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영상은 1차대전 당시 참전했던 미군의 군용 협궤철도의 영상입니다. 영상으로 남겨진 건 흔치 않은지라 일견의 가치는 있을겁니다.
이런 경편철도류는 19세기 후반에 전쟁이 대규모 동원 형태로 돌아가게 되면서 줄곧 쓰이게 됩니다. 물론 군이 먼저 썼다기 보다는 광산 등지에서 쓰던 요령을 받아들인거긴 하겠지만, 대량의 탄약과 물자를 소비하는 대규모 동원이 일상화되면서 나폴레옹 전쟁 즈음에도 이미 한계가 보이던 노획과 현지징발에 의존하는 작전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모든 물자는 후방으로부터 실어나르게 되는 병참 전쟁이 됩니다.
이 와중에서 왜 경편철도가 쓰이게 되는가 하면, 일반적인 표준궤 철도는 너무 크고 육중한데다, 투입되는 자재나 인력의 소모 역시 방대한데 비해서, 전쟁의 진척은 그 이상으로 가변적이기 때문에 철도가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도로용 크레인으로도 100톤짜리 물체를 들어올리고, 트레일러 한대가 50톤쯤 되는 시대와 달리, 19세기 말엔 자동차는 매우 귀중한 기계로 내연기관이 달린건 그야말로 첨단기술 집약체였고, 철도가 아니라면 말 두마리로 몇 톤을 겨우 운반하는 마차와 100kg 정도를 나르면 매우 훌륭한 노새 등짐에 의존하는게 당연한 시대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표준궤 철도와 그 말단의 소운송 간의 단차가 너무나도 커졌고, 이를 메꿀 수단으로 50~70cm정도의 궤간을 쓰는 경편철도가 투입되게 된겁니다.
영상 초입의 묘사를 보면 병사 한명이 목침목을 들어다 깔고 몇 사람이 달려들어 레일을 놓고 개못을 박아서 궤도를 부설하는게 보일겁니다. 표준궤라면 너무나 조악한 선로라서 차가 자빠지고도 남을 선로지만, 수 톤짜리 협궤 기관차라면 그런대로 굴러갈 수 있는 선로가 됩니다. 물론 저거 외에 아예 제대로 조립해 놓은 레일과 침목 결합체인 궤광을 운반해서 현지에서 인력으로 정리한 노반 위에 척척깔고 이음매를 체결해서 굴리는 경우도 흔합니다. 일반철도라면 크레인으로 이 궤광을 들어야 하겠지만, 협궤다 보니 그러지 않아도 충분한 경우랄까 그렇습니다. 기관차 역시 평판화차로 운반 가능한 정도의 중량을 가진 것으로, 수 톤에서 많아야 10~20톤 정도의 물건으로 현장에서 가설한 기중기나 보선/구원용 증기 크레인으로 들어다 하역하는게 가능한 수준의 것이 쓰였습니다.
저렇게 부설하는 경편철도는 대개 기성 철도의 종단점에서 전선 뒤의 보급거점까지의 수송구간을 담당하는게 보통이어서, 일본군 철도연대의 경우엔 1개 대대가 약 45km 정도 구간을, 이런 대대 4개와 재료창을 예하에 두는 1개 연대는 경편철도의 수송한계라 말해지는 180km 정도의 구간을 커버하게 됩니다. 이건 아마도 유럽측의 군용 경편철도에서도 큰 차별이 없을건데, 이런 운용개념을 독일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일본군이 배워왔을거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편철도를 180km를 직선으로 쭉 뽑아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철도종단에서 2~3개의 지선 형태로 뻗어나가는 모양새가 되기는 할겁니다. 전선으로는 식료품이나 탄약, 무기, 병사들을 수송하고, 후방으로는 반대로 부상자나 휴가자를 실어오거나, 전쟁에서 발생하는 여러 폐자재를 회수해 오는 식으로 동작하게 될겁니다. 만약 전황이 나빠진다면 장비와 병력을 철수하는 수단이 될거고 말입니다.
