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는 뭐랄까... 아무리 시스템을 정비하고, 편집증적일 정도로 관리체계를 쪼아놓는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특성값을 완전히 잡기는 굉장히 어렵고, 그게 또 시스템을 뚫고 일을 터뜨리는 확률은 언제나 남아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뭐랄까, 언어표현으로만 보면 정말 어마무시한 사고고 또 실제로도 재산피해가 좀 나기는 하지만, 정작 주요차량 폐차나 중상자 이상의 피해가 나지 않은건 그나마 수많은 누적된 안전조치가 그나마 방어를 해서인 셈이고 말입니다.
일단, 이번 사고의 핵심은 유도신호 하에서의 운전으로 지목이 되는 느낌입니다. 유도신호라는건 일종의 특수신호로, 통상적으로 1개의 열차만 들어갈 수 있는 역의 착발선로에 2대 이상의 열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신호입니다. 현시방법 역시 정지신호가 현시된 상태에서, 별도의 부속신호기 현시를 확인하고 20km/h 전후의 속도로 소정의 정지위치까지 지장 여부를 확인하면서 진입하는 방식으로, ATS나 ATP의 방호조건을 넘어서 사실상 기관사의 주의에 의존해야하는 취약한 운전방법 중 하나입니다.
보통의 유도신호는 2개의 열차를 병합하고자 할때 구내 입환을 실시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그에 따른 취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과거 PP동차, 그리고 지금의 KTX-산천이나 ITX-마음같은 열차가 동대구나 익산에서 이 유도신호에 의해서 연결 작업을 실시하고 있고, 하루에도 수십건이 이루어지는 운전방식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걸 유도신호라는 개념이 없이 실시한다면, 역측의 인원이 장내신호 밖에 있는 차량까지 도보로 이동해서 첨승해 유도를 실시하거나, 아니면 일단 다른 부본선에 받아둔 열차에 첨승해서 인상선을 거쳐 선로를 바꿔 연결을 하는 꽤 번잡한 구내운전을 해야할거라, 시간을 절약하고 구내운전이나 수송원 첨승이라는 사고 취약성을 최소화하며, 또 역 선로의 사용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필수적인 그런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해외의 모든 철도에도 이런 유도신호 개념은 용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들 가지고 있는거고 말입니다.
다만, 서울역의 경우는 유도신호의 본래 취지에서 약간 엇나간, 좋게 말하면 유용, 나쁘게 말하면 변칙을 한 셈인데... 20량 이상, 거의 30량 정도를 유치 가능한 선로에 2대의 열차를 받아서, 해당 선로에서 순차 출발하도록 조치를 한거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사고가 난 5번선의 경우는 1960년대에는 1개 선로 중간에 분기기를 넣어 일부러 2개로 나누어 취급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두었을 만큼, 가장 핵심이 되는 출발선로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이 분기기들은 철거가 되고, 배선구조도 수없이 바뀌면서 운용 방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역 구조상 이 선로의 의존도는 특히나 높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런 변칙이 쓰여온 셈입니다. 착발 승강장 숫자가 경인선 승강장을 포함해 16개, 여기에 화물 등의 착발에 쓸 수 있는 선로까지 넣으면 착발선로는 거의 19개가 되지만, 그럼에도 밀려드는 열차를 처리하기 위해서 그정도 변칙은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 할겁니다.
또, 이외에 유도신호는 합류역에서 일종의 편의적인 수단으로 쓰이는게 있는데, 노선이 합류하는 구간에서 열차의 과주여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거나, 또 동시착발을 취급해야 하는 경우에 안쪽에서 합류하는 선로측에 유도신호를 설치해서 동시착발 제한을 피해가는 수단으로 쓰는 예가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구로역 완행 상선, 그러니까 1, 2번 승강장의 합류부인데 여기서 2번선로로 들어오는 경인선 완행열차가 일단 한번 정차했다가 느린 속도로 구내에 진입하는게 이 이유 때문입니다. 이건 굉장히 리스키해 보이고, 실제로 어느정도 취약성은 있지만 이것 덕분에 구로이북 1호선의 배차가 어그러지는 걸 최소화할 수 있어서 원래 유도신호의 취지에서 꽤나 일탈해 있지만 어쩔수없이 이루어지는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역사적으로 보면 2차대전 이전 일본에서 아사쿠사선의 지선으로 지하철을 연장하려고 할때 궁여지책으로 배차를 최대한 쪼아넣으면서 연계운행을 시키려 할때 이 방식을 진지하게 검토했다가 건설계획이 엎어져서 흐지부지되었다더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전동차 쪽에서는 꽤나 뿌리가 깊은 편법 중 하나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 유도신호의 좀 "엇나간" 용법이 이래저래 말은 있을 수 있지만 과밀 운행과 시설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어쩔수 없이" 쓰이는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마 PP동차 시절부터 복합열차의 연결작업이나, 견인기의 연결을 위해서 서울역의 경우는 최소 20년 이상 거의 상시적으로 사용해 왔을건데, 이걸 이유로 사고가 난건 아마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고가 상당히 극적인 아웃라이어 케이스인가 생각도 되고 말입니다. 심신상실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일어나기 힘든 경우가 아닌가 싶달까.
장래에 이런 케이스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저런 "엇나간" 용법을 체계화하는 방향을 찾는게 필요할거라 봅니다. 사실 1개 선로에 여러대의 열차를 스태킹 하는 것 자체는 해외에서도 종종 보이는 경우고, 이거 없이 서울역의 착발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거라, 안전장치를 보강하는 방법을 찾아보는게 좋을거라 봅니다. 우선 떠오르는건, 선로의 궤도회로를 나누거나, 차축계수기를 추가해서 한 선로의 착발위치를 A, B 정도로 분할하고, 각 분할위치의 종단에 ATP 지상자를 두어서 정지위치를 무정차로 돌파할 경우 비상정지하도록 하는 조치를 더하면 어떨까 생각이 됩니다. 연동장치가 굉장히 복잡해지는 문제는 따라오지만, 기능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이 일단 되고, 또 복합열차 연결 동작에서도 일단 정차 후 재기동이라는 통과조건을 추가하면 뭐 실용적으로도 큰 무리는 없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합류나 착발선에서 과주여유 문제로 유도신호를 쓰는 곳들의 경우는, 탈선분기기와 비슷하되 강제로 차를 제동시킬 수 있는 설비를 고안해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이 됩니다. 조차장 같은데서 쓰는 카 리타더나 다우티 리타더 같은 부류는 좀 곤란하긴 할거같고, 아예 가동식 카캣쳐 같은 것도 시인성이나 고장시 조치 문제가 있을거라 사실 굉장히 조심스럽기는 한데, 한방에 대형 사고 가능성이 있는 곳들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생각해볼 가치는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번 사고는 참 어이가 없이 안전이 돌파당한 사고라서 이래저래 뒤숭숭한 분위기같긴 하지만, 어쨌던 사고를 바탕으로 더 나은 철도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찾아갈 거라 기대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