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년이상의 폭우덕에 철도의 두절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충북선은 뭐 사실상 선로 다시 깔아야 하는 수준의 피해인 것 같고, 태백, 영동선도 장기 두절 상태, 밤새 경전선과 장항선, 광주선과 전라선까지도 피해를 입어서 단축 내지는 운휴가 생기고 있습니다. 한 해에 이정도 피해가 나는 경우가 흔치 않았는데, 올해는 아마 해방이래 역대급의 피해인 셈입니다.
거시적으로는 기후변화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봐야할겁니다. 기후가 열대화되고, 열대지역은 더 고온화되면서 그만큼 수증기량이 늘어나고, 또 동시에 강수량 역시 늘고 집중되는 그런 현상이 생기고 있다 할겁니다. 다행히 올해는 장마전선이 오래가면서 태풍은 상대적으로 덜 생기는 추세라, 강풍 피해가 그나마 덜하기는 합니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제 우리의 문앞에 몰려와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여하간 이번 피해 구간을 보면 충북선을 빼면 대부분 산사태와 범람으로 인한 두절이었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폭우가 지속되다 보니 산악지역의 지반이 물러지고, 그러다 물길이 나면서 토사가 같이 쏟아져 내려와 선로를 틀어막게 되는 그런 현상이 이어졌습니다. 또, 이렇게 집중된 강수량 덕에 하천 수량이 급증해서 노반을 쓸어가거나, 비교적 낮게 위치한 교량을 집어삼키는 현상도 잇따랐고, 그 극단적인 피해 사례가 충북선에서 나온 피해라 할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피해 구간이 대부분 90년대 이전에 건설된, 적어도 30년 이상 된 구간에서 집중되었습니다. 충북선은 구선을 활용해서 복선화를 했지만 이번 피해구간은 80년대에 복선화 공사를 한 지점이었고, 태백선은 1970년대에, 영동선 쪽은 아예 해방 전후해서 건설된 구간입니다. 경전선과 장항선 역시 아직 개량되지 않은 일제시대에 건설된 구간입니다. 이들 구간은 지금까지 꾸준히 개량, 보강되긴 했고, 특히 영동선의 경우는 동서간 횡단 간선으로 화물수송의 중요도가 있기 때문에 정말 인간 승리라 할 만큼 보강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처가 콘크리트 옹벽이 자리하고 있고, 중간중간 피암터널이 나타나 차창을 한번씩 끊어내기도 합니다. 장항선이나 경전선의 경우는 환경이 비교적 온후한 편이라 그정도는 아니지만 옹벽이나 노반보강용 시설물들이 종종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도 구식의 철도를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만큼 기후가 격렬해지고 있고, 이게 반전되기는 그리 쉽지 않을거라 보입니다. 다행히, 근래에 정비된 노선들에서는 피해 보고가 전혀 없어서 개량투자 자체는 의미가 없진 않다 할겁니다. 물론 여기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고, 전라선의 경우 가장 최근 개량된 동산~전주 구간에서 침수가 발생하기까지 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그래도 발달된 기술이 적용되고 기계력과 충분한 자재를 투입한 만큼 구식 철도에 비해 매우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할겁니다. 물론, 누수같은 사소하지만 짜증나는 결함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현대화된 철도가 일단은 기후변화 시대에 대응 가능하다는 건 다행이라 할겁니다.
