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 건설에서 대구역이 비좁았기 때문에 건설했다는 이야기는 좀 통설인데, 이게 정말인가에 대해 의문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보여서 좀 부연해 둡니다.
좀 두괄식으로 적자면, 심하진 않았던 것 같고 또 도시계획적 목적이 상당했지만 일단은 좁았던게 맞기는 합니다. 옛 지도의 흔적을 보면 대구역의 구내는 현재의 칠성로30길의 동서축 근처까지 구내가 확보되어 있었던 걸로 보이고, 부지 폭원은 약 50미터 정도, 선로의 장은 지도에 원형으로 표시된 동측의 원형차고 설비나 서측의 화물하역시설들을 제외하고 나면 한 500미터 전후의 유효장이 담보되었던 걸로 생각됩니다. 선로 1개의 폭원이 4미터 전후쯤 되니, 약 12~13개 선 정도가 들어가는 부지 사이즈고, 실제 구 항공사진 자료를 찾아보니 대충 사라진 부지는 화물조차설비 및 기관고 관련한 측선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이후 동대구 쪽에 추가된 화물측선(현재는 승강장이나 차량유치용 측선으로 전용), 그리고 객화차나 기관차 정비고 등의 규모를 보면 동대구 쪽이 좀 더 넓기는 하지만 그 면적의 차이가 엄청 크진 않은 느낌이기는 합니다. 역무 시설 쪽도 좀 그런 감은 있고.
실질 면적이나 선로 숫자 면에서 차별이 없다면 왜 구태여 이설을 했는가... 라는 이야기는 나올 수 있겠다 싶긴 합니다. 다만, 문제의 핵은 구조가 좀 이래저래 안좋고 부지 효율성 면에서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걸로 보입니다. 일단, 기관고가 원형기관고다 보니 부지사용 면에서는 썩 좋은 형태는 아니었고, 객차 내지 화차 정비시설 쪽은 거의 뭐 노천에서 작업하거나 하는 꽤 열악한 구조였을걸로 생각이 됩니다. 또한, 출입선로가 구분은 되어있긴 하지만 선로 가운데 건물들이 쭉 있는 등, 지금의 수색역과 비슷하게 구내선로가 상당히 혼재되어 있고, 사무실들 역시 혼재되어 있어 꽤나 구조가 난잡했던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여기에 서쪽으로 하역장 부지가 넓게 존재하고 여기에 구 청량리 남서단에 있던 벌크 하화 시설같은 구조로 선로가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이게 아마 목재나 석탄 등의 하화장소로 쓰였다면 상당히 정리가 난감한 그런 환경이었을거라 생각이 됩니다. 석탄, 목재 같은 벌크산화물과 농산물이나 공산품을 하화하는 공간 정도는 분리했겠지만, 동선이나 하화작업의 환경이 그리 좋은 여건은 아니었지 않을까 생각된달까.
이후 동대구역으로의 이설을 하면서, 시설을 한번 싹 현대화하면서 부지효율을 높히고 벌크 화물류를 외곽으로 크게 이전조치하는 과정을 거친 덕에 상대적으로 시설의 효율화를 하면서 적정 면적을 확보해 정리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기서 실제 면적면에서 보면 좀 동대구가 대구보다 그리 크진 않은거 같은 느낌이 들건데, 여기서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화물시설, 특히 석탄, 목재같은 산화물 종류는 실은 구 반야월역으로 이전을 했던 거라 그렇습니다. 지금은 2008년 경의 위성사진에 겨우 남겨지긴 했지만, 면적으로는 약 10만 평방미터쯤 되는 꽤 방대한 화물시설이 붙어있던게 확인이 될겁니다. 물론, 이들 부지는 말년에는 이른바 연료단지라 불리는, 무연탄을 취급하는 공장들만 겨우 남겨지고 이래저래 잡다한 물류시설용지 상태였기는 합니다마는. 한참 이설 초기인 70년대 초반쯤의 이 지역의 위세는 만만치 않았을거라는게 부지나 역구내의 규모를 보면 좀 체감이 된달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실은 이게 대구역에서 동대구역으로 이전을 압박한 요인이었을거라 보이는데, 과거 대구선은 왜정 당시 협궤에서 표준궤로 개궤된 이후, 대구역까지 별도의 단선으로 진입을 했었습니다. 신성로-송라로32길-신암남로15길로 이어지는 축이 구 대구선의 노반 내지는 그 병행도로축이었을건데, 이 선로를 놔두고 도시계획을 하기는 매우 난감하기는 했을겁니다. 왜정 이래의 운전상의 상식은 분기역까지 별도의 선로가 가는게 상식이기에, 경부선을 복선 개량해서 직선화를 하면서도 대구선을 거기에 도중분기로 태울 이유는 없었을겁니다. 뭐, 30년대 중후반에 기껏 개궤로 확보해 둔 대구선 단선을 10년도 안되서 새로 노반을 만들어 이설하는 건 돈지랄로 느꼈을거고 말입니다. 하지만, 60년대 이후에 도시확장을 꾀하는 입장에서는 저 선로때문에 도시계획에 상당한 장애를 주는데다, 이미 연선인구 증가로 민원이 꽤 나오고 있을 선로를 그냥 놔두긴 좀 그랬을겁니다.
하지만 도중분기 형태로 정리하기에는 운전상 손이 많이 가고, 경부선에 걸리는 용량 부하가 꽤 되어서 좀 그렇기는 했을겁니다. 그래서 단행한게 동대구역을 정비하고 대구선을 거기까지로 밀어내서 거기에서 시종착하게 만들려고 했었을겁니다... 만, 결국 민원에 못이겨서 여객열차들은 대구역까지 진입하는 걸로 정리를 했었을 겁니다. 그래도 6, 70년대에 화물열차 숫자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닐만큼 활발하던 시절이었고, 반야월역이나 동해남부선 주변의 화물들을 동대구에서 상당히 정리해서 경부선 화물열차로 중계하는 형태로 만들어서 복선에 걸리던 용량부담을 많이 줄긴 했을거고. 또 선로용지를 정리해서 일종의 위요지였던 부지를 도시계획에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서 얻게된 시측이나 지주들의 편익은 이루 말할게 없었다 할겁니다.
결국 그렇게 정리한 부지를 개발해서 시가지 개량에 충당하긴 했으니 뭐 나름 나쁜 방향은 아니었고, 철도로서도 좀 난삽하던 구내를 좀 더 현대적인 형태로 개량 정리할 수 있던건 손해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철도 부지를 개발한 이익이 철도에 재투자되는 형태가 되었다면 바람직 했겠지만, 1960년대 후반엔 제도면에서나 정치면에서나 좀 어렵긴 했을거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