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7월 1일자 열차시각표(구글독스)
이전에 우연찮게 옛 신문에서 발견해서 스프레드 시트로 옮겨놓은 자료입니다. 원문 자체에 오탈자가 제법 있다보니 완전하지는 않지만, 정서를 해서 옮겼습니다.
해방 이후의 철도사를 이야기 할 때 흔히 건설사를 주축으로 놓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육안으로 쉽게 보이는데다, 실제 건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철도고 뭐고 없으니 그건 당연한 귀결이기는 합니다. 다만,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일제로부터의 상속이라는 속성에 매몰되어 버려서 악전고투를 연달하 해온 해방 이후의 철도사를 그저 일제시대 철도의 연속선상으로 단순히 접근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실제 해방이후의 철도는 건설도 그러했지만, 운영에서의 악전고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직후 한동안은 열차가 아예 못다니거나 경인 및 경부선에 1왕복 정도가 겨우 다니는 수준이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인력의 30%를 차지하던 일본인들이 일시에 빠져나가고, 일제의 사보타지나 말년의 조직적인 경제교란 정책들, 그리고 무역의 단절, 이후 이를 좀 극복하려고 하자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대량 파괴로 인해 철도의 운영은 1950년대 중반을 넘기도록 쉽지 않았습니다.
운영일선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요소는 이른바 ‘다이어’라 불리던 운행계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라는 이름이 붙는 차량이나 승무운용 같은 부분들을 같이 보면 좋겠지마는, 아무래도 이런 자료는 디테일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적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열차운행계획, 즉 열차의 시각표는 대개 공개되어 공지되기 때문에 그나마 추적의 여지가 많습니다. 물론, 전쟁 여파와 독재정권 치하의 분위기 덕에 자료는 제한적이기는 합니다.
통상적으로 열차시각 개정은 2~3년 주기로 노선의 신설, 동력방식의 변경 등으로 큰 개정이 이루어지는게 과거의 통례였습니다. 1950년대 전반까지는 정상적인 운행여건을 구비하지 못한 탓이 크다 보니 정시성이 떨어지고, 그 결과 운행계획과 현실의 괴리가 상당한 편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 70년대까지의 중요한 개정을 꼽자면, 1957년의 디젤기관차 도입에 다른 개정, 1959년의 시간단축 및 각 지방선 통근열차 증강, 이번에 다룰 1962년 “재건호” 개정과 각 간선에 직결특급을 신설, 증강하고 사실상 대용객차의 전폐가 이루어진 1963년 개정, 그리고 1967년 증기기관차 종운을 포함한 개정이 굵직한 열차시각 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개정에 대한 기사는 개요와 주요 시종착 시각 정도만이 보도되다 보니 그 전모를 알기는 어려운 편입니다. 이 점에서, 어느정도 데이터가 부가되어 있는 1962년은 이런 개정 흐름의 횡단면도를 볼 수 있고, 이 전후 시점의 개정 기사들을 추적해 가 볼 수 있는 기준점이라 할 자료라 생각이 됩니다. 마침 1962년 대개정 당시의 보도된 내용을 가지고 어느정도 그 모양새를 파악할 기회가 있어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나마 여객열차의 주요역 정차시간 정도의 소략한 내용이기는 합니다만.
1962년은 해방으로부터 17년, 그리고 휴전으로부터 9년이 겨우 경과한 상황이며, 4.19와 5.16을 겪으며 아직까지 정치적인 불안이 남아 있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는 아직까지 400여량에 달하는 화차를 개조한 대용객차가 지선에서 대량으로 운영되다시피 했고, 59년에 국산화한 객차가 보급 초기 단계로 여전히 일제시대의 객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동력차 또한 미국으로부터 원조 등의 형태로 받은 디젤기관차가 보급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제때 제작된 증기기관차가 주류를 이루던 상황이었습니다. 시설적으로도 경인선은 여전히 단선, 경전선과 경북선은 연결되지 않았고, 통리재 인클라인이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있던 시대로, 일제시대의 인프라에서 크게 진척되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보도 내용을 보면 1962년 개정은 해방 이후 첫 전면개정이었던 모양으로, 해방 이전의 운영양태를 넘는 열차증강과 고속화를 달성한 개정이라는 언급을 합니다. 개정 이후 좀 시간이 더 걸리기는 했지만 5월 15일에 ‘재건호’라는 특급 열차를 신규로 투입하면서 구 조선총독부 철도국 시절의 특급 ‘아카쓰키’보다 빠르다는 언급을 하기도 합니다. 즉, 1962년 대개정은 해방 이후 전쟁에 시달려서 쪼그라들었던 철도의 정상화가 일단락되었고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의 첫걸음을 보여주는 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다이어에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것은, 지금과 달리 서울 일극체제가 정립되기 전, 농촌 인구가 아직 방대하고 지방 도시의 거점기능이 지금보다 강력하던 시대의 흔적입니다. 이후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이어지면서 지방도시의 거점기능은 점차 취약해지고, 인구가 대거 서울로 일극 집중되면서 지방이 공백화 되어가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또한, 도로와 자동차의 발달로 철도의 독점성이 약화되면서 1970년 이후 한국철도는 장기침체의 길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내리막의 시기 이전의 모습은, 다양한 양태의 운영체계가 녹아들어간, 어떤 의미에서 철도의 역할과 위상이 강해지는 현 시점에서 ‘오래된 미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미 농어촌의 공백과 지방도시의 쇠락이 본격화된 지금에 와서는 재현 불가능한 그런 모습도 제법 되기는 합니다만.
특히나, 지금은 사실 의미가 애매한 “노선”이 이 시기에는 꽤 엄밀하게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로부터의 직결운행 열차가 대부분의 노선에서 기본이지만, 이 당시에는 노선명이 별도로 되어 있다면 대개 운행계통 또한 엄밀하게 구분되는 그런 양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당시에 정립된 노선들은 계통이 서로 이어지고 연계되는 현 시점에서도 제법 그 개념이 잔존하고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 현 한국철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모양새기도 합니다.
세부적으로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있지만 이건 기회가 되면 좀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건강이 좀 나빠져서 공백이 길기도 했고.