보통 경편철도는 굉장히 가설과 철거가 쉽기 때문에, 전선이 고착된 동안에 기존 철도종단에서 전선 뒤의 적 곡사포가 닿지 않을만한 지점까지 철도를 복구해 전진하면서 점차 경편철도 구간을 단축 해 나가게 됩니다. 아예 경편철도가 깔린 구간을 그렇게 대체해 갈수도 있지만, 대개는 파괴당한 철도를 복구해서 전진하는 형태가 될겁니다. 그렇게 전진해 나가면서 더 이상 수송용도로 쓰지 않는 경편철도를 다시 새로운 종단점에서 전방 보급거점으로 전개하는 식으로 움직히게 될거고 말입니다. 1차대전까지는 이런 양상으로 전쟁이 전개될 수 있었는데, 군대의 전진 속도는 도보 속도를 넘기 힘들어서, 하루 전진 속도는 별다른 저항 없이 나가더라도 수십km 정도, 만약 전선이 형성되어 참호를 파고 대치하는 지경이 되면 그야말로 하루 100m도 못밀고가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루에 3~4km씩, 열흘 정도에 40km를 부설하는 경편철도면 느리긴 해도 전선의 유동을 그나마 따라갈 수 있는 물류 수단에 근접했을겁니다.
2차대전쯤 되면 항공기와 화포, 자동차의 발달로 전선이 그야말로 다이나믹하게 요동치게 되고, 1차대전과 달리 후방이 전선과 명확히 분리되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 됩니다. 하루 100km씩 기동하는 기갑을 경편철도의 부설속도로 따라갈 수 없는건 물론이거니와,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자동차가 이미 어지간한 협궤철도의 속도나 수송력을 압도하기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존 표준궤 기반의 철도 수송은 매우 긴요한 수송수단이었기는 합니다만, 여기에서 전선까지의 수송은 이미 협궤철도로는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다이나믹해지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1차대전 이후의 경편철도 붐이 분 건 사실 군대에서 방출된 이런 막대한 자재들과 차량들이 있어서라고 해도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전쟁을 위해서, 또 소모를 각오하고 열심히 찍어놓은 물자들이 쓸데가 없어지니 민간에 싸게 불하되었고, 이런 헐값의 기재가 풀리다 보니 이런저런 지선망에 협궤를 가져다 대는게 싸게 치이게 되는 효과가 생깁니다. 마침 전쟁 이후 호경기 덕분에 민간에 자본도 넘치는 상황이었고. 그러나, 그런 붐은 10년여 뒤에 당시 대공황이 몰아닥치고 미국을 필두로 자동차, 주로 버스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느려빠진 협궤로는 감당이 안되게 되어 1930년대부터 이미 망하는 노선이 속출하고, 전쟁으로 인한 물자난과 인력난으로 운휴가 속출, 이후 회복되지 못하고 폐업이라는 루트로 대부분이 빠지게 됩니다.
청일전쟁 당시의 군용철도는 사실 이런 경편철도가 아니라 마차철도나 인력궤도였을 가능성이 다분하기는 합니다. 다만, 이게 갑툭튀한 무엇이기 보다는 이미 유럽등지에서는 곶잘 쓰였던 것이기 때문에 혹시나 라는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일단 보스니안 게이지가 1870년대의 창안이고, 이 시대가 협궤 유행이 유럽에서 한번 돌던 시대였기도 하니 말입니다.
P.S.: 경편자재들이 또 기여한 부분이, 대규모 토목공사이기도 합니다. 특히 장대터널이나 댐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에서 경편철도 자재들이 흔해지면서 과거에는 자재와 인력의 투입이 어려워서 못하거나, 또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사토(불필요한 흙과 돌)들을 반출하기 어려워서 하기 어렵던 공사들이 대거 경제성을 가지게 된 면이 있습니다. 뭐 전쟁의 대규모 동원과 병참을 해본 경험이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하게 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만, 철도같은 메가프로젝트는 어떤의미에서 전쟁과 양면을 이루는 부분들이 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