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철화 계획이 차곡차곡 진행중이고, 장기적으로 80%를 전철화 하겠다는 정부 계획까지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20%가 비전화 구간으로 향후 남게 됩니다. 교외선이야 뭐 그렇다 치지만, 정선선이나 진해선 같은 맹장선이나, 경북선 같은 노선은 전철화의 가능성이 한량없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사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동해선이나 보성-임성리선도 전철화 가망이 안보이는 모양이고.
이런데는 RDC와 디젤기관차 견인 열차가 투입되어야 하지만, 현재로서 RDC는 숫자가 그리 여유있는 편이 아닌데다 2019년 까지는 수명이 끝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종종 차가 넉아웃 되어서 디젤기관차가 견인해 다니는 꼴도 자주 보이고. 디젤기관차 견인은 아직 수명이 많이 남아는 있지만, 문제는 수명이 끝난 차들이 나오는 와중에 화물 견인이나 비상충당 용도로 전국에 일정 정수는 늘 운행중이어야 해서, 의외로 총 정수가 풍족하다고 하긴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EMU차량만 쳐다보는 사이에 이 "롱테일" 부분은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 판이 되어가고 있달까.
비전화 구간 투입차량 문제는 2018년은 가야 현실화되는데다 일단 무궁화 객차를 가지고 어느정도 시간벌이를 할 여지는 있는 상황이기는 한데, 일단 문제가 있는 걸 인지해서 철도기관 합동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언급되는 대안이 개조 다중 기관차(Refurbished Multi-engine Locomotive)이라는 물건입니다.
이 기관차는 아마도 미국에서 꽤 유행을 탔던 젠셋(Genset) 기관차를 상당히 참고한 걸로 보입니다. 젠셋이라는 단어는 발전기 셋트(Generator Sets)를 이야기하는 건데, 노후화된 기관차의 엔진실을 싹 들어낸 다음 여기에 중소형 디젤엔진과 발전기를 탑재한 동력 모듈을 3~4개를 올려서 복수의 기관으로부터 전력을 생산해 동력으로 쓰는 방식입니다. 구식 기관차들은 일단 엔진 자체가 구형인데다, 본선기라면 3~4천 마력급의 터보차저 엔진에 직접 발전기를 물리고 조속기(Governor)를 통해 RPM을 제어하는 꽤 단무지스러운 방식을 쓰기 때문에 배기가스가 독하고 효율이 좋다기는 좀 어려운데다, 몇 량을 견인하건 간에 엔진출력은 일단 다 써야 하고, 단일 엔진의 신뢰성에 의존해야 하며, 조속기로 직접 엔진을 제어하다 보니 효율면에서 좀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젠셋 기관차들은 이런 구식 기관차와 달리 복수 엔진을 쓰다보니 상당한 융통성이 생깁니다. 즉, 단기회송이나 소량의 견인을 할때엔 엔진을 1개만 돌려 쓰는게 가능하고, 대량 견인시에는 전체 엔진을 끌어다 쓰는 식의 운용이 가능합니다. 또한, 중소형 엔진이다 보니 공급선이 다양하고, 덕분에 좋은 사양의 엔진을 쓸 수 있으며 또 필요에 따라 돌리는 만큼 배기 가스 문제나 점검주기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나온다고 합니다. 거기다 엔진 고장이 생긴 경우엔 다른 엔진들을 써서 가는게 가능한지라 본선에서 퍼지더라도 노선이 두절되는 위험이 줄어들기까지 합니다. 과거에는 제어기술이나 전력기술이 후달려서 이런 시스템이 불가능했지만, 인버터 기술 덕에 이런 오묘한 장난질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제시된 개조 다중기관차는, 이런 젠셋 개념을 받아들여서 수명이 끝난 특대형 디젤기관차 중에서 언더프레임이 멀쩡한 차량 위주로 골라 신형의 유도전동기를 탑재한 3축 대차를 탑재하고, 엔진실을 개수해서 800hp 엔진 4대와 인버터를 탑재, 3,200hp의 기관차로 개조한다고 합니다. 출력이 살짝 오르기는 하지만, 엔진이 여러개인 만큼 여분의 출력이 잡혀야 해서 저렇게 잡은 걸로 생각됩니다. 