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선의 최초 개통시점은 의외로 명확히 언급되지 않는 편으로, 그나마 알려진 것이 총독부의 영업개시 고시에 근거한 1929년 개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그리 길지 않은 노선이라도 건설경과가 있기 때문에 그 시점 자체는 알려져 있는 편이고, 수 km짜리 노선이라도 보통은 개통시점이 명시가 되지만 당인리선은 유독 그 연원이 불투명합니다. 뭐 자잘한 화물지선류들에까지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을거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자료를 찾다 보니 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찾아냈는데, 실은 당인리선의 연원은 1905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나 생각되는 언급을 찾아냈습니다. 경의선 건설과정에서 재료를 양륙하기 위한 이른바 재료수송지선으로 건설되었다는 기술입니다.
이렇게 건설된 재료수송용 지선의 필두는 월미도 인천역간의 3km짜리 지선을 설치한 것으로, 1906년 8월에 건설된 것이 언급됩니다. 이후 이와 병행하여 대동강을 낀 황주군에 이른바 겸이포선을 건설한 것도 잘 알려진 사안입니다. 공병소좌 와타나베 겐지의 이름을 따다 붙인 꽤나 오만한 지명으로, 해방이후에 북한당국이 송림으로 개명해 지금에 이르는 곳입니다.
여기에 더해 언급되는 사안이 이를 포함해서 벽란도, 신안주 등 6개소에 재료운송 지선을 부설하였고, 이중 1개선은 경편철도였으며 나머지는 전부 표준궤로 부설을 하였다고 하고, 이들은 이후 폐지되었다고 언급이 됩니다. 다만 이중 겸이포지선과 마포지선, 신안주양륙장 지선 3개는 존치시켰다고 하는데, 즉, 여기에 말하는 마포지선이 바로 당인리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단 폐지되었다가 다시 지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거 같지만, 이런 경우라면 문명개화를 강조하던 일제때 2.4km 정도인, 이후 여객영업까지 실시하는 노선의 건설을 누락했을 이유가 없고, 개궤 사업을 했다면 그것 역시 언급이 있었을텐데 그런게 없다는 점에서 아마 화물용 지선으로 남아있던 철도를 건설 후 약 20년이상이 지난 후에 여객영업을 하게 되면서 당인리선으로 이름을 붙인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노선명이 명시된 일반철도노선들 중에서 구한말에 완성을 본 몇 안되는 철도에 이 당인리선이 들어간다 할 수 있을겁니다. 꽤 재미있는 역사적인 발견점인데, 이게 만우절에 올라온 글이 아니라면 더욱 그러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