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이래저래 다수의 계획선이나 미완공 노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방 직후에 의욕에 차서 일제때 공출로 폐지된 노선을 전부 살려내겠다고 선언했다 현실에 부딛혀 중단된 사례부터 시작해서, 이후 여러 노선들이 계획수립이나 착공까지 갔다가 그대로 흐지부지 되어버린 케이스가 많습니다. 단양선 또는 단양탄광선이라 불리는 노선은 해방이후 이렇게 포기된 계획선의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좀 파보는 재미가 있는 노선이라 하겠습니다.
단양탄광선은 일제당시에 단양석탄공업이 44년에 면허를 받아 건설에 착수했던 전용선이었는데, 이후 결전태세 확립을 위한 물자, 노동력 통제가 강고해지면서 결국 흐지부지된 채 중단된 762mm 협궤 노선입니다. 딱히 가치가 있는 간선도 아니고, 노선도 워낙 오지에 있는 터라 그대로 묻혔을만한 노선인데, 분단 상황과 전후의 석탄품귀 상황이 겹치면서 갑자기 이 노선에 관심이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1948년에 일제때 건설분을 기반으로 하여 사평리 까지의 노선을 건설하기로 계획합니다.
이 계획노선의 선형 자체는 그동안 모호했고, 지적도에 남은 철도용지 구분만으로는 좀 위치가 해괴한 편이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마침 그 선형을 그려놓은 지도가 나왔습니다. 위의 지도는 당시 건설계획선 지도 중 단양탄광선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일단은 계획에서도 그냥 762mm 협궤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다루고 있고, 선로 규격도 25퍼밀에 R=100 곡선, 터널 2개소와 교량 3개소 정도를 적시하여 선형은 사실상 일제때 계획선에서 크게 바뀌진 않은 걸로 보입니다. 재미있는건 지적도 상의 흔적이나 위 그림의 루프 선형을 감안하면 지금의 성신양회 공장 출입용의 지하차도가 초기에는 협궤철도용으로 만든 지하도였던게 아닌가 추정이 됩니다만, 그대로는 사실 쓰기 어려웠을거고 이후 수차례의 공사로 시설물 자체가 워낙 많이 바뀌어서 그 구조물이 남아있진 않은 듯 합니다.
당시의 단양탄광의 출탄량은 일일 100톤 내외로, 이 노선 건설로 300톤 정도까지 확장이 가능할 거로 봤고, 반대로 노선 연장이 10km를 조금 넘는데다 그냥 산골오지에나 깔리는 노선이다 보니 여객이나 다른 화물운송면에서는 별 영양가가 없을걸로 내다봤습니다. 그래도 석탄 자체가 워낙 급하던 시절이라서 어쨌던 부족한 예산을 배정하고 미국의 원조를 받아서 착수를 하기로 했던 모양이고, 건설업자에 하청도 나가서 공사구가 1949년경엔 설치되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대로 갔다면 아마 해방직후에 남한 관할로 넘어왔던 토해선과 조선철도 경동선 출신의 수인선, 수려선과 함께 제3의 협궤선이 남았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1950년 6월 25일에 발생한 한 사건 이후로 이 단양탄광선은 아예 언급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비슷하게 1949년에 최종적으로 GHQ의 협력으로 착수가 결정되었던 중앙선 직류전철화도 날아가 버리고는 기록 자체가 사라지는데, 이 쪽도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이후 60년대까지 건설구상에 남아서 사평선 등의 이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단양탄전 자체가 그리 채산성이 좋은 탄광이 아니었고, 태백선 연선의 탄광에 우선순위가 몰려있었기 때문에 이후 별달리 빛을 못보고 사라지게 됩니다. 재미있는건 과거 항공사진에서는 구 교각과 엇갈리게 새로 교각까지 건설이 되었던 모양인데, 적어도 50년대까진 미련이 꽤 남아있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만약 살아남았다면 주변에 도담삼봉이나 고수동굴 등이 있어 관광노선으로서는 꽤나 그럴싸했기에 8, 90년대에 폐광에도 불구하고 나름 존속가능성은 있었을 노선이기도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