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 연결선들 중에 실현이 안된 건수가 하나가 있습니다. 1호선과 4호선을 서울역에서 연결하는 연결선입니다. 1호선 건설 초창기부터 이미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차량유지보수 회송을 위한 연결선을 위해 미리 계획이 되어 건설이 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일본측 기술진(JARTS)의 노선구상에서 서울역이 1, 3, 4호선이 모두 거쳐가는 일종의 허브에 가까운 존재였고, 여기에 지하철 차량정비는 당초 용산에 있는 철도청 서울공작창과 구로기지를 쓰는걸로 전제가 되어 있었으니 그 필요성은 명백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는 좀 뒤가 있었습니다. 실은 이게 비상시의 임시열차 투입을 위해서 계획된 특수한 선로라는 점입니다. 바로 정부요인의 긴급탈출을 위한 선로로 활용하는 구상이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호"라는 이름이 나온 이유도 이 긴급탈출 계획의 이름이 연원이 있다는 모양이고.
좀 간략히 언급된 사안을 정리하면 원래 1966년경에 제시된 철도청의 서울~청량리간 지하철도 계획도서에는 흔히 "종각드리프트"라 불리는 광화문 구간에 역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달리 역 숫자가 하나 더 많도록 계획이 되어 있었고, 이때문인지는 몰라도 광화문지하도가 건설된 것도 아마 역으로의 활용을 전제로 계획이 되었던 걸로 보입니다. 여기에 역을 계획했던 이유가 저 긴급탈출 목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유사시에 이 역에 기차를 우겨넣어서 요인을 태우고 그대로 한강 이남으로 달리려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서울시로 지하철이 이관되고, 이후 해당구간이 동아일보사 사옥이나 인접한 청계천 등의 지장물 때문에 역을 둘 수 없는 R=140의 급곡선으로 계획되면서 이건 불가능해졌고, 그때문에 이후 종각역이 이 역할을 하도록 계획을 잡았던 모양입니다.
이 계획에 따라서 몇가지 레거시가 남겨집니다. 바로 구 특별동차와 종각역의 시저스 크로싱입니다. 특별동차가 전기식 디젤동차로 계획된 이유는 신뢰성 문제도 있지만, 지하구간에서 입환없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차량으로 구배기동에 문제가 없는 고출력으로 만들고자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구태여 고상홈 대응기능이 동차에 설치된 것도 고상홈 사용 문제가 있던 것이고. 종각역의 시저스 크로싱은 역 서측 초입에 지금도 남아있는데, 이건 비상열차를 승강장에 대고 바로 반복운전을 시키기 위해서 준비된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이때만 해도 철도까지 오면 문제는 풀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구상이 바뀐게 하나 생깁니다. 바로 이리역 폭발사건입니다. 사건 개요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이 사고열차가 인천발 화물열차였던게 계획의 급거 변동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즉, 시설물 자체를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공작이 들어간다면, 물론 이전에도 이 관념은 있었지만, 그대로 한강 북부에 고립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당시 구상에 그치고 있던 2호선이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즉, 서울역에서 진입한 특별동차가 그대로 신설동의 연결선을 경유하여 2호선으로 진입, 그대로 달려서 한강 이남으로 탈출시키는 계획이 나오게 됩니다. 즉 탈출로의 이중화가 이때 적용이 된겁니다. 구태여 군자기지를 신설하고, 이걸 1, 2호선 공용으로 계획한 것은 이 계획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계획은 5공 성립 이후 한차례 변경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군부의 계획이 깨지는 한 건수가 생깁니다. 바로 서울역 회군 사건입니다. 물론 회군으로 인해서 결국 서울의 봄은 불발이 되었지만, 서울역 앞에 군중이 집결 시위를 하면서 사실상 서울역이나 광화문이 직접 군중에 노출되고, 긴급탈출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걸 인식을 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80년 초에 계획이 나온 3, 4호선에 새로운 긴급탈출 계획이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충무로 연결선 루프와 저 1-4호선 연결선입니다.
즉, 서울역을 통해 탈출용 열차를 1호선으로 진입시킨 다음, 1-4호선 연결선을 통해서 차를 4호선으로 반입시키고, 그리고 그대로 충무로 루프선을 돌려서 3호선에 진입, 이후 경복궁역에서 정부요인을 태우고, 동일 루트를 통해 서울역으로 나가 탈출하거나, 서울역에서 그대로 종로선을 타고 2호선을 통해 한강 이남으로 퇴출, 그리고 정히 안되면 그대로 이촌역을 통해 미군부대 경내 또는 서빙고나 남태령에 배치된 국군부대 경내로 대피하는 루트를 계획하게 됩니다. 이 계획에서 1-4호선 연결선이 중요시되면서 공사계획이 잡히고 어느정도 준비가 돌아갔지만, 1호선 측으로는 운행중 노선과 연결하는 난점 때문에 보안유지의 어려움 등이 지적되어 착공이 계속 딜레이가 되었습니다. 당시 서슬퍼런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긴 한데 왜 이랬는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생략되어 있어서 알기 어렵습니다.
이후 이 노선이 안되니 당시 제기된 과천선에 이 퇴출계획이 반영되게 됩니다. 건설 구상 자체는 85년 이전에 이미 나오기 시작했던 사안이니 일찌감치 입도선매를 걸었고, 공사가 안되던 연결선을 버리고 이쪽 루트를 통해 한강 이남으로 퇴출을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문제는 이 연결선이 없으면 국철의 특별동차를 충당할 수가 없다는 문제가 남는데, 이건 전용차량을 건설이후에 이동시켜 XX기지에 사전 배치하는 것으로 계획이 됩니다... 이를 통해서 3호선 및 4호선을 사용해 긴급탈출을 실시하고, 만약 전황 내지 상황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그대로 경부선을 활용해 대전 등지의 정부시설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계획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문건에서 좀 굵직하게 다뤄진 내용으로, 세부적인 운영방안이나 경로계획, 그 외 행정협조사항 등이 태워져 있습니다. 시점이 좀 낡은거야 좀 오래된 거라서 그런 것이고.
세부 사항이야 어떻게 운행을 시키고, 누구를 태워서 하고, 어떤방식으로 보안을 유지하고 등등의 이야기가 쭉 나오는데... 여기서 꽤 충격적인 사안이 하나 언급된게 있습니다. 사실, 이 문건의 내용은
안녕하십시오. 오늘은 만우절 인 겄 갔습니다? 이에 별들이 제위치를 찾아 연세동에서 깨어난 크툴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