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도시철도 역사를 뒤벼보다 보면 1968년 노면전차 폐지와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 사이의 기간은 일종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호선의 착공이 1971년의 일이니, 아주 좁게 보더라도 1968년에서 1971년 사이의 기간은 사실상의 공백 상태인데, 당시의 일처리를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긴 공백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 기간 동안엔 어떤 일이 있었는가가 좀 뒤벼볼 요소가 있다 할겁니다만, 문헌이 별로 남은게 없어서 기사 등의 단편으로 찾아볼 수 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일단은 노면전차의 폐지방침은 1966년 즈음에 시청 내에서 거의 정해지기는 한 방향으로 보입니다. 당시의 주된 문제로 든게 교통 흐름에 방해되는데다 느릿하다는 점, 그리고 운임규제를 장기간 유지하다 보니 버스보다 운임이 낮아져서 경영회생의 가망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신조차량을 1963년부터 들이기는 했지만, 차량부족 문제 덕에 1950년대에 도입한 당시에도 20년 이상 묵은 미제 중고차량은 물론이고, 1930년대 이전의 일제 차량을 거의 그대로 굴리다시피 하는 상황에선 뭐 노후화가 너무 심각하단 문제도 있었습니다. 뭐 여기에 레일도 굉장히 낡은데다, 전력설비 역시 갱신투자의 타이밍을 놓친 상황이었던게 아닌가 싶고.
일단 폐지는 하지만 이용객의 반발이 워낙 큰지라 일종의 떡밥 뿌리기를 쓴게 1967년에 발표한 "전차 현대화 5개년 계획" 이었습니다. 총 예산 17억원을 들여서 변두리 지역에 전차를 설치하고, 도심구간 철거에 4천 7백만원을 들이는 계획이었습니다. 일단 신규 노선으로 계획된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설동~수유리~창동 8.8km
○ 영천~불광동~갈현동 7.7km
○ 원효로~마포 1.7km
○ 왕십리~화양동 4km
○ 청량리~면목동 5.7km
○ 영등포~화곡동 10km
그리고 철거구간은 ○ 서대문~종로(종각)~종로4가 ○ 종로~을지로 ○ 서울역~을지로6가 구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이미 1966년에 존슨 대통령 방한을 빌미로 ○ 남대문~효자동 구간을 폐지하고 도로포장을 해버린 상태였기에, 실질적으로 이 계획에 근거해서 잔존하는 구간을 묶어보면 동대문을 축으로 하는 동부 구간과 마포와 용산을 축으로 하는 서부 구간으로 양분이 되게 됩니다. 다른 기사에서는 이걸 고속노선, 즉 전용궤도를 쓰는 방식을 검토한 흔적이 보이고, 재원대책으로 동대문 차고부지 매각과 차관, 기타 보유재원을 쓰는 걸로 언급이 됩니다. 일단 이 계획만 보면 어떻게든 존속은 가능했을 걸로 보이기는 하는데, 뭐 그런거 없이 1968년에 전부 사업중지를 한걸 보면 노사문제에서 극단책을 쓰기로 했거나, 서울시의 재정압박이 워낙 심각했거나 둘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은 듭니다. 저 시기에 화곡이나 면목, 창동 이런 곳은 단독 택지로 개발을 추진하던 시대였던걸 생각하면 노면전차라는 지점에 매몰되지 않고 저규격의 근교전철로서 어떻게든 이어갔다면 싶지만 개발연간의 일이란게 그리 쉽게 말하긴 어렵기는 합니다.
여하간 이 급거 폐지가 결정된 이후에 대체수단으로 지하철 이야기가 나왔을거 같지만, 실은 바로 간게 아니었습니다. 도중에 일본 등지로부터 제안을 받았던 시스템이 1968년에 갑자기 언급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SS트램"이라는 물건입니다. 국내에서는 이때의 언급 이후 거짓말처럼 싹 사라져 버려서 이게 어떤 물건인지를 감을 잡지 못했는데, 마침 발굴한 사진이 앞머리의 저 사진입니다. 즉슨, 이 SS트램은 고무타이어 방식의 전철을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실은 삿포로 지하철에 쓰인 그 물건입니다. SS트램이라는 이름도 일본 업체, 당시 언급되는 이름은 히다치와 가와사키 정도인데, 이쪽에서 쓰던 상표명 비슷한거였지만 당시 관청가에서는 시스템과 상표명을 딱히 구분할만한 생각을 안했던지라 이게 언급이 된걸로 보입니다.
SS라는 이름은 Silent and Safety 정도의 의미라고 하는 모양이고, 당시 보도에서는 이를 해석해서 무소음 안전 전차, 그리고 그나마 시스템으로서 명칭으로 단궤철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 고무타이어 방식의 전동차는 주행로 가운데에 돌출된 유도레일을 사용해서 조향을 하는 방식이었기에 이런 호칭이 나온건데, 문제는 단궤철도라고 하면 보통 모노레일의 역어로도 쓰는지라, 여기에서 모노레일과 경전철의 혼동이 또 생겨나기도 했던걸로 보입니다. 이건 이후 90년대에도 계속 재탕되어 나오고 있으니 뭐... 60년대 말의 이야기가 두고두고 말이 돌아서 온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당시 이 SS트램 방식으로 건설을 하는건 기본적으로는 고가철도를 염두에 두었던 걸로 보이며, 특히 시내구간은 청계천 축으로 청계고가도로에 같이 설치하는 것이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던 흔적이 보이는데, 이후 그대로 지하축을 관통하는 걸로 언급이 됩니다. 이 당시의 보도된 노선도는 여러갈래가 있지만, 아마도 전차이설계획과 맞춰서 본다면 아래 그림 쪽이 일단은 당시의 지하철 구상에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즉, 4개 노선에 도심관통은 지하철이라는 그림은 이때 이미 확정적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후에는 여러갈래로 노선 구상들이 엇갈리면서 다양한 노선도가 나돌게 되는데, 이때 돌던 게 순환선도 아니면서 한강 이남에서 서로 교차하는 4호선 그림이라던가, 이곳저곳에 소순환선으로 뱅뱅도는 노선들 그림이라던가 이런게 나온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후 일본의 기술자문단(JARTS) 안과 서울시 안을 조합해서 이른바 5호선까지 투입되고, 기존 전철과 직결하는 노선계획이 나오고 그게 일단은 2호선 착공 이전까지는 유효한 노선계획이 되었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계획에 근거해서 철도청과 서울시 지하철이 직결하는 종로선 계획이 추진,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71년 착공 74년 개통이라는 꽤나 스피디한 추진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뭐, 정치자금 문제가 결부가 되었고, 개통시점에 사건까지 겹친지라 뒷맛이 개운치는 않긴 합니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