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전철은 여러번 강조를 했었지만, 1974년 수도권전철 개통 이후 처음으로 비 수도권 광역전철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에 지하철이나 경전철 같은 도시철도가 보급되는 와중에서도 광역전철은 수도권 노선의 확장이나 파생으로서만 국한되어 왔는데, 이제서야 이 주박이 깨진 셈입니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자체는 구상 정도로 70년대부터 있었던 걸로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사업화의 가닥이 나온건 1993년 경으로 생각됩니다. 옆에 인용한 그림이 당시에 언급된 사회간접자본 확충계획의 개념도인데, 당시에는 꿈처럼 여겨졌던 사업들 다수, 신공항이나 항만, 도로사업 등 거의 대부분의 굵직한 사업들이 현실화가 되었지만 유일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두 사업으로 남은게 이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입니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경위는 사실 도시권 교통 공급 그 자체보다는, 고속철도 사업의 파생사업에 가까웠던 걸로 보입니다. 당시 경부고속철도는 경주로 노선을 비틀어 지어지기는 하지만, 당초엔 서울-천안(현재의 천안아산)-대전-대구-부산 정도를 정차역으로 계획한 꽤나 터프한 계획이었고, 그러다보니 고속철도역이나 접속이 제공되지 못하는 도시들에 대해서 접속교통을 제공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그 차원에서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가 계획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자료에서 부전이 아니라 부산~울산의 형태로 묘사가 된 거고, 초기 보도에서도 거의 부산을 기점으로 하는 모양새가 확인이 됩니다. 다만, 저때의 계획은 계획이고 실제로 추진은 우여곡절이 워낙 많다 보니 참 보는 입장에서는 안구가 촉촉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인선 표준궤화 사업이 1971년 경에 다뤄졌다 아직까지 완공을 못본거에 비하면 좀 낫지만 역시 한국철도의 베이퍼웨어로서 워낙 악명이 높달까. |
실제 열차운행의 추세를 보더라도 동해남부선의 통근열차는 굉장히 유구한 역사를 가집니다. 1960년대에 대용객차 충당열차가 아닌 정규열차로 보이는 열차가 동래~부산간 아침시간대 1왕복이 설정되어 있는게 확인이 됩니다. 아마도 여객취급 자체보다는 60년대부터 무연탄 취급역으로 지정되어 있던 동래역까지 입환기가 다니는데 객차를 붙여다닌 정도, 그나마도 아침에만 겨우 다니는 거였을거라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마는, 여하간 꽤 일찍부터 단거리 여객취급이 활발했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이후에도 이런 근거리 열차는 계속 존재했는데, 아마 통근열차로서는 가장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은 동서통근열차도 바로 이 구간에 투입되던 통근열차였습니다. 80년대 처음 설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해운대 착발 새마을호열차와 더불어 양대 간판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그런 이유에서 전철 투입을 90년대부터 생각해 볼 수 있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이런걸 보면 꽤나 빨리 될 수 있음직 싶었던 사업인데 안된걸 보면 뭐랄까 묘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일단 철도청 시절의 계획에서 이후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로 나눠지면서 거기에 이관이 된 사업이 되었는데, 이 즈음에 이미 부전역에는 고상승강장을 미리 깔아두고 있었고, 울산쪽에도 복선화를 대비한 시공흔적이 여럿 있었습니다. 2006년 쯤에 부전~청량리간 밤 열차를 타고 가면서 그 공사광경을 보던 기억이 나는데, 거기서 10년이 더 걸릴줄은 아마 아무도 몰랐을겁니다. 그 이후에는 울산시의 광역분담금 납부거부로 불거진 사업중단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고속철 민간개방으로 비채산 노선 운영권 문제로 격론이 오가면서 전철운영을 입찰에 붙이기로 했다 실패하는 일이 벌어졌고, 올해에는 연말이 오기전인 10월에 개통을 예정했던 것이 최장기 파업으로 딜레이가 되는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이정도면 염소의 저주나 커넬 샌더스의 저주에 버금가는 징크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랄까.
어렵게 개통을 했지만 사실 우려되고 아쉬운 점이 몇 개 있습니다. 일단 배차간격 문제는 말잔치로 다룰게 아니라 일단 개통하고 나서 머릿수로 제대로 보여주면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겁니다. 수요기반의 한계도 있고, 1단계 개통구간이 좀 어중간한 일광까지다 보니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부산의 쟁쟁한 동네들과 해안관광지를 여럿 끼고 있으니 뭔가 보여줄 수 있을거라 기대는 됩니다. 사실 수요기반 자체는 수도권을 빼면 나름 강자 축에 드는게 부산이기도 하고.
다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라면 부산역까지의 직결운행이 안된다는 점입니다. 이게 소극적인게 부산1호선과 병행노선이 되는 점이나, 동해남부선 부전~부산진간이 단선인데다 유수의 화물역인 부산진역의 막대한 화물 트래픽, 그리고 자칫하면 가야선의 회송열차 트래픽까지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운전상의 난점이 커서 그런걸로 생각이 듭니다. 요즘 열차빈도가 거의 없는듯 하지만, 우암선은 확실히 평면교차를 해야만 하고 말입니다. 당장에 추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는 하고 또 대대적으로 이 구간을 정비하는 사업은 돈도 돈이고 향후 부전~마산선이나 경부선 일반열차의 계통변경, 그리고 이들 시설의 레이아웃까지 감안한 종합적인 복안이 필요해서 간단하게 할 일은 아닙니다만, 현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투자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는 뭔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좀 잠정적인 개업인 만큼 바로 결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관광영업에 맞는 특별열차를 하나 정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관광벨트 사업에서 동해남부선을 대상으로 한 열차를 검토했었던 흔적이 얼핏 보이는데, 이걸 좀 본격화 해서 전동차 기반의 전망실이나 개방감을 제공할 수 있는 열차를 하나 정도 개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동해남부선판 바다열차랄까. 선로가 그리 고규격이 아니고 또 막상 울산광역시 구간에는 관광스폿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ITX청춘처럼 준고속열차로 이 수요를 다 포괄하기는 어려우니, 아예 장거리 통근객은 향후 들어올 준고속 전동차나 전동급행, 아니면 ITX새마을 연장운행 같은걸로 해결을 보고, 관광열차를 한번 좀 시도해 봤으면 바램이랄까.
이외에, 차량에 여력이 있다면 부전~마산간의 선행 부분개업을 동해남부선의 연장개업 형태로 좀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경부선 각역이나 김해시 구간에서는 시설투자 없이는 열차를 세울수가 없지만, 대신 창원시 관내 각 역에는 이미 고상홈이 설치되어 있는 역들이 존재합니다. 창원시 각역에 정차하고, 이후 경부선 구간은 무정차로 운행하는 전동급행을 만들어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왕 지르는 김에 경부선 부산, 양산 구간에 전동차영업을 끼워넣어 보는 것도 해볼만한 거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잡론이 길었습니다마는 여하간에 동해선이 그 모든 징크스를 깨고 2016년을 단 2일 남기고 개통했다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기쁜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수요기반에 우려가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9회말 만루 홈런을 터뜨려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