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 흔히 영어권에서 Hot Box 내지는 Hot Axle이라 불리는 차축발열 사고의 영상입니다. 인도에서 촬영된 영상인데,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에서 대량의 수송을 하다보니 이런 일이 잦은지 영상이 남은 예가 좀 보입니다.
몇일 전의 전동열차 탈선사고의 원인이 이 차축발열에 의한 차축절단이었던 걸로 잠정결론이 난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후차량 문제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는 사실 생각보다 사례가 여럿 있긴 합니다. 잘 달리던 차가 신호나 시설 면에서 문제가 될게 없었는데 뜬금없이 탈선사고를 낸다면 거의 이 경우고, 보통은 몇 년에 한번 꼴 정도는 생기는 일이었는데, 대개 관리수준이 그리 높지 못한 화물열차의 화차에서 나는 사고인데 이번건 드물게 전동열차에서 발생한 사례라는 점에서 좀 이례적이라 할겁니다.
이 차축발열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선 축베어링을 먼저설명을 해야 합니다. 대차와 차축 사이에서 하중을 전달하면서 바퀴의 회전을 받아내는 축베어링이라는 부속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회전하는 베어링을 쓰지 않고 이른바 평축(Plain Bearing)이라 해서 단순히 내마모성이 좋은 금속 가공품을 끼워넣어 이 부분을 윤활유로 축축하게 유지하는 방식이었고, 이를 위해서 축받이 조립체를 자주 열어 확인하고, 급유를 할 수 있게 상자형의 기구물로 봉해두는게 통례였습니다. 그래서 이 조립체를 축상(軸箱; axle box)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 축받이는 기계적인 마찰을 다루는 물건인 만큼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었습니다. 가공이 잘못되거나 충격이나 다른 이유로 변형이 와서 이상 마찰이 생기거나, 윤활유가 제대로 공급이 안되거나 할 경우에는 마찰열로 쇠가 달궈지게 되고, 일정 수준을 넘게되면 윤활유가 타오르고, 기구물 자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게 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부품이 자기 강도를 유지하지 못해서 끊어지거나 변형되어 차가 탈선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고장을 일으켜서 연기가 나거나 불이 나는 걸 Hot box라고 속칭하게 된겁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평축은 열차로서 한번 달리고 나면 반드시 점검과 급유가 따라야 하는 물건인데다, 종종 발열로 탈이 나는지라 차장과 기관조사, 그리고 역무원들은 수시로 연기나 불꽃이 나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던 물건이었습니다. 기관차처럼 크고 육중한 경우라면 새로 교체하고 나면 한동안은 길들이기를 하고 상태를 감시해야 했고, 어느정도 선별과 안정화가 되더라도 정차역에 설 때 마다 손으로 온도를 재고 기름을 부어넣어야 하는 애물단지기도 했습니다.
이 평축은 2차대전 이후에 기계공업의 발달로 고성능의 롤러베어링나 볼베어링이 흔해지면서 이런 베어링 축으로 교체가 됩니다. 이후부터는 축받이의 신뢰도는 과거에 비할바 없이 높아지기도 했고, 재료나 가공기술의 발전으로 정비주기나 내구도가 엄청나게 올라서 과거와 같은 불안불안한 운행은 거의 사례가 줄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서 더 고속의 회전에도 견딜 수 있게 되었기에, 현대적인 기관차들은 2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동륜을 쓰지 않고서도 극소수의 증기기관차만이 도달하던 속도대역에서도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증기시절에는 300~400RPM이면 고속회전이던게, 지금은 그보다 더 높은 회전에서도 견딜 수 있게 되었달까.
문제는 아무리 좋은 재질과 가공기술, 품질관리로 만든 베어링 축이라도 마모는 일어나고, 불량은 생긴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평축에 비할바는 아니겠습니다만. 뭔가 트러블이 생기거나 해서 이 베어링에 이물질의 유입이나, 윤활유의 누유, 균열이나 변형이 가해지거나, 관련된 기구물이 변형되어 하중이 정상적으로 분산되지 않게 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사고가 나게 됩니다. 역시, 이렇게 되면 Hot Box의 전형적인 현상인 이상발열이 생겨서 연기가 나고, 벌겋게 달궈지기 시작하며, 이 상태에서 어느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이번 사고와 같이 뚝 끊어지거나 하는 기계적 결함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실, 이번사고는 정상적인 정비체계 하에서는 아웃라이어에 가까운 경우기는 합니다. 화차라면 워낙에 숫자가 많다 보니 비용사정상 관리가 좀 루즈할 수 있는데, 전동차라면 이른바 동력차에 속하는데다, 심지어 여객을 태우는 만큼 인명문제가 걸려서 비교적 엄격한 관리가 요구되고 실제로도 대규모의 차량기지에서 꼬박꼬박 순번을 굴려가면서 정비를 실시하기까지 합니다. 노후화되었다고 하지만, 전동차에서 비슷한 사례가 난 경우는 근래 거의 본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물론, 이번에 사고가 난 이른바 후기형 저항제어차들은 초기 VVVF차들의 트러블 때문에 좀 땜빵식으로 급조 조달된 차들인데다, 철도청 말기의 심각한 비용절감 압박과 동류전환 관행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는 차가 되어놔서 기본적으로 좀 상태가 좋다고 하긴 어렵기는 한 차들이긴 하지만, 그중에서 왜 유독 이 차만 그렇게 되도록 못잡아냈는가는 아쉬운 데가 있달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방대한 정비체계를 굴려도 이 차축발열 사고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속철도에는 여러 안전설비가 시설측에 설치되어 있고, 그중에서 HBD(Hot Box Detector)라 불리는 차축발열 방지장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은 신호나 통신 시스템을 통해 차량측에 통지하고, 관제 등에 경보를 띄우는 식의 연동체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적용이 가능한 경우고, 기존선에 적용하는데는 사실 한계가 있기도 합니다. 다종다양한 차량이 개입하고, 대개의 객차나 화차들은 전혀 스마트하지 못한 쇳덩어리에 가까운데다, 열차무선은 여전히 아날로그식 음성통신 전용이다 보니, 경보하고 관리하는데에 한계가 뻔하달까. 거기다가 일반철도는 엄청나게 방대한 네트워크인 만큼 어디에 어떻게 쓸 건지부터 고민이 필요할거라 봅니다.
1호선처럼 방대하고 또 한계까지 쪼아내는 시스템은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고, 해외에서도 흔히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 할겁니다. 여기서 더 높은 수준의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차량대차 정도가 아니라, 시설, 운영 전반을 묶어내는 고도화를 해 나가야 할겁니다. 이번 사고는 그걸 지향하라는 한 시그널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