 상황이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돈지랄을 기껏해서 환관의 생식기같은 시내 지하구간을 만들어놓은게 가장 뼈아프다 할겁니다. 1960년대에 장기구상에 맞게 어렵게 확보한 시설물 부지는 죄다 박살내서 주차장으로 방치해두다시피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걸 향후의 발전구상 없는 단선으로 지어놔서 개량이든 확장이든 노답으로 만들어놓았다는 점에서 시발비용을 참 잘 해먹었다 라고 논평할 수 있겠습니다. 그나마 가능한게 남강릉신호장에서 분기쳐 나가는 길 밖에 없는데, 이 말은 여객은 빙빙 돌아서 강릉까지 들어가야 하는 병신같은 동선을 감내해야 하고, 화물은 압박이 심대한 단선구간에 교차지장을 가하면서 지나다니는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혹여 이걸로 예산절감 훈포장 받은 인간이 있다면 즉시 삭탈하고 공직추방을 해야 할겁니다.
현재로서는 결국 강릉시 관통선로를 단선이든 복선이든 부설을 해야만 할겁니다. 복선으로 한다면 현재의 청량신호소부터 주문진 정도까지, 단선으로 한다 하더라도 남강릉~강릉기지분기 까지는 복선이 필요할 거라 봅니다. 단선화 한다면 화물용의 우회단선을 별도로 남강릉에서 주문진이나 사천진까지는 빼야 할거라 보는데, 이럴바엔 그냥 지하구간 복선화를 해서 관통선을 파는게 차라리 싸게 먹힐겁니다. 이 경우 주문진 쪽에는 일반열차용의 거점이 하나 정도 마련이 되어서, 강릉역은 강릉선 전용의 착발역으로 돌리고, 일반열차는 지상구간 경유로 최대한 강릉역에 걸리는 반복부하를 분담해야만 할겁니다.
또 장래적으로 검토해야 할것은, 이 동해선 연결을 통해 얻어지는 물류 네트워크 변화를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도 고민을 해야할겁니다. 물론, 이건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 위에 성립하는 만큼 시설투자 소요가 얼마인지, 정말로 큰 변화가 올지도 확실히 말하긴 어렵습니다마는. 일단은, 속초 전후해서 영동권의 물류를 총괄하는 조차시설 및 기관차 거점이 하나 필요할거라 봅니다. 만약 속초 북부에 위치한다면 동서선 삼각선도 검토범위에 넣어야 할거고, 남부에 하게 된다면 동서선 방향으로의 수송부하가 걸릴테니 속초~조차장간의 구간 복선도 생각을 해봐야 할겁니다.
이외에 동해선 축선을 따라 남하한 물량은 인프라가 잘 구축된 부산신항이나 광양항으로 흘러가도록 루트를 짜야하는데, 이때 특히 키가 되는 지점이 가천 일대입니다. 현재는 오로지 가천역의 조차시설에 의존해서 방향을 바꿔가는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여기에 삼각선을 설치해서 경부선 축으로 바로 연계할 수 있는 구조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수도권 남부로의 수송로 또한 문제인데, 강릉선을 경유해서 월곶-판교선에서 오봉역으로 가는 루트를 구성해서, 서판교~오봉간의 컨테이너용 단선 같은 물류연계방안을 모색하거나, 아니면 부발~평택선의 단선 조기착공이라도 검토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뭐, 경의선축의 우회수송 방안도 밍기적거리는 상황에서 이런 종합적인 검토가 제대로 될거같지는 않기는 합니다마는.
동해축의 정비 자체는 1926년에 조선총독부가 내건 인프라 확충 계획인 "조선철도12개년계획"에 나오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제대로 완성이 되지 않은 그야말로 100년 묵은 사업 중 하나기도 합니다. 이번에야 말로 무언가 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