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가 어제 날짜로 20년을 맞이했습니다. 겸사겸사 논란의 KTX-청룡 네이밍도 공개하고, 또 20주년 맞이로 이런저런 행사들을 여럿 병행하고 있어, 과거 1999년에 있었던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행사가 떠오르는 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땐 철도와 연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보니 실제 겪어보진 못했습니다만서도.
경부선과 호남선 두 노선만으로, 그나마도 경부고속선은 전구간 개통이 안되서 1단계로 금천구청~대전조차장, 옥천~신동 두 구획으로 나누어 기존선에 더부살이하는 형태로 운영을 시작했고, 호남선은 기존선을 전철화해서 겨우 운영개시를 맞추는 그런 어중간한 시작을 했던게 KTX의 시작이었습니다. GTX이상의 교통혁명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사실 개업 초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단 운임이 당시 새마을보다 한참 비쌌던 탓에 쉽게 탈 수 있는 열차가 아니었던게 가장 컸을겁니다. 청량리-부전 통일호 같은 경우 만원으로 이용이 가능했었고, 무궁화호라고 해도 이만원 남짓 이던 시절이었는데, KTX는 44,800원이라는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꽤 묵직한 금액이다 보니 흔히 탈만한 열차라고 할 수는 없었던 감이 있었습니다. 1인당 GNI기준으로 2004년이 16,200달러였는데, 2022년엔 35,990달러로 거의 2배쯤 차이가 나고, 기억으로 그 즈음의 대졸 초임 연봉이 3천만원을 넘으면 상당한 고임금 직장 대접이었지만 요즘은 가구 중위소득도 3천만원을 넘는 시대다 보니 이젠 엄청난 고급열차라는 이미지는 거의 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것 또한 세월의 효과라 할거고.
그리고 역방향 좌석이 있어서 멀미나고 불편하다라는 민원, 새마을호의 넓고 안락하던 의자가 아니라 비좁고 딱딱한데다 별로 제껴지지도 않는 의자, 식당차도 없고 카트도 부실해서 그야말로 불만은 속출하고, 이미 LCD화면이 슬슬 유행을 타는데도 구태의연한 CRT 차내 안내 모니터가 달려있다거나 등등 참 까이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할겁니다. 뭐, 혁명이라는 것은 가치관이 뒤바뀌는 과정이고, 결국 무언가 안좋아지는 요소들이 없을 수는 없었을건데 당시엔 그게 잘 이해받지 못한 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개통까지의 과정도 참 지난했던게, 93년에 코어 시스템 결정 이후 5년 후 개통을 공언하던 기억이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외환위기로 업체들이 여럿 넘어지면서 지연되고, 외국계 기업의 감리로 꽤나 호된 신고식을 치뤄서 부실공사 논란과 일부 재시공 구간이 생기는 등 이래저래 트러블이 많았고, 개통 일정도 계속 밀려서 결국 그렇게 밀린 끝에 2004년에 개통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또 운영주체를 놓고 한참 다툼이 있었고, 이건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관간 갈등의 기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 남서울역으로 건설되던 현 광명역 시종착으로 초기 계획이 있다가 접근교통 하나 없이 그냥 고속도로 연결만 겨우 시켜놓은 역에서 어떻게 열차를 타냐는 말이 나와서 부랴부랴 서울역과 용산역으로 그 기점이 올라오게 되기도 했었고.
개업 이후 20년이 지나면서 엄청나게 빠르지만 뭔가 이상했던 “최고급 열차”였던 KTX는 이젠 누구나 이용하고, 거의 전국을 누비는 열차가 되었습니다. 이젠 KTX없는 여행이나 생활을 생각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 않나도 싶습니다. 서울에서 대구나 광주를 가려면 이것저건 챙기고 출발해야 했고, 부산이나 목포쯤 되면 하루저녁 잘 생각으로 다녀오던게 2004년 이전의 상식이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냥 기분내키면 당일치기로 콧바람을 넣고 올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옛 영화의 주제가에 나오는 ‘삼등삼등 완행열차’로 일곱시간쯤을 걸려 산맥을 빙 돌아 넘어 가던 강릉은 이젠 통근도 해볼만한 곳이 되었고 말입니다.
KTX의 효과는 사실 이런 여객의 체감 변화 말고도, 재정과 기술에의 영향도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업착수 시점 시산금액이 6조원이었던 경부고속선 사업은 그 이전 시대에는 재정투입을 감당할 수 없어서 70년대 수립한 계획안에서 몇번이고 그 추진이 연기되어 왔던 사업이었습니다. 개통 시점에 이미 10조원 가까운 재정이 꼴아박혔고, 최종적으로 서울시내구간을 제외한 전구간 개통 시점에서 총 사업비가 20조원을 돌파하는 그야말로 사업관리가 완전히 망해버린 그런 사업이 되었습니다. 또, 이런 사업비 회수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수요예측을 부풀려서, 지금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부고속선 단독으로 약 30만명/일의 수송수요를 기반으로 상환계획을 작성해서 지금까지 어마무시한 부채상환 부담이 남아있는, 그래서 뭔가 수작질은 하지만 누구도 명확한 해결을 할 능력이나 대안은 안나오는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뭐, 실질적으로 상하분리 자체가 이 막대한 부채 처리 대책으로 이루어진것에 가깝기도 하고, 그덕에 지리한 논쟁과 다툼이 늘 따라다니는게 이 조직과 재무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할겁니다. 사실 메커니즘 상 국민이 운임의 형태로 부담할 것을 어떻게든 미루고 수믹고 하다 보니 본질을 못 건드는거라 할겁니다마는.
