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례로 좀 언급해볼만한 건 트램 시스템입니다. 트램이라 분류하는 궤도 시스템은 워낙에 광범위한 부류다 보니 그냥 뭉떵그려 트램이라고 하더라도 극과 극을 달리는 그런 감이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정말 다 썩은 차량이 무질서한 비포장 도로 한가운데를 달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지하철이나 철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인데도, 트램으로 분류되는 그런 시스템도 존재합니다. 또 이런 구분이 칼처럼 명확하게 갈라지는 것도 아닌지라, 설명이 참 어려운 감도 있달까.
이하의 분류는 약간은 자의적인 분류기는 하지만, 딱히 번역으로 언급할 만한 분류체계가 널리 쓰이지는 않는지라, 그냥 편의적으로 쓰겠습니다.
1. 통상형 트램
차량 측면에서는 근래 초저상형 관절대차 차량 같은 걸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도로의 관리상태나 기후조건, 또 기존 승강장 시설물이나 정비시설 등의 여건때문에 재래식의 보기차량을 쓰거나, 위와 같이 견인차와 부수차 2량으로 다니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래서 차량 방식으로는 통상형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건 좀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이쪽은 대개 느린 것도 느린거지만, 도로 흐름에 따라 운전하기 때문에 정시성 면에서는 한계가 있는 방식이고, 신설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자동차가 대거 보급되기 이전부터 쓰던 시설들이 개량, 유지되어 온 경우가 많습니다. 근래에도 접근성을 위해서 이런 부설방법을 쓰긴 합니다만, 전적으로 이런 병용궤도를 새로 대규모로 부설하는 방식은 상당히 고려할 사안이 많기는 하다고 생각됩니다.
2. 트랜짓 몰
단순히 이런 혼합운행을 하는 경우에 더 나아가서, 해당 구역 내에서는 운임을 받지 않고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한다거나, 손을 흔들어 승차를 요구하거나 하차 벨을 울리면 하차시켜주는 운영도 있다고 합니다마는, 이건 모든 트랜짓몰이 공유하는 속성은 아니긴 합니다. 또 위의 크라이스트처치 처럼 사실상의 관광순환선으로 구 트램을 활용하고, 일부 트랜짓 몰을 두는 식으로 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엔 차량 시스템도 거기에 맞게 구성을 하는게 중요하겠습니다.
3. 프리-메트로(Pre-metro)
유럽권에 흔한 방식 중 하나인데, 말 그대로 트램을 지하에 그대로 집어넣고, 일부 말단 구간이나 아예 자동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시가지 구간에서는 지상으로 나와서 운행하는 지하와 지상을 오가는 방식입니다. 위의 영상에서 16분 전후에 지상 진출을 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지하 노선이지만, 배선 방식은 거의 병용궤도와 큰 차이 없이 평면교차를 기본으로 구성하는게 보통이지만, 그나마 지하구간의 분기, 합류는 철도와 비슷하게 신호에 의해서 통제하는 그런 방식입니다.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트램보다는 도로교통과 혼합해 다니지 않으니 정시성 면에서는 확실히 우수하고, 운전속도도 상대적으로 좀 더 끌어올릴 수 있기는 할겁니다. 지하철에 비해서는 비교적 저규격으로 지어지는 만큼 대심도 건설이 아니라면 확실히 싸게 치이긴 할겁니다. 여기에 시가지 외곽이나 아예 도심지에서는 지상으로 다니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으니, 꽤 장거리 계통을 만들거나 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 처리용량면에서는 평면교차와 비교적 짧고 작은 차량을 쓰는 트램 차량에 의존하는 만큼 중전철 내지 근래의 AGT계열에 비해서는 떨어질거고, 아무래도 운전사의 신호준수에 의존하는 만큼 철도에 비해서 보안도 역시 한계는 있습니다. 그리고 지상구간과 직결하다 보니, 외신에 가끔 나오는 자동차가 지하구간 선로로 뛰어드는 식의 침입사고 같은 사례도 좀 나오는 문제가 있습니다.