이번 피재구간에서도 중앙선이나 장항선의 경우는 이미 개량공사 중이고, 충북선은 계획 수립 단계, 경전선도 거의 추진이 확정된 모양새입니다. 다만 정작 태백선과 영동선은 아무런 계획이 없는 상황인데 이번에 대책 검토는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실은 2006년에 이 구간의 재해대책으로 선형개량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당시 B/C값은 0.3~0.4 정도의 처참한 성적으로 기각된 바 있습니다. 태백선의 경우는 예미에서 사북 구간, 영동선은 봉화, 춘양, 분천 주변에 집중된 계획이고 당시 사업비는 각각 3천억원 전후가 들어가는 거였는데 당시로서는 동서간 철도연결은 현 강릉선이 예정되어 있고 하니 중요하지 않다고 봤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번 재해에서 동서간 두절이 실제로 벌어지자 두절기간은 거의 1주일에 육박하고 있고, 강릉선은 여객은 다니지만 화물은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 화물수송이 완전히 단절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충북선의 피재 덕에 전통적인 시멘트 화물은 완전 두절상태에 가까워졌습니다. 거같으면 중앙선으로 우회수송이라도 헀겠지만, 이쪽은 KTX 투입 덕에 용량이 없어서 완전히 틀어막혀 버려서 운행이 완전히 막혀버리고 있기까지 합니다.즉, 철도망은 늘었지만 정작 쓸 수 있는 노선이 크게 줄어버렸다는 문제가 생겼고, 2000년대의 사업성 우선으로 판단한 인프라정비의 대가를 지금들어 치루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재해 상황을 말미암아 시설투자 방향에서 좀 변화가 필요하긴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가상승은 감안해야겠지만 2006년에 3천억원 내외의 투자액 부담을 지금에 와서 못할 이유는 별로 없다고 보입니다. 영동선 쪽은 피재구간이 격오지다 보니 좀 무리가 있지만, 태백선 쪽은 원포인트로 현 함백선 폐지를 포함해서 예미~민둥산 구간을 터널화 하는 건 조기에 검토해 볼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실제 선형은 영월~예미구간 쪽도 안좋기는 하지만 일단 급구배에 가장 깊은 산을 뚫고 들어가는 저 구간을 개량하는 건 일단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장항선의 미정비 구간인 신성~주포 구간의 정비일정을 최대한 당길 필요가 있을겁니다. 지역민원 덕에 사업예정이 엄청나게 밀려서 손도 못대고 있는데, 공기단축 대책까지 포함해서 빠른 추진이 필요할겁니다. 그나마 이 주변은 재해 부담이 그리 심한건 아니지만, 선형이 썩 좋지 못한지 이 구간이 장항선 지연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긴 하고, 이는 기후가 극단화된다면 더 상황이 나빠질 만한 구간이긴 할거라 봅니다. 차량 투자도 꼬이고, 서해선 개통이나 익산대야간 복선전철화 투자를 모조리 말아먹는 상황까지 따라오는 만큼 여긴 좀 바짝 신경을 써야 할거라 봅니다.
그리고 물류 단절에 대한 대책이 좀 더 체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할거라 봅니다. 유사시에는 철도에 의한 물류수송이 중요한데, 이번 재해상황에서 현 철도망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게 드러나 버렸지 않나 생각됩니다. 합리화와 투자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무수히 많은 철도물류 대책을 짬시켜왔는데, 이젠 좀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일단, 강릉선의 화물운행을 일단 본격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루 1왕복이라도 동서간 화물운행을 끼워넣어야 하지 않나 싶고, 여기에 부수되는 개량투자를 일부 하긴 해야 할거라 봅니다.
또한, 제대로 된 수도권 주변의 화물우회루트 정비도 이루어져야 할겁니다. 충북선이 두절되면 사실상 중앙선축에서 수도권 남부로 가는 화물루트는 완전히 차단됩니다. 이에 따라 여주-원주선 공사 및 월곶-판교선 공사에 더해서 서판교 내지 청계 정도에서 오봉역으로 가는 단선 화물지선을 건설하고, 기존에 전동차 전용으로 쓰이던 구간을 개량해서 전기견인 컨테이너 화물이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할거라 봅니다. 또한, 경원선 시내구간의 선로증설이나 망우선 경유 교외선으로의 우회경로 정비도 적극 검토하여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할겁니다.
여기에 정보전달 체계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이 필요할거라 생각됩니다. 안전문자시스템 활용이나 단문 메시지 정도로 안내가 나가는 체계는 되어 있지만, 아예 이용하고자 하는 공중에 대해서 알리는 체계는 아직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아침 뉴스에서나 알림이 나오는 상황 자체는 어쩔 수가 없지만, 그래도 역에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전달하는 체계는 좀 마련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쪽은 일본쪽 철도회사들이 체계가 잘 되어 있는데, 노선별 지연 안내나 운행장애, 사고 등을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할거라 봅니다. 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다른 정보시스템과 구분되며, 비주얼화가 잘 된 실시간에 가까운 전달체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
요즘을 보면 앞으로 지금과 같은 극단적 기후는 더 심해질거고, 어쩌면 여름철 극한기후대에는 아예 철도운행을 포기하는 상황까지도 도래할 지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런 극단 기후의 주기가 더 빨라지고 강해질거라는 생각은 기본으로 가져가야 할거고 말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봉으로, 사용 에너지의 완전 비탄소화(넷제로) 같은 목표에 있어 긴요한 시스템이 철도지만 또한 기후변화에 가장 노출되는 존재기도 하다는 점에서 가일층의 총체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