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RE100을 이야기하면서 흔히 이야기하는건 태양광이나 풍력, 또는 수력발전소 같은걸 이야기를 합니다. 독일 철도의 경우는 자회사 중에 풍력발전소를 굴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또 부동산을 광범위하게 가지는 철도업체들이 태양광을 자기 부지에 적극 개발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제법 보이는 사례기도 합니다. 일본의 JR동일본 역시 태양광 비즈니스를 하는 자회사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직접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굴리기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한전이라는 막강한 공기업이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철도가 이런데서 적극성이 결여된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잠재력이라는 면에서는 한국철도는 백업 비슷하게 자체 송배전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전력 다소비라는 특성 역시 가지고 있어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할 만한 자체 투자여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면 선도적으로 RE100을 추구하는걸 넘어 에너지의 판매도 가능할만한 그런 여지가 있을겁니다.
좀 잡설이 길었는데, 사실 신재생에너지에서 철도가 가지는 특수성에 기인한 에너지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회생제동 전원입니다. 즉, 열차가 멈추거나 내리막에서 속도를 억제할때 그 운동에너지를 마찰이 아닌 전기력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크게 발전제동과 회생제동 두 갈래로 나뉘는데, 발전제동은 차량에 설치된 저항기를 통해 전기를 다시 열에너지로 전환해 방출하는 것이고, 회생제동은 차량의 여타 서비스 전원이나, 전차선 등을 통해 차량외부로 송전해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후자가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쪽은 이 전력을 소비해 줄 다른 차량이 없다면 유효한 제동력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쓰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KTX는 회생, 발전 양쪽을 모두 구비해서 회생제동이 실패하면 발전제동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되어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회생전력은 어디까지나 차가 멈출때 생성하는 거고, 그야말로 일시적으로나 나오기 때문에 정규적인 전원으로써 쓰기는 어렵기는 합니다. 그래서 사실 수년 전부터 연구개발되어 온 방식이 이 전력을 일시 저장해 둘 수 있다면, 철도가 쓰는 전력의 피크치를 떨어뜨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철도용 전원은 상당히 고전압 대전류인데다, 반응속도도 빨라야 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습니다.
사실, 지하철 쪽에서는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시도한 경우가 있긴 합니다. 아마 대전지하철로 기억하는데 거의 10년전에 기획을 연구해서 보고서화한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후속으로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지만, 간선철도에서는 말 그대로 자릿수가 다른 에너지량이 되다보니, 배터리 기반으로 하는걸로는 채산도 안맞고,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난이도가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는게, 플라이휠이라는 기술입니다. 즉, 모터로 묵직한 바퀴를 돌려서 그 회전력의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고, 에너지를 회수할때는 이 바퀴를 회생제동시켜서 출력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인버터를 거쳐야 하기는 하지만, 철도차량과 동일한 규격의 모터와 인버터를 쓴다면 배터리 방식에 비해서 전기적으로는 좀 더 용이하다는 강점이 있으리라 생각이 되는 방식이라 할겁니다. 물론, 바퀴를 공회전 시키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기는 할거고, 여기에 들어가는 기계요소들에서 발생하는 마찰저항들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에너지를 장기 보관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는 할겁니다마는.
특히 근래에 연구중에선 아예 바퀴를 진공에 가까운 튜브 안에 집어넣어서 공기저항을 극소화하고, 이를 떠받치는 축과 베어링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유체베어링이나 아예 자기베어링을 적용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전산용으로 쓰이는 UPS에 적용하는 거 까지 연구를 하기도 했었다던가. 철도용으로 간다면 워낙 중량물이 될거라 진공 튜브를 적용하고, 자기베어링도 한계는 있을거 같긴 합니다마는.
좀 최신의 연구를 보면 아예 물리적으로 바퀴라는 요소에 집착할 필요 없이 링형의 튜브에 금속제의 리액션 링을 넣어 진공 밀봉한 다음, 리니어 모터와 전자석으로 이 링을 부상시켜 회전시키는 기술을 검토하는 걸로 보입니다. 이른바 마그네틱 레비테이션 플라이휠(MLF)이라는 개념인데, 제어에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대신 회전속도를 엄청 올릴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저중량으로 높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게 되고, 또한 기계 마찰요소가 거의 0에 근접하게 되니까 기계적 유지보수도 최소화가 가능할테니 말입니다.
아마도 이 MLF가 철도 변전소에 들어간다면 매우 강력한 기반 기술이 될 수 있을거라 보입니다...는 이게 만우절 드립이 아니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