첨단방식인 거 같지만, 사실은 19세기에도 이런 식의 시설정비사업을 한 경우가 유럽 도시에서는 종종 존재하기는 합니다. 또 이걸 비틀어서, 지하 대신 고가로 올려 정비하는게 19세기 미국에선 꽤 흔했고 그 남은 유산이 시카고의 고가식 전철이기도 합니다. 외려 요즘은 프리메트로 방식으로 건설하기엔, 도로를 굴착하기가 어렵거나 해서 난감한 감도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근래 광주 2호선의 저심도 지하철 구상이 이 프리메트로 방식의 한 방편이라고 하면 비슷하기는 할거 같습니다.
4. 트램-트레인
이쪽은 기존 철도 인프라를 활용하기에, 적은 초기투자로도 장거리 노선을 확보할 수 있고, 철도가 상대적으로 저규격이라고 해도 간선철도로 쓰이던 선로는 트램용으로 상당히 고규격의 것이기 때문에 운전속도를 높힐 수 있어서 장점이 있습니다. 철도로서도 지선이나 화물선의 경우 채산이 안좋고, 활용도도 애매하던 것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활용도를 높힐 수 있다는게 장점이 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철도와 트램구간 양쪽의 설비규격이 극단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차량이 이를 맞춰야 해서 그만큼 차량이 비싸지거나 심지어 기술적으로 난맥이 생길 가능성도 다분할 뿐더러, 면허나 안전규제의 차이를 메꾸기 위한 일종의 제도적 브리지가 있어야 하기도 합니다. 또한, 선로를 공용함에 따라 역으로 용량문제나, 유지보수나 시설 개량의 분담 문제같은 것도 따라 오게 됩니다.
국내에서 추진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될건 역시 대부분의 간선이 용량면에서 그리 여유만만한데가 없다시피 한 점, 그리고 지방사업과 국가 사업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 유지보수비나 시설개량비, 영업적자 보전 등에서 누가 그 돈을 책임질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나왔을 때 서로 떠넘기려 들 가망이 높고, 어차피 이런 사업이 흑자사업이 되긴 어렵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기피하는 협업사업이 되어버릴거라는게 가장 문제라 할겁니다. 사실 기술적 부분보다 제도적 부분에서 장벽이 꽤 높은 경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5. LRT
당연한 이야기지만 LRT쯤 되면 사실상의 지하철에 가깝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전통적인 트램이 버스처럼 별도의 승강장 없이 노상에서 승하차를 한다거나, 아주 간소한 저상 승강장 정도로 운영되는 것에 비하면, LRT의 경우 운임구역과 공중구역이 명확히 갈리고, 크기의 대소차이는 있지만 역사가 붙거나 역무시설이 부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나 고가라면 빼박이고, 노면구간에서도 적어도 운임구역을 구분하는 장치가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노선마다 이건 좀 차이는 있긴 하겠습니다마는.
그래서 이게 지하철이나 중전철과 뭐가 다르냐 라고 한다면, 도로 공용을 제외하고 본다면 궤도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저규격이라는걸 들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라면 전철구간용의 EL-18이라던가, 다른 나라에서 쓰는 궤도규격이 상대적으로 육중한데 비해서 LRT구간들은 이보다 낮은 수준, 물론 일률로 규정하기는 어렵기는 합니다마는 여하간 좀 더 "가벼운" 기준의 궤도규격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토공구간에서는 큰 차이를 내지 않지만, 교량이나 고가에서는 꽤 건설규모를 달리할 여지가 생기게 됩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좀 더 소단면 차량을 쓸 가능성도 커집니다. 즉, 복선에서 궤도간 간격이 더 좁고, 터널의 높이와 폭이 작아진다는 이야기라 할겁니다.
생각보다 북미에선 LRT라 분류할만한, 일부 노면공용 내지는 도로교차를 다수 가지지만 대부분이 전용 궤도를 쓰는 경량 궤도 시스템들이 종종 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경상도 쪽에서 트램 내지 경전철을 내건 광역전철은 이런 LRT에 가까운 물건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잡는다고 보는게 맞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