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멘스가 딱히 한국에 연산 1천대 정도의 플랜트를 인수해야 할 만큼의 절박한 이유가 있는가 하면 좀 의문이 많이 듭니다. 현대로템이 그래도 대충 세계 시장셰어의 10위 선에 걸칠듯 말듯한 체급과 기술력을 가진 국제영업망도 갖추고 있는 회사에, 일단 소재지가 중국이나 일본처럼 국수적인 기업지배성향을 가진 나라가 아니니 알스톰 인수에서 물먹은 상황에서 검토를 해볼만한 가치는 있긴 합니다. 다만, 이걸 베이스로 시장 셰어를 더 늘릴만한 여건이 있는가 하면 좀 아니지 싶은데, 일본은 자국내 시장 개방 자체를 민영화 등을 빌미로 거의 안하고 있는 나라고, 중국은 기술 빼먹기 하고서는 외산 차량 구입 자체를 안한지 10년이 넘은지라 논외라 할겁니다. 대만이나 아세안 국가들 시장은 성장 추세기는 하지만, 수 년 내에 뭔가 결실이 있을만한 지역은 안되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여기에 로템을 인수한다 가정했을때 전차 등을 제작하는 방산업체를 외국 기업이 인수하게 될 경우 소유구조에 대한 규제가 강하게 먹힐거라 결국 분사를 해야할건데, 이 상황에서 쉽게 진척이 될지 의문이 남습니다. 여기에 공급사슬에 걸려있는 1, 2차 벤더들 문제도 남아있고 한지라, 정부의 개입을 쉽게 피해가기는 간단치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실무적으로 로템의 생산설비는 한곳에 몰빵되어 있어놔서 분사 문제가 나오면 이걸 쪼개는 것도 일이 될 수 밖에 없고 말입니다.
현대가 왜 엑싯을 검토하는가... 전동차는 물론이고 간선차량에서의 경쟁압박이 현저해진게 가장 큰 원인이긴 할겁니다. 물론 현대로템의 캐파 절반쯤은 수출차량 제조에 쓰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가격경쟁 구도가 자리매김 하면서 마진이 엄청나게 박해졌고, 차량 정비 서비스 같은 사업의 수직확장은 썩 잘 돌아가지 못한게 컸을겁니다. 고속철 차량은 거의 독점구도기는 하지만 꾸준히 팔릴 수 있는 영역은 못되고, 경부선 차량 대폐차 같은 빅딜이 오기 전에는 사실상 라인 유지 정도에 머무르는게 현재 상태기도 합니다. 수요처인 철도공사 및 지하철회사들은 안그래도 재정적으로 압박을 심하게 받는데, 코로나 사태로 조달계획을 유지하는게 매우 빡센 상황이 되어가고 있으니 미래가 그리 희망적이지도 않고 말입니다.
애초에 로템의 설립 자체가 90년대 철도청의 단가후려치기 문제로 철도차량 3사가 공멸지경에 이르고, IMF사태까지 오면서 일종의 정부주도형 산업재편, 당시엔 빅딜이라 불리던 인위적 구조조정의 결과물인지라, 로템입장에서는 차량제조의 경쟁구도가 좀 억울한 부분은 있기는 할겁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났고, 그 기간동안 초과이익을 누렸으면 그걸 노리는 경쟁자가 없을 수는 없다 할겁니다. 운영사가 그 유훈을 지켜주기에는 워낙 쥐여짜여서 여유도 없는 판이라 더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 될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지금 구도에서는 희망사항이 너무 거창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은 듭니다. 뭐 로템의 현재 상황에서 재무적 투자자가 붙기는 어렵고, 결국 전략적 투자자 외엔 관심을 둘 여지가 없긴 하지만서도, 요즘 상황에서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과연 할 수 있을까는 의구심이 너무 드는 이야기랄까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