또한 기술적으로도 당시엔 국내 기술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사업 취급이어서 결국 차량을 축으로 한 코어 시스템을 해외에서 도입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프랑스, 독일, 일본 3개국을 상대로 장대한 낚시… 아니 장대한 입찰경쟁을 통해 프랑스 TGV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 덕에 두고두고 온갖 무용담과 프로파간다가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 와중에 이미 그 시점에서 이거 좀 어렵겠는데 취급이던 자기부상열차 떡밥이 꽤 진지하게 나와서 철차륜식 하느니 자기부상열차 상용화를 기다려야 한다는 급진기술론도 꽤나 나오기도 했었고 말입니다. 어느 시스템이 좋냐를 두고 제한적인 자료와 정보만으로 논쟁이 오가는 와중은 지금에 와서 본다면 이래저래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비슷한 그런 느낌이었다 할겁니다.
일단 재정적으로는 사실 좀 부작용이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KTX 하나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같은 타당성 검토 과정이 대거 도입되고 또 그 정밀도가 계속 올라가게 되었고, 또 이런 대규모 사업을 벌어들이는 수익금으로 전액 회수할 수 있다는 좀 무리한 희망사항이 박살나면서 이후 건설되는 철도사업은 재정 투입을 전제로 이루어지게 된 감이 있습니다. 뭐 수십조 짜리 메가 프로젝트를 한번 해봤기 때문에, 80년대까지 좀 찔끔찔끔 진행되던 건설 사업들을 꽤나 과감하게 지르고 그걸 관리할 수 있게 된 감도 있습니다. 1945년 이후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철도건설 사업은 계획은 거창하게 내걸지만, 실제로 완수되는 사업은 의외로 적어서 포기되는 사업이 제법 많았고, 그나마도 쪼들려서 일정이 계속 밀리는게 일상이던 그런 환경이었고, 이건 사실 지금도 꽤 남아있지만, 이젠 사업 착공 이후에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또 지연 되는 것도 결국 기술적 이슈로 귀결되는 정도여서 그 환경이 많이 변한게 보인다 할겁니다.
또 기술적인 면에서는 정말로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던게 흔하던 이 바닥이, 어느정도 기술,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을 써 볼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왔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직도입 차량이 국내 넉다운 조립 생산분보다 더 좋네 마네 하던게 개통 당시의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국내 동등품 개발 수준을 넘어서 아예 새로운 구조의 EMU를 도입하는데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또, 차량기술 외에도 시설, 전기, 신호, 통신, 건축, 그리고 안전과 영업 일선의 시스템도 세계 주요국가와 비교했을 때 그리 손색이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도 꼽을만 할겁니다. 또, 고속선에 국한되던 기술들이 이젠 일반선에도 당연하게 적용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나서, 이젠 사업비 조달방식 외엔 고속철도와 일반철도의 구분이 모호하고, 어떤 경우엔 일반철도의 시스템이 기존 고속철의 것을 압도하는 것도 있는 그런 느낌도 있습니다.
다음 10년, 그리고 다음 20년의 시간 또한 지금까지의 변화 만큼이나 많은 것이 바뀌게 될겁니다. 철도와 KTX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것 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의 양태,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국가나 사회 세계도 꽤나 바뀌게 될겁니다. 또 그 와중에는 상당히 위협적이고 부정적인 변화들도 제법 될겁니다. 사실 KTX와 철도 주변에는 이 안온함을 한방에 박살낼만한 숨어있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위협들이 여럿 도사리고 있어 레일 위가 아닌 칼날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그리 어색한 말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KTX가 10년, 20년 뒤에도 존재함을 그리 의심하지 않는 것은, 그게 모두의 의지, 지혜에 의해 유지되고 또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P.S.:그런데 청룡은 좀 운수업에서 이미지가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어린이대공원의 청룡열차야 그래도 빠른 이미지라도 있긴 했지만, 90년대의 막장 폭주족들이 하고 다니던 청룡쇼바 같은 걸 연상시킬수 있어서 좀 그렇지 않나... 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음도 좀 용어가 겹쳐서 애매했다면, 이쪽은 슬랭이랑 닿는게 있고, 사실 용 이미지가 요즘 그렇게까지 긍정적인 것도 아니라 애매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