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호들갑스럽게 다루는 감은 있지만, 전철화가 진척되면서 새로 부각되는게 이 디젤기관차의 보유량 문제입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철도는 복선전철화를 소요할 만큼의 교통량을 집약하지 않으면 아주 특수한 철도만이 채산을 맞출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50회 정도의 열차운행횟수가 여객 내지는 혼합교통 노선의 타당성이 나오는 숫자로 언급을 하는데, 이 숫자를 생각하면 사실상 범용철도로서 신규사업은 복선전철이어야 유지가 된단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지역균형이니 뭐니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복선전철이 간선의 스탠다드로 가고 있는 감이 있고 말입니다.
문제는 전기철도라는 시스템 자체의 취약성입니다. 지금의 전시 전철의 취약성은 잘 알려진 사항이고, 그래서 2차대전 당시 일본 군부가 병참 수송 차원에서 탄환열차 계획을 밀어붙일때도 정작 기관차를 증기방식으로 갔던 전례가 있기도 합니다. 재해시 변전소나 전차선은 상당히 취약해서, 지난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도 시설의 손상 외에 전력계통의 손상으로 인한 장기운휴가 속출했던 바 있습니다. 뭐 북한의 경우도 자급경제를 주장하며 석탄과 전기(무연탄 및 수력발전)로 철도망을 굴리다가 전력부족이 수송력 부족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겪어서 경제가 막장으로 가버린 경우도 있고 말입니다.
뭐 거기까지 안가도 수송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디젤 물량은 존재하기는 합니다. 야간 시간대에 전력설비 점검을 위해서 전차선을 쓸 수 없는 시간대에도 차는 다녀야 하고, 화물의 경우도 전기기관차 외에 디젤기관차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여기에 수송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화물열차나 일부 여객열차에 디젤차량을 투입하거나, 노선 각지에 배치해 두어서 사고시에 수송중단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쓰기도 합니다. 실제로 경부선 매포역에서 화차가 굴러 시설과 전차선을 싹 날려먹었을때, 일단 선로의 응급보수가 끝나고서는 디젤기관차로 셔틀 운행을 시켜서 일단 열차소통을 시킨 케이스도 있고 말입니다.
문제는 이 디젤이 비채산이고, 현대적 디젤기관차들은 그 향상된 성능과 기술력 만큼이나 비싸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요즘 시대야 깡통 디젤동차 조차도 량당 10억 정도는 우습게 먹히고, 틸팅부 디젤동차쯤 되면 20~30억원/량 정도까지 올라가는지라, 대량생산되는 전동차들에 비해서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리기 시작하고 있고, 여기에 디젤기관 특유의 많은 정비소요를 생각하면 도저히 채산을 맞출 엄두가 안나는 수준까지 갑니다. 미국처럼 아예 디젤기관차만으로 수천대를 도배하는 철도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게 비채산 사업이 된 셈이고 민간개방과 적자사업을 이유로 후들겨패고 갈라치기를 걸어대는 상황에서 그런 적자부담을 계속 가지고 간다면 부처님 가운데토막이거나, 유황분 및 경질분이 적은 원유가 샘솟아나는 유정을 보유했거나 둘 중 하나라 해야 할겁니다. 개혁에는 돈이 들어가는 법이고, 그걸로 누군가의 주머니를 털어먹으려 들면 당연히 사단이 나는 법인데 이건 그나마 자잘한 케이스랄까 그렇습니다.
좀 디테일하게 보면, 이 문제에서 기관차 소요량은 좀 과소되었을 여지가 있는데, 지금까지 쓰던 7100~7500호대 기관차들은 기본적으로 대형 로드스위처에 가까운 기관차여서 아주 적합한건 아니지만 입환과 본선주행 양쪽을 모두 할 수 있던 차량입니다. 물론 역구내에서 본격적으로 입환사업을 담당하고, 단거리 운행을 하는 4400호대가 따로 있긴 하지만, 좀 대범하게 입환사업을 잡을 수 있던 배경에는 쓰기 편한 7400, 7500호대가 있었기 때문이랄까 그런 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차기차량으로 만들어지는 7600호대 기관차는 유럽식의 본선전용기라는데 있습니다. 입환을 못할 것 까진 아니지만, 양측 운전대 구조다 보니 앞으로 가는데만 성능을 발휘하지 전후방으로 자재로 운전할 수 있는 구조라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를 벌충하려면 입환을 전담하는 기관차가 별개로 주요역에 배치되어야 하는데, 이런 구조로 재편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4400호대 추가조달이나 이보다 한둘레 작은 경량입환기가 나올거 같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또한 기관차의 소요량은 좀 늘려잡는 걸로 퉁치고 간다 쳐도, 유사시의 소요자원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객차의 소요에 대해서는 제대로 산정이 없는 감이 있습니다. 폐차직전의 PP처럼 기관차 견인 형식으로 동차를 전용하는 것도 현대적인 전기동차들에는 제동계통의 호환성 문제나 성능적 이유로 매우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디젤에 맞는, 어차피 고성능과는 거리가 있는 객차가 따라 조달되어야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당장에는 무궁화객차도 있고 하니 티가 덜나지만, 91~94년 시즌에 대량조달된 무궁화객차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는 2020년 정도부터는 객차조달도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단기적으로라면 스테인리스 차체를 쓴데다 워낙 대량조달되어서 차체상태를 골라 연장사용을 생각해 볼만한 새마을 부수차나 객차들을 추가사용하는 걸로 메꿀 수는 있지만, 이것도 2020년 정도까지의 단기대책으로 봐야 할거고, 97년 이후 신형 무궁화객차가 도태개시되는 2022년 전후에는 무언가 새로운 대안이 나와야만 할겁니다.
차량조달 문제는 당장의 경영수지만 생각할 경우엔 답없는 케이스고, 10년 정도 앞을 내다보는 것은 물론, 산업 생태계와 정비계획, 그리고 세계적 기술동향과 비상문제까지 모두 묶어서 봐야하는 그야말로 종합전략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복잡다단한 기술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장의 채산만 가지고 두들기고, 또 이런 "단기적 비효율"을 이유로 자꾸 이상하게 정책을 비틀어대니 뭐 시스템이 골병드는 각으로 나가는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거 잘좀 합시다 소리가 나온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