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신호는 철도를 안전하게, 그러면서도 효율적으로 다니게 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만큼 당대에는 최신의 기술을 집약한 것들이 사용되어왔고, 특히 20세기 전반에는 미국의 기기들은 그야말로 공업력을 집약해 만들어진, 경제력에 부합하는 고급품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위 영상의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신호기기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제어조작반에 해당하는 기계로, 흡사 핀볼 머신 처럼 생겼지만, 기계식 컴퓨터와 공압장치의 원격제어 기능, 그리고 그 동작상태를 피드백하는 표시부까지 갖춰진, 거의 기능을 그대로 갖춘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이아웃이 지금 보면 좀 단조롭게 보이지만, 실은 저게 전통적인 신호취급소의 구조를 옮겨놓은 거라서 그렇습니다.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던 2층건물 구조의 신호취급소들도 레버의 배치는 저렇게 일렬로 죽 늘어놓고, 각각의 레버 앞 선반에 동작상태를 현시하거나 관계처에 알림용 벨이 동작하도록 하는 그런 방식들이 쓰였는데, 이것이 이어져 온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모자이크 패널이나 컴퓨터를 사용한 방식이 보급되면서 2차원 평면에 배선도를 그리고 거기에 조작스위치를 배치하는 방식이 되었지만, 이때의 넘버링이나 배열 기준은 여전히 쓰이는 모양입니다.
2차대전 이후에는 트랜지스터로 대표되는 전기기술이 발달, 보급되었기 때문에 전기에 의한 방식이 세계적으로 보급이 되고, 몇몇 나라에서 쓰인 공압과 기계식 연산장치에 의한 방식은 그리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정교하고 비싼데다, 유지보수가 까다로운 물건이었고, 그래서 이걸 도입할 만한 곳은 선진국이라 불리는 곳들의 대규모 터미널 정도에나 한정될 정도였고, 그나마도 2차대전 이후 전후복구 과정에서 전기장치로 동작시키는 쪽으로 대체가 많이 이루어졌기에 이후로도 희소한 장치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해리스버그는 펜실바니아 주의 주도로,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왕년에 미국의 주요 철도회사로 손꼽히는 펜실바니아 철도의 주요 터미널중 하나였습니다. 현재에는 행정기관들이 시 인구의 고용을 상당부분 책임지지만 원래는 철강이나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되던 곳이었고, 뉴욕과 시카고를 연결하는 펜실바니아 철도의 본선을 1930년대에 전철화를 했을때 그 종단점이 이 해리스버그였다고 합니다. 이 해리스타워는 1928년에 건립된 것으로, 이후 해당 철도가 파산하여 이래저래 이합집산을 거치면서도 계속 사용되어 오다 1990년에 신형 기기로 대체되면서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비슷한 기기들은 설치된지 10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의외로 여전히 쓰이는 곳들이 남아있는 편인데, 현용의 것은 미디어 보도 정도로만 노출되는 만큼 저렇게 동작을 디테일하게 보여지지는 않는 편입니다.
철도에 있어서 차량이나 역 정도만이 보존의 관심이 되는 편인데, 사실 철도는 기술과 제도, 노동의 총합체라 할만큼 다종다양한 서브시스템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동작하고 있습니다. 저런 사례를 보면 단순히 그 기물 정도에 천착하기 보다는 좀 더 복합적인 관점에서 다뤄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뭐 극단적으로 영국에서 증기기관차와 통표폐색 시스템 하에 돌아가는 보존철도까지는 무리가 있겠지만, 그냥 폐지된 고물을 모아놓는 것 이상은 우리도 이젠 해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