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일반철도나 광역철도를 보면 부본선이 전혀 없는 정차역들이 종종 존재합니다. 일반철도의 경우는 부본선이 있어도 드물게 쓰고 대부분의 여객열차를 본선으로만 받아 취급하는 역들이 다수고, 광역철도에서야 아예 그런 개념자체가 없이 본선상 정차역을 두는게 기본이라 할겁니다. 그리고 이런 행태를 하더라도 ATS같은 신호시스템에 의해서 보호가 되니까 별 문제가 없는데, 더 고도의 신호시스템을 적용받는 KTX에서 못한다는건 일견 불합리해 보릴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신간선에서는 부본선이 없는 아타미나 신고베 같은 정차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잉 우려가 아닌가 그런 이야기도 나옴직 해 보이기는 합니다.
사실 본선 정차를 허용하더라도 충돌 등의 위험은 무결성 수준 3~4정도에 걸치는 극히 드문 사고사례가 되기는 할겁니다. 물론 저번 지하철 4호선 사고처럼 신호시스템이 정상이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인적 오류가 나올수 있기는 합니다마는, 정상적인 운전에서는 가망없는 이야기라 할겁니다. 오히려 이게 불가능하다면 정상적인 운영 원리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그런 수준의 이야기라 할거고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 부본선 문제의 본질은 당면의 충돌 안전보다, 이용객 안전 문제, 그리고 사고나 장애 시의 처리 문제에 더 방점이 가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될 부분은 최고속도 300km/h로 통과하는 열차로부터의 안전 이격거리 확보 문제에 있습니다. 물론 보수작업자들이 열차풍에도 불구하고 본선 선로에 인접해서 작업하거나 하는 사례도 있으니 3~4m 정도의 인접 자체만으로 안전에 심대한 문제가 생기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기는 할겁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준비되어 있고 안전장구와 대처태세를 교육받은 작업자와, 그런 대비가 없는 이용객의 보호수준은 같을 수가 없거니와, 열차 방해 의도를 가지거나 자살 기도, 또는 음주 등 심신미약으로 매우 무방비한 상태의 이용객이 있다면 특히나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통과속도를 크게 제약하거나, 아니면 승강장 안전문 같은 보호시설이 개입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열차운행에 직접적인 지장을 주는 문제가 생기게 되고, 후자의 경우는 300km/h 통과에 대한 방호를 할 수 있다는 보증이나, 오동작이나 고장시의 안전확보라는 문제가 따라오게 됩니다. 물론 이미 SR 동탄역에는 승강장 안전문을 적용해 운행하고 있지만, 이쪽은 통과본선에 대해 적용한 것도 아닐 뿐더러,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터널 기압파에 대한 대책에 가까워서 직접 강력한 압력에 노출되는 장비는 아닙니다.
여기에 겨울철에 늘 따라다니는 문제인 강설 대책이 끼게 됩니다. 차체에 붙어 굳어진 눈이 선로 등 시설에 떨어지면서 자갈이나 굳은 눈, 얼음이 다시 튀어오르는 문제가 있어서 강설시엔 감속운전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고속선 열차가 통과하면 성대하게 눈보라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안전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고장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즉, 상시 안전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단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근래 상당히 문제가 된 안전문 보수작업자의 안전 문제까지 끼면, 본선 정차를 보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설비랄까 그렇게 보아야 할겁니다.
그리고, 사고나 장애 처리시의 문제가 남습니다. 일단 고속철도의 부본선은 대피취급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 역에 확보되어 있는게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속철도는 약 20~30km의 역간거리를 가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도중에 본선이 두절되거나, 차량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경우엔 도중 정차역을 활용해서 승객을 대체수송하거나 대피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유사시에 열차들을 수용하기 위한 설비로서 부본선이 필수적으로 설치된다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프랑스 TGV 노선은 역간 거리가 제법 긴 편인데, 그런 간격 도중에 드문드문 전차선까지 가설된 1선 또는 선로 좌우에 2개선로씩 설치된 측선들이 본선 상에 설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는 평소에는 유지보수용 차량의 대피나 출입, 유치를 위해 설치해 두지만, 유사시에는 역에 수용되지 못하거나 도저히 그럴 여력이 안되는 고장차를 파킹해 두고 사고를 당한 여객을 탈출시키며, 본선 통행을 확보하기 위한 용도로 계획된 설비라고도 합니다. 사용 사례는 흔치 않지만, 그만큼 안전대책에 근간을 이루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부본선이 없는 정거장이 있다면 이런 장애시에 해당 역을 수습의 거점으로 쓸 수 없게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선 통행을 확보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여객은 물론 본선만 있는 정차역을 통해 탈출시킬 수 있겠지만, 운행 불능이 된 차량을 다른 열차들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치우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만약, 현재 우리나라 고속선의 표준 중 하나인 본선 건널선들이 전혀 없다면 이 차량을 치우는데 인접한 부본선 설치역까지 끌고가야만 일단 수습할 수 있게된단 이야기고, 이는 자칫하면 하루 종일 운행장애를 맛보게 된단 이야기기도 합니다.
실은 부본선 미설치 문제는 호남고속철도 건설이 막 시작되던 2012년에 국회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습니다(링크). 당시도 열차풍 대책과 사고, 장애시의 수습 문제가 걸렸던 사안인지라 새로울 것도 없고, 그래서 저런 강경한 발언이 나왔다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는 않을겁니다. 역간거리 문제는 장래 EMU-320 차량으로 완전히 대체된 다음에는 큰 무리없이 해결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때에도 부본선 안전 문제는 꾸준히 걸리기는 할거라 봅니다.
국토부 입장에서는 여기에 더해서, KTX세종역 신설이 인정된다면 추가로 정차역을 만들고 싶어하는 민원지역들, 현재 일단 요구를 내걸고 있는 논산, 김제, 칠곡(북삼) 등이 모두 들고일어나고 이걸 막을 명분이 없어지니 더더욱 OK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또한 철도공사 역시 공주역이 사실상 간이역 수준으로 썩 실적이 좋지 않은 판에, 아예 요일제 운영을 주장하는 논산이나, 기존선 접점도 없어서 사실상 간이역이 될 김제, 칠곡을 더 떠앉게 되는건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일 수 밖에 없을거고 말입니다. 사실 이렇게 중간역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건 거점을 빠르게 연계하는 고속철도의 기본 개념과는 정반대로 대치되는 상황이니, 개중 그나마 가치가 높다 할만한 세종역이라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랄까 그렇습니다.
장래 정치에서 어떤 논의가 되어 어떤 결론이 나오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겠지만, 여하간 이 건은 장기 미제가 되지 않을까 그리 예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