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시간대의 철도운임을 올려치자는 이야기 자체는 사실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는 아이디어 중 하나입니다. 도시철도 수준에서는 미주에 굉장히 흔하게 보급되어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고, 철도 일반적으로 적용하자는 이야기는 일본에서도 사철 쪽에서 도입을 주장하는 이야기가 80년대 한참 통근지옥이 활성화되었을 때 업계쪽에서 나온 바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 시책이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넵. 영국입니다.
과거 민영화 1기때 요금제도가 워낙에 악질적이어서 티켓을 수십종류 만들고 정상운임을 혼동시키며 운임 규제를 회피하는 행태를 반복하다가 레일트랙의 목이 따인 뒤에 제도개정을 통해서 티켓 시스템을 규정된 몇 가지로 제한하게 되었던 역사가 영국에는 있습니다. 그렇게 개정하면서 등장한 개념이 사전예약 할인 티켓인 어드밴스(advance)와, 두 종류의 통상승차권인 오프 피크(off-peak) 및 애니타임(anytime), 그리고 정기권(seasonal)이라는 체계가 도입되면서 일종의 4단계 운임 체계가 성립이 됩니다. 이 체계 이전에는 정말 악질적인 상술이 판을 쳤고, 사실 지금도 규제운임 적용과 적용외를 두고서 장난치는 티켓팅이 꽤 기승을 부립니다만, 이건 별론으로 하고.
이중에서 애니타임 티켓은 말 그대로 "아무때나" 탈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 아무때나 탈 수 있다는 이유로 가장 센 임율을 적용받습니다. 즉, 통근시간대 및 기타 바쁜 시간대의 승차가 가능한 대신(off-peak는 불가능) 그만큼 비싼 요금을 물리는 것으로, 외형적으로는 평시할인 개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통근할증 제도에 가깝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딱 이런 구조의 운임체계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한다 하겠습니다. 베이스 임율을 올리는 건 철도회사만 욕먹는게 아니라 맨날 이걸 쥐고 잘난척하던 물가관리담당자들, 즉 기재부가 욕을 먹으니 이런 꼼수를 도입해 보겠다는 발상이랄까.
그런데 이 제도는 우리나라와 같은 체계 하에서는 굉장히 역진성을 가지게 됩니다. 즉, 회사가 빵빵해서 장거리 통근객에 대한 요금이나 운임을 보전해 주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회사도 존재합니다. 주로 전자는 대기업들이나 공공기관들, 사실확인은 필요하지만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적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후자는 대개 중소기업이나 개인고용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보전받는 사람들은 통근시간대 할증에 대해서 데미지가 크질 않고, 대개 소득수준이 양호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피해도 한정적인데, 보전 받지 못하는 2부노동시장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빌어먹을 정책 덕에 안그래도 피곤한 장거리 통근에 돈까지 더 뜯기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 외에도 현실적으로도 문제인게, 이미 신용승차 제도 자체가 파탄지경에, 통근정기권이 대량으로 팔리는 상황이 혼잡의 근본 원인이라는 상황을 인지 못하고 저런 엉터리 정책을 증수책으로 꺼내왔다는 점에서도 좀 답이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인건비 후리겠다고 개찰구도 다 없애고 역 검표도 아작을 내 놓은 상황에서는 할증정책을 걸더라도 이걸 제대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시피 합니다. 여기에 정기권 제도 자체가 열차의 종별만 규정할 뿐 특정한 열차를 지정하지 않는 상태인데, 저렇게 좌석지정 운임을 올려놓는다 해도 정기권으로 타는 다수의 입석객을 막아낼 방법은 없다시피 합니다. 자유석은 열차 지정이지만 1시간 내외 열차에 대해서 특례인정이 있어서 저 피크타임 할증을 회피하는 용도로 잘 쓰이게 될거고 말입니다. 강제할 수도 없고, 제도적 헛점이 잔뜩 현존하는 상황에서 저런 정책은 호구만 등쳐먹겠다는 정책이라 할겁니다.
뭐, 좀 더 악의적으로 보자면 세종시 통근에 치인 기재부 나으리들이, 잡것들을 KTX에서 쫒아내겠다고 내놓은 악질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기까지도 합니다. 어차피 자기들은 임금피크제도 안당하고 철밥통을 두들기며 높은 급여까지 챙겨가시니 저렇게 운임 두들겨 맞아도 버틸만 하다 이런 발상으로 덤비는게 아닌가. 일종의 KTX 젠트리피케이션 정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이게 좀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요즘 정부의 시책이란게 다 이런 의심을 키워주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