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부야 확인되지 않는 사안이지만 북한이 경의, 동해선의 현대와 보다 고속철도를 주장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게 좀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꼭 헛바람든 이야기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속철도를 까는 건 매우 비싸고 돈이 많이 드는 대안입니다. 경부고속선 400km여를 건설하는데 최초의 건설검토 보고서가 나온게 75년, 이후 착공은 93년에 이루어져, 서울을 제외한 도심구간 선로 사용개시는 2015년에 이루어졌습니다. 대충 구상으로부터는 40년, 실제 착공으로부터는 22년의 시간이 들었고, 총 사업비는 지하차도 등의 잔여공사들이 남은게 있어서 명확하진 않지만 20조원을 넘길 걸로 예상이 됩니다. 사업진행과 관리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쉽게 지를 수 있는 사업은 확실히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누굴 호구로 보나 싶은 생각이 안드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북한 철도의 상이한 규격이나 지나치게 노후화된 설비수준을 생각하면, 대대적인 개량공사와 차량 시스템을 개변시키는 비용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거라는건 쉽게 예상이 됩니다. 직류급전이 못쓸 물건까지는 아니지만, 고성능 차량 투입이 어렵고 변전소 같은 주변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출력을 올리기 위해 그만큼 많은 투자가 따라야 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또한, 이런 대대적인 개량사업은 점진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보니, 경의선이나 동해선을 따라 공사가 진척되더라도 공사가 전부 끝날 즈음이 되면 수십년이 흘러갈거고, 그 시점에서 느릿한 재래선이 하나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이것 조차도 개량의 시점이 아닌 말단부에서는 아주 늦게나 체감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빈약한 간선 철도망에 국제여객과 화물 트래픽이 걸리게 되면 가뜩이나 기능부전 상태의 철도가 더 상태가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경의선축을 이용했던 북한 관광객의 영상같은걸 보면 역 구내에 여러 열차가 정차해 있는 광경이 종종 보이는데, 이는 단선 운행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열차를 보내기 위해서 죄다 역에 잡아두기 때문입니다. 국제편이 얼마나 많은 트래픽을 초래할지는 미지수기는 하지만, 한중, 한러간의 여객 이동이나 물류 이동 규모를 생각하면, 현재 평양-베이징 간 주 3회 1왕복씩에 비할바는 확실히 아닐거라 봅니다.
따라서, 차라리 다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게 된다면 과감하게 고속철도를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국제간 교통과 여객을 이쪽에 집약시켜서 기존설비 개량 부담은 좀 더 점진적이고 북한의 내정 개선 흐름에 따라서 이루어지도록 하는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처럼 기존선과 융합되는 구조로 건설하기는 매우 어렵겠지만, 적어도 기존역에 인접해 고속선 구내를 두거나, 적당한 장소에서 연결선을 통해 연계하거나 하는 식으로 향후의 개량에 맞춰서 망을 확장해 나가는게 불가능하지도 않으니 1차 고속선, 이후 기타 노선의 25kV 및 ATP적용과 같은 개량선화를 거쳐 직결운행이나 혼합운행을 꾀하는 것도 가능할겁니다. 즉, 노선상의 고속철도 접속역을 축으로 네트워크 개량과 개혁개방을 자연스럽게 확산을 시킬 수 있게 될겁니다.
기술적으로도 고속선을 여객과 화물이 병용하는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신간선 처럼 설계하중이 지나치게 낮거나, 프랑스의 파리동남선처럼 35퍼밀 구배를 때려박아놓으면 불가능하지만, 22톤 축중 기준에 25퍼밀 이하의 선형으로 계획하고, 역과 신호장 측에 화물 대피선같은 설비를 안배해 둔다면 여객열차 속도제한을 걸거나 해서 화물운행을 확보하는게 가능합니다. 이전에 베트남 등지에 제안이 된 바 있던 250km/h급 표준궤 객화공용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시킨 모델을 적용한다면 충분할겁니다.
다만, 여기서 여지가 남는건 북한이 자체적으로 고속철도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회의론이 나올겁니다. 분명히 경험도 일천하고 현업의 황폐화가 제법 심할거라 생각되는데, 차라리 이렇게 하면서 한국이 북한에 대해 BTO스킴 형태로 적용을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즉, 한국측의 자본으로 선투자를 해서, 건설은 합동으로 실시하고, 이후 완공후에는 한국이 국제선 및 국내선 여객차량을 공급하고, 유지보수와 운영을 수행하여, 그 수익으로 투자금을 일정기간동안 회수하는 방식의 사업구도를 잡는 겁니다. 필요에 따라 구간인증을 취득한 북한측 열차의 운행을 개방할 수 있되, 운행통제는 합동 관제에서 실시하는 식으로 취하면 가능할거라 봅니다. 어차피 전력과 신호시스템이 다른지라 운행가능한 차량이 제한되고, 북측 기존선 연계를 위해서는 한동안 디젤차량이나 다니긴 해야할겁니다만서도.