각각의 엔진은 전차에서 쓰이는 파워팩 개념을 응용해서, 엔진과 냉각장치, 발전기 및 컨버터가 일체화된 모듈 구조로 만들어서 고장이나 검수시엔 즉각 엔진을 들어올려 교체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즉, 일정한 시설을 갖춘 작업장에서는 그야말로 수 시간 내에 엔진수리 후 재투입이 되는 높은 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다중엔진과 모듈을 쓴 덕에 좀 재미있는 운용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른바 "하이브리드"라 불리는, 배터리에 출력을 저장했다가 활용하도록 하는 것도 모듈의 교체와 일부 개조로 가능해 질걸로 보입니다. 젠셋 기술 자체가 하이브리드 기관차를 개발한 부산물이라 그렇지만, 엔진 모듈 대신에 배터리 스택 모듈을 올리고 이걸 쓸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량하면 출력은 1/n이 줄지만 대신 실제 운행시에는 구배나 평탄선의 탄력주행, 제동시에 발생한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때 당겨쓰는 식으로 더 "절약하는" 운행이 가능해집니다. 실제 일본에서도 입환용 하이브리드 기관차를 도입해 이 실험을 하고 있고, 향후 본선기에도 1/2이하의 출력으로 운행하는 기관차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오는 판이기도 합니다. 또한, 모듈 단위로 운용할 수 있어서 회송시의 연료절감도 되고, 또 여객열차 견인시에는 1개 모듈을 객차전력 공급용으로 전환해 쓰는 식의 운용도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기존 특대형 개조라는 점에서 좀 우려가 많을 듯 한데, 사실 60년대 까지 미국제 기관차의 언더프레임은 그야말로 통으로 주물을 부어 만든 이른바 "주강제" 언더프레임이 많습니다. 특대형은 용접제일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일단 주강제 언더프레임은 50년이 지나도 겉에 녹슨거 외엔 그야말로 흠집하나 안난 그런 수준의 물건들이 많다고 합니다. 뭐 2차대전 전후한 시대의 철강기술은 지금처럼 기교를 부리는게 아닌, 그야말로 우직 그자체라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야말로 내구도의 수준이 다른 물건이랄까. 그래서 미국엔 퇴역 기관차를 개조해 2선급 철도에 공급하는 비즈니스가 굉장히 발달해 있기도 합니다. 정밀진단을 거쳐서 차량을 선발해 쓰는데다 대차까지 갈아치우기 때문에 최소 10년 이상, 더 오래 쓰면 20~30년도 바라볼 수 있다는 모양입니다. 최근에 이란이나 파키스탄에 수출하면서 대개조를 한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좀 자신있게 질러보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일단 연구개발과 함께 실제 차량의 투입은 2019년을 언급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개조 조달이고, 800마력 수준의 엔진은 트레일러 트랙터 같은데에도 올라가는 급의 상용엔진이다 보니 조달선의 문제도 별로 없어서, 아마도 젠셋 기술 도입은 더 빨리 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하이브리드 운용이나 객차전원같은 기술, 그리고 정비같은 주변적인 요소들 개발을 반영하고, 또 전체적인 검증기간 때문에 시간여유를 두는 걸로 보입니다. 도입 량수는 2019년부터 4년간 50량을 언급하고 있는데, 다만 2018년에는 초도분 5량을 일단 생산, 검증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계획이 하루아침에 나왔을리가 있습니다. 4월 1일에 생산된 계획이니 당연한 이야기랄까. 이걸 이렇게 쓰느라 새벽부터 깨어 이러고 있으니 기분이 High해 진달까 그렇습니다. 넵. 마누절 뻘글.
P.S.:
뻘글에 진지빠는 이야기를 좀 더하자면, 사실 디젤기관차 조달보다는 오히려 무궁화 객차의 부족이 비전화구간의 아킬레스 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의 녹피차(녹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구식 디자인의 객차)같은 취급을 받는 무궁화긴 한데, 전국적으로 굴러다니는걸 빼는데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필 가망이 높고, 그래서 정작 비전화구간에 집약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그런 판이 벌어지기 좋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