이 안은 사실 과거 중국측 사업자가 북한측과 MOU를 체결했다는 경의고속선 사업과 엇비슷한 모양새기는 합니다. 다만, 자본 회수 자체만 보기 보다는, 수익의 일부를 북한 철도성 측에 기존선 근대화 재원으로 배분하고, 운영 단계에서 역이나 유지보수, 관제 등에 합동 근무체제를 확보해서 운영방식과 기술 전파를 꾀하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충분히 할만한 투자가 될거라고 봅니다. 또한 BTO로 회수기간을 충분히 잡아넣어주고, 국제선 운임을 자본회수가 가능한 적정수준으로 관리하면서 북한 국내선에 대해서도 현지물가를 감안한 요금설정을 해준다면 아예 기존선 투자에 돈을 꼴아박는거 보다는 확실히 투자회수를 기대할 수 있을겁니다. 최악의 경우라도 여객과 화물 트래픽을 비교적 프리하게 넣을 수 있으니 경제적 편익은 확실히 얻을 수 있을거고 말입니다.
또한, 고속철도를 계획이 잘만 된다면 남북간의 정부간 협력구도도 극적으로 확대된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고속철도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기후와 지형조건이라는 자연조건 외에, 경제상황, 인구분포, 기존 철도나 도로의 현황, 여객과 화물의 이동 경로와 교통량, 각급 학교나 행정기관, 공장 등과 같은 주요 시설물, 여기에 민감한 정보인 토지권리 관계나 도시계획, 그리고 보안이나 군사관련 규제 등등까지 전부 망라해야만 합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노선, 시설기준, 차량 계획, 열차 운용 등등 세부적인 건설과 운영 방안이 나오게 됩니다. 또한, 접근도로나 도시계획, 전력과 수도, 환경대책 같은 기반시설이 없거나 불충분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부 다뤄야만 하는지라 고속철도는 단순히 철도만의 계획이 아닌, 경제개발과 국토개발 계획에까지 맞물리는 종합 사업이 된다 할겁니다. 이게 정말 가능해진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전기가 되는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액션 플랜적으로는, 경의선 축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겁니다. 물동량이 가장 많을걸로 예상되는 축이기도 한데다, 건설의 애로가 크지 않을만한 루트고 또한 가장 파급효과도 클 거라 봅니다. 또한, 남북협력과 경제발전의 가시적 성과를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장 좋은 사업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쪽은 전선 별도선로를 전제로, 필요에 따라서 구내를 구분해 운영할 것을 전제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흡사 대만이나 일본에서 쓰는신간선 스타일의 인프라가 될건데, 대신 필요한 구간에 두세곳 정도 연결선이 따라붙고 여객과 화물이 같이 운행하는 좀 혼합형 모델이 되긴 할겁니다.
동해선 및 평원선 축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감이 있는데, 일단 노선이 워낙 장대한데다, 지형조건도 산악지대가 많고 좁은 해안 루트를 통과해야 하는 곳이 많아서 쉽지 않을거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애로개소를 우선적으로 건설하고 이후 이 개량구간을 꿰어서 고속철도가 성립되는, 또한 기존 선로는 기존 선로대로 구간열차나 저속 화물열차를 위해 존속되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알프트랜싯 정비같은 형태의 인프라가 되어야 할겁니다. 이른바 "양덕 대기"나 "여해진 대기" 같은 용어가 나오는 병목구간을 대체하는 장대터널을 낀 구간을 교류 25kV사용 구간으로 정비해서, 해당 구간에서는 기관차 견인을 전제로 셔틀 수송을 하거나, 다전원 전동차 내지 기관차나 디젤 기관차에 의한 직결운행을 실시하다가, 이후 네트워크의 완성에 따라서 서서히 고속철도로 기능전환을 해나가는 방식이 가능할겁니다.
일단 양 축선의 정비와 평원선의 정비가 일단락 된 이후에는 직결선구나 수송애로가 심한 노선을 축으로 25kV 전력과 ATP 기반 신호, 그리고 개량 인프라를 적용하는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재래식 구간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접근을 하면 될거라 봅니다. 또한 남한 접경지역에서는 애초에 전철화 방식을 25kV로 바꾸고, 러시아 접경 구간, 나진~두만강 구간에서는 아예 표준궤는 고속선 기반으로 다니게 하고, 기존선은 광궤 전용으로 사용하는 식이 되면 될거라 봅니다.
물론 남북관계는 정치와 외교에 번농당하기 일쑤고, 그래서 장기적 관계가 제대로 수립된 적이 없는 흡사 난기류와 같은 관계라서 고속철도 사업이 실제 진행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이걸 한다고 모든 철도 연결 사업을 미뤄두는 것도 능사는 아닌지라 일단 빠르게 적은 투자로 할 수 있는 기존선의 보수개량 사업 자체는 고속철 계획과 별도로 이루어지기는 해야 할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격류를 넘어서면 새로운 지평에 이를 수 있을거란